연재소설, 두번째 이야기(작가-두동원)

내 앞엔 사막이 놓여 있었다. 걷고 또 걸어도 갈 길이 무수히 남아있는 도심의 마라톤코스는 드넓은 사막과 겹쳐 보였다. 그 길이 모래든 아스팔트든 상관없었다. 더위는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고, 목표점은 신기루 같기만 해 보일 듯 보이지 않았다. 마라톤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고 주저앉고만 싶었다. 다만 이번 방학 때 마라톤에 참가키로 한 아빠와의 약속 때문에 차마 기권하진 못하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뛰던 이들은 멀찍이 앞서가고 있는데 나는 계속 같은 자리에서 잰걸음 중인 듯싶었다. 어느 지점인지조차 파악이 안 되는 사막 한 가운데를 서성이는 듯 홀로 외로운 경주를 하고 있었다. 나는 차라리 여름을 상대로 이토록 달리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경쟁자라도 함께 뛰고 있단 느낌이 간절한 건지도.


수백의 인원과 달렸으나 어느 샌가 나는 외길에 있었다. 거리의 낯선 풍경 탓인지 그간 품지 못했던 낯선 생각들이 뒤스럭댔다. 바로 사흘 전이었다. 그 날도 술에 잔뜩 취해 쓰린 속을 움켜잡은 채 어둔 밤을 걷고 있었다. 입학하고 숱하게 걸었던 캠퍼스가 밤중이라 어딘지 모르게 생경해보였다. 친한 동기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준 뒤에 자취방으로 돌아갈 때였다. 나는 그때도 슬쩍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다 전화할 상대를 찾아 헤맸다.

무심코 고등학교 친구가 그리워졌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아마 방학 중이라 이 친구도 자고 있진 않을 거란 생각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오랜만이다. 병신아, 씨발. 뭐하고 사냐?”
고 내뱉자 그 친구도 똑같이 욕으로 응수했다. 우리는 계속 욕설과 까닭 모를 웃음만 그득 섞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술 마셨으면 잠이나 처자라는 친구의 말로 통화는 끝을 맺었다. 그 날은 그렇게 무분별하게 웃어대도 허전함으로 흥건한 하루였다. 헌데 그 날은 그 날뿐만이 아니었다. 어제도 그제 같았고, 오늘은 어제 같을 것이며, 어제는 또 내일이 될 것이었다. 내일을 살지 않아도 내일을 알 수 있었다. 난 간을 육지에 놓고 온 토끼처럼 두근거림 같은 건 지난날에 묻고 씁쓸한 하루살이만 잇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다시 그 친구에게 돌연 전화가 왔다.

“야, 뭐해? 만날 술만 처먹냐? 함 보게.”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던 친구였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뒤 우리는 각자 침대에 누워 숱한 얘기를 나누곤 했던 사이였다. 그때 우리 목표는 숫제 명문대였다. 그것이 좌절된 뒤로 우리는 수능 보기 전 수없이 헤아렸던 서로의 그 꿈들에 대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함구로만 일관했다. 나에겐 그 꿈이 하나의 빚인 양 그 친구를 볼 때면 한없이 묘한 부채감에 시달렸다. 해서 연락은 왕왕 했어도 부러 만나진 않았다. 이지러진 내 모습이 떠올라 더 마주할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나를 보자고 한다. 깊숙한 곳 송곳처럼 파고드는 생각 한 촉에 괜스레 기분마저 쇠잔해졌다.

- 中편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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