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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진 로맨스 5화.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별은 공항에서차도 없이 다녀서 더더군다나 턱없이 컸던 제주도를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는 일은 꽤 재미있었다. 조그만 땅 위에 점처럼 보이는 차들이 바삐 지나다니는 것을 보다가 바다는 미소를 띄우고 눈을 감았다. 밤을 새서 몹시 피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미소가 새어나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바다는 창가에 고개를 기댄 채 구름을 떠올렸다. 덩치만 봤을 때는 알 수 없었는데, 아주 여린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밤새 대화를 했는데, 구름은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몇 번이나 멈칫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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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9.10.16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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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진 로맨스 4화. 빛의 벙커 바다는 제대로 눌린 뒷머리를 정돈할 새도 없이 반 밖에 뜨지 못한 눈으로 거울 앞에 서서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거울을 마주하고 배시시 웃었다. 거의 감긴 눈에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모양새가 제 눈에도 우스워서 그녀는 소리 내어 한 번 더 웃었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고, 침대에서 일어나 침구를 정돈하는 일련의 동작들이 가뿐했다. 실없는 웃음이 절로 나는 아침이라는 것이, 아주 오랜 만이었다.[일어났어요?]때마침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한 바다가 다시 피식 웃으며 답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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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9.10.02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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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진 로맨스 3. 올레 시장그와 그녀는 회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한 시간째 말 한 마디 없이 앉아 있다 가끔씩 소주만 들이키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하늘색 라벨의 한라산이, 그녀의 앞에는 짙은 파란색 라벨의 한라산이 각각 한 병씩 반절 정도 비워져 있었다.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종업원조차 그들의 테이블을 스쳐지나갈 때면 꼭 한 번씩 그들을 번갈아 보고 갈 정도로 둘은 별난 모양새였다."애인이랑 헤어졌죠?""뻔한 걸 짜증나게 왜 물어요?""나도요. 어제 헤어졌어요."그가 한 시간만에 꺼낸 말은 지나치게 요점만 담고 있었다.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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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9.09.2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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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제라진 로맨스2화. MAYBE장장 7년이나 끌어온 연애가 끝이 났어도 여전히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머리카락을 속속들이 훑고 가는 곳마다 사람은 많다. 내가 한껏 청승을 떨 수 있게 한적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괜히 마음이 뾰족해졌다. 몇 년 전에는 그와 함께 걷던 길인데. 여기가 바로 어릴 때 미술 교과서에서나 본, 뼈가 앙상한 소를 그린 화가 이중섭의 길이란다. 생각보다 길은 짧았고, 볼 거리가 많지도 않았다. 그의 입에서 어려운 단어들을 고르고 골라 나열되는 이중섭의 삶이란 나를 아주,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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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9.09.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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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진 로맨스(제라진 : ‘제대로 된’의 제주 방언)정주리 국어국문 121장 연애의 끝그녀는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저기서 철컥,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비행기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직 일어나시면 안 된다’는 승무원들의 목소리가 황급히 소란해진 기내의 공기를 파고들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벨트에 가져가던 손을 도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마침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혼란을 집어삼켰다. 너도 나도 일어나 복도를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그 좁은 틈새로 기내 반입용 캐리어를 꺼내던 몇몇의 사람들이 흠칫 놀라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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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9.09.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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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음속의 어둠- 늦어서 미안.- 아니에요. 언니가 미리 준비 해주셔서 저흰 집회만 나가면 될 것 같은데요?아직 집회 시간까지 1시간가량 남았으나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 지금 나가면 안 될까? 다른 동아리들은 1시간 뒤에 합류하라고 하고.- 네? 지금요?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제발. 어려우면 나라도 지금 나갈게.- 저희도 나갈게요. 얘들아 피켓이랑 팻말 하나씩 챙기고 플래카드는 2인 1조로 들어줘. 구호는 집행부가 선창하면 너희들이 복창하는 거야. 알겠지?- 네!교문 앞의 거리로 나가니 여러 사람들로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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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9.06.0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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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뇌관상당히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오늘 집회에서 표출될 에너지가 벌써부터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엄마를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레는 기분까지 들었다. 동아리 일에 매진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과 여성학 공부에 대한 계획을 말씀드려야 했지만 우선 무거운 주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빠는 역시나 먼저 출근한 듯 집이 또 적막했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시외버스를 탔다. 엄마에게 집에 간다고 문자를 해뒀지만 버스가 달리는 내내 답장이 없었다. 1시간 정도를 달려 터미널에서 내리니 엄마에게서 답장이 왔다.‘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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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9.05.2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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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어둠3. 오빠의 목검1교시 수업이 있지만 오늘도 결석해야 할 것 같다. 집회 물품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손질이 필요한 것들은 미리 분류를 해둬야 했는데 학기 초의 행사들과 일정이 겹쳐서 시작도 못한 상태였다. 무심코 시계를 보니 벌써 9시가 넘었다. 요즘 들어서 학점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쳤다. 집회신고서 제출과 플랜카드와 팻말 준비 등으로 일주일 내내 전공 공부할 시간 따위는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동아리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지는 않다. 집회에 참여하면서 여성이기에 간직해야만 했던 마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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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9.05.1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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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마음속의 어둠 양승현 국어교육·142. 폭력과 저항의 경계눈을 떠보니 어느덧 아침이었다. 오빠는 이미 출근한 듯 집 안이 적막했다. 침대에서 늑장을 부릴 시간도 없이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서둘렀다. 주말 집회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에 들러 처리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급하게 집을 나와 학교로 향했다.아직은 한산하고 느긋한 거리에 나 혼자만 조급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급하게 서두른 덕분에 수업이 시작하기까지 아직 한참 여유가 있었다. 