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경력 30년, 경청하는 법원장 될 것

학부 시절부터 꼼꼼한 준비, 사법시험 합격
간첩 조작 사건 무죄 판결 후 위로 건네
전주서 태어나 전주지방법원장으로 취임

 

“예컨대, 수월성이란 용어를 사용한다면 의미가 바로 와 닿습니다.”

정재규(법학·87졸) 판사는 100분 동안의 인터뷰에서, ‘예컨대’라는 말을 마흔 번 사용했다. 예를 들어 설명하고, 말을 멈춰가며 쉬운 단어를 궁리했다. 딱딱한 법을 다루는 판사는 딱딱할 것만 같았으나, 정재규 판사는 인터뷰 내내 혹여 습관적으로 법률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배려했다.

그는 전주에서 나고 자랐다. 학력고사를 마치고 대학을 고민할 무렵, 은사의 조언으로 법대를 선택했다. 우리 학교 법대에 입학한 후 학부생 시절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그는 “목표를 정하고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험생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정재규 판사는 매일 같이 출근하듯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하루 100장을 공부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고, 생리 현상도 조절할 정도로 노력했다. 결국, 6년 만에 합격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합격 후, 정 판사는 사법연수원 생활을 시작했다. 사법연수원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법조인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기관으로, 연수원 2년 차에는 법원과 검찰청 등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다. 그는 실습 중에 판사의 꿈을 키웠다. 적극적으로 혐의 여부를 밝혀내는 검사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법을 적용하고, 판결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판사 업무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당시에는 성적순으로 판사를 뽑았고, 성적이 매우 우수했던 그는 그렇게 판사의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군법무관으로 출발한 법조 경력은 어느새 30년이 됐다. 그는 기억에 남는 판결로 ‘납북어부 조작 간첩’ 사건의 재심을 꼽았다. 한글도 모르는 가난한 어부를 국가가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24년 동안 간첩으로 살았으며, 아들조차 간첩 아버지를 둔 적 없다며 외면했다. 정 판사는 긴 세월 끝에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보통 판결 외의 말을 덧붙이지 않는데 그날 정재규 판사는 “그동안 가졌던 심적 고통에 자그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오랫동안 판사로 일한 만큼 직업병도 생겼다. 꼭 양쪽 의견을 모두 들어야만 결론을 낼 수 있고 그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서도 양쪽 입장을 모두 생각한다. 그는 “어느 날은 아내가 왜 내 편 안 들어주느냐 며 서운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재판 당사자와 변호인의 입장을 잘 고려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전북지방 변호사회의 법관 평가에서 2년 연속 우수 법관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지난 2월 5일 전주지방법원장에 취임했다. 정재규 판사는 “전주 출신인 만큼 지역의 사정을 조금은 더 이해하는 판사로 기억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영재 기자 yeo7372@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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