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각각의 계절-사슴벌레식 문답』, 권여선, 문학동네

답과 가치는 다르다.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답이 가치는 될 수 있어도, 그 올바른 답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올바른 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이 선택한 올바른 답이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이 찾은 답은 나와 타 인과의 관계를 이루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서로에게 납득할 만한 답이란 믿음의 관계를 만드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런데 함께 찾은 답이 흔들릴 때가 있다. 서로 함께 만들어가던 답이 어느 순간 그것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정답은커녕 서로의 삶을 옥죄는 억압, 가식, 또는 상처가 되는 경우도 많다.

왜?

함께 만들더라도 우리는 이기적이기에,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생각한다. 함께 만들 었다고 착각했을 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대화는 핀트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함께 바라보던 과녁이 사라져 버렸다. 서로에게 상처를 되는 말도 하고, 서로를 배신도 한다. 무력하게 사회의 탄압에 친구를 팔기도 한다. 세상에 강요한 답이 강할수록 우리가 만든 답은 무력하다.

맞다. 무력하다.

정답은 그렇다. 정답처럼 무력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아주 작은 부분만 틀려도 정답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버려진다. 쓸데가 없어진다.

결국, 사회가 만든 답에 자신을 내맡긴다.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떤 사람은 배신을 강요한 사회에 더 착실하게 복무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합리화하고, 과녁이 달라진 것을 숨기기 위해 우리는 항상 두루뭉술하게 답을 한다. 그것이 사슴벌레식 문답이다.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주저하고, 때로는 과녁 자체를 숨겨버린다.

네 명의 친구는, 아니 한 친구의 자살로 세 명의 친구는 더 이상은 깊은 대화를 할 수 없다. 구체적인 대화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틀렸다는 증거만 찾는다. 그것이 무서워서 더 피하고, 그래서 더욱 상관없는 각자의 삶을 살 뿐이다. 때로는 완전히 잊는다.

각각의 계절은 각각의 사람들의 계절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각각의 계절이 있다는 것이 각각의 계절이 옳다는 뜻이 아니다. 각각의 계절이 되려면 각각의 사람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혹여 자신의 각각의 계절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면, 그건 타인의 무의식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이다. 다양성은 다양하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을 인정해 주는 사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녁이 달라졌지만, 과녁을 쏟았던 우리의 자리는 동일하다. 우리는 그것을 자주 잊는다. 세 명의 친구 중 주인공만이 끝없이 연락하고 우리의 답이 달라졌고, 여전히 친구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글을 쓴다.

강성훈│독립서점 카프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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