동아리방에 먼저 들렀다. 아무래도 신입생들에게 미리 가입 승인 문자를 보내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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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9.05.1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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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마음속의 어둠양승현 국어교육 141. 반쪽짜리 정의오늘도 하루를 훨씬 넘긴 새벽에야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가 소리 나는 쪽으로 자꾸만 당겨졌다. 무언가에 자꾸 부딪히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뒤따라오는 것으로 보아 술도 진탕 마신 듯했다. 작년 기자 시험에 합격하여 올해 초부터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오빠는 거의 매일을 술에 취해서 들어왔다. 알아서 자기 방에 들어가겠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마저 하던 생각을 계속했다. 내일 동아리방에 들러서 처리해야 할 일들. 한 신입생이 가입 신청서와 함께 제출한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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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9.04.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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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자.” 그 날 밤 이후 그녀는 극단에 선배 대신 나를 보러 찾아왔다. 올 때마다 잠깐 나를 밖으로 불러내어 우리가 보지 못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사소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다. 나는 그녀의 쫑알거리는 작은 입술이 좋았다. 나에게 자신의 일상을 이렇듯 상세히 공유해주는 존재는 이제껏 없었으므로. 그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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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8.05.3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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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은 스스로 ‘예술을 한다’는 자부심에 사로잡힌 집단이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고통과 슬픔은 큰 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의 밑거름으로 여겼다. 술을 한 잔 기울일 때면 으레 고통스러운 과거가 훌륭한 안주였다. ‘짝사랑’이 주제로 주어지면 누가 더 자신의 마음을 재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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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8.05.1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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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다녀온 뒤 나는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좁은 방 안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 냄새를 없애려고 섬유탈취제를 지나칠 만큼 뿌리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새벽같이 일어나 걸었던 일들이 스쳐갔다. 예상대로 고등학교에서 사귄 친구들은 한 명도 빈소에 찾아오지 않았고 나 또한 학교로 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고작 연기나 해 가며 버텨야 하는 학교를 다니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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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8.05.0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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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소풍가는 날을 가장 싫어했다. 어머니는 내가 “소풍가는 날이에요”하면 그날 팔아야 할 김밥 중 하나를 내밀었다. 도시락은 언제나 은박지로 싼 김밥 한 줄. 그것에는 참기름 냄새가 더덕더덕 묻어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아이들은 평소보다도 더 강도 높은 목소리를 냈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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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8.04.0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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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는 더욱 말라갔다. 한데 모여 별 것 아닌 소리를 늘어놓으며 큰 소리로 웃는 일은 줄어들었고 머지않아 나는 학교에 가야 할 나이가 됐다. 가기 싫었지만, 가야 했다. 어머니는 이사를 준비했다. 십 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우리 가족은 이 조그마한 집에 정을 붙이고 살았지만 그놈의 학교 때문에 떠나야 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생활비를 보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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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8.03.2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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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발음할 수 있는 단어의 개수가 늘고 구사하는 문장이 촘촘해지자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고심했다. 이웃이라고 해봐야 한참을 가야 겨우 한두 집 나오는 작은 어촌 마을에 어린 아이들이 다닐 만한 학교가 있을 리 없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문턱까지 당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머니와 아버지는 누군가 쫓아오는 이라도 있는 양 초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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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8.03.1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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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에게 바다라는 공간은 하나의 ‘세계’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곳이었다. 오로지 수면욕과 식욕, 배설욕 만을 추구하느라 웃음과 울음만을 반복하던 때부터 나는 자연스레 짠 내를 맡았다. 기억도 나지 않는 때부터 어머니는 두툼한 천 한 장에 감싼 나를 안고 바닷가를 걸었다. 주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황혼의 시간이었다. 그녀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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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8.03.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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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분명 좋은 사람일 거야. 그리고…….” “그리고?” “아저씨는 쓰레기가 아니야.” 아이의 말에 남자는 잠시 답을 하지 못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그런가?” “당연하지. 아저씨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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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7.12.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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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반지를 남자에게 받아 살펴보았다. 반지 안쪽에 윤미숙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아이는 반지를 남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주머니에 쏙 넣어버렸다. 당황할 법도 한데 남자는 전혀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아이였다. “이 반지를 어디서 구한 거야?” “아버지에게 받은 거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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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7.11.2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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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따라가려 하지 않는 건데?” 남자의 질문은 어처구니없었다. 남자는 아이를 알고 있을지 몰라도, 아이에게 남자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면 안 돼.” “엄마가 데리고 오라 하셨는데도?” “엄마를 볼 수 없을 거라며? 없는 것처럼 말해놓구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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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신문
2017.11.22 1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