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항저우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이자 한국인이라면 놓칠 수 없는 한일전이 열렸다. 누군가는 구정문 거리에서,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그날을 즐겼으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축구를 열렬히 좋아하지도 않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도 잘 모르지만 이런 날은 빠질 수 없었다.

전반 1분이 지났을 무렵 일본이 선제골을 넣으며 1-0. 여기저기 탄식이 들려온다. 그러나 아직 남은 시간이 충분하니 선수들을 응원하자는 해설위원의 말에 따라 다시금 사기를 올려본다. 전반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동점골이 터졌다. 경기는 원점, 이제 다시 시작이다.

사람들의 눈이 전보다 반짝인다. 한쪽에선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며 소리친다. 후반전을 거쳐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결과는 2-1. 아시안게임 최초 남자축구 3연패! 함께 온 사람들, 옆 테이블 사람들과 기쁨을 나눈다. 이것이 내가 축구를 챙겨보는 이유다.

스포츠는 사람들을 가슴 뛰게 하며,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는 동안 국민은 하나 되어 응원하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모르는 사람과도 친구가 돼 기뻐하고 애국심과 자부심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찰나의 공동체가 된다.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원래 개인주의는 ‘나’의 책임을 다하면서 ‘나’의 자유를 찾는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개인주의는 이기적인 성향, 개인의 자유만을 추구하는 것, 공동체에 대한 비협조적인 모습 등 부정적인 인식이 대부분이다.

대학에 와서 또래 친구들이 보이는 개인주의적인 모습에 당황한 적이 종종 있었다. ‘나한테 피해 안 주면 그만’이라며 비도덕적인 행동을 방관하는 일을 마주했을 땐 마음이 굉장히 어려웠다. 미성숙한 내가 조언을 하기에도,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에도 개운치 않은 시간들이었다. 어쩌면 나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머릿속으로 그들의 입장과 사정을 헤아려 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지난 월드컵에 이어 아시안게임을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실수해도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골 넣는 순간엔 한마음 한뜻으로 기뻐하고, 8강 진출을 앞두고 간절히 기도했듯이 그 찰나의 순간 속에는 우리의 삶으로, 일상으로 가져와야 할 점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세상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가장 필요한 건 개인이 먼저 행동하는 것이다. 공동체성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 때면 찰나의 공동체가 되었던 순간을 기억하며 세상을 더 따뜻하게 보고, 느끼고,만들어가는 사람이 돼야겠다.

조성빈 | 원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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