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승범 시인, 평생 걸쳐 모은 장서 5만여 권 기증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 홍보 부족, 방문객 전무
사업회 회장, “문학관으로서의 정체성 확립 필요해”

▲ 13년 전 故최승범 시인에게 기증받았던 책들 중 복본도서, 해외도서 일부를 처분하기 위해 고하문학관 1층에 쌓아 놓은 모습이다.
▲ 13년 전 故최승범 시인에게 기증받았던 책들 중 복본도서, 해외도서 일부를 처분하기 위해 고하문학관 1층에 쌓아 놓은 모습이다.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고하문학관’, 최명희문학관 도보 7분 거리에 있는 이곳에는 고하 최승범(인문대·국어국문 명예교수) 시인이 기증한 5만여 권의 장서와 1900여 고서, 서예작품과 그림 등 예술작품 500여 점,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역사서와 지리지, 백과사전 1000여 권이 있다. 이 중에는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는 단일본이나 초인본의 수도 제법 된다. 한옥마을을 지나 낡은 2층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서의 향기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문학관 내에서 지역민이나 관광객은 단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정리를 기다리는 낡은 책들만이 문학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여는말>
 

▲서재에는 비가 새고 인적 끊기고
지난 2010년부터 운영된 고하문학관에서 진행된 지역민 소통행사는 지금까지 단 한 건이다. 현재 상시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없다. 최승범 시인이 타계한 후 그의 제자들과 문인들은 고하최승범문학기념사업회를 설립했고, 시인이 지난 1969년 창간해 약 50년 동안 발행했던 동인지 『전북문학』을 지난 10월 1일 계간지로 속간했다. 하지만 전주시립도서관에서 운영 중인 고하문학관은 담당자 한 명만이 매일 문을 여닫으며 자리를 지키는 실정이다. 지난 여름에는 비가 와서 책을 보관하고 있는 2층 서재에 비가 새기도 했다. 이곳의 담당자는 기증받은 장서 중 복본도서와 해외도서 중 일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지난 2018년 10월 17일 만해대상을 수상한 최승범 명예교수를 인터뷰하며 본지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지난 2018년 10월 17일 만해대상을 수상한 최승범 명예교수를 본지에서 인터뷰하며 촬영한 사진이다. 

최승범 시인은 지난 1931년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 1회 수료생이다. 석·박사과정 또한 우리 학교에서 했다. 이후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지내며 후학양성에도 힘썼다. 가람 이병기 시인의 제자이자 신석정 시인의 사위인 그는 일평생 동안 수필집과 시집을 내며 문학계에 몸담았다. 최승범 명예교수는 지난 1월 13일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지난 1958년 최승범 시인은 『현대문학』에 시조 「설경」과 「소낙비」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생전 그는 『여리시 오신 당신』을 비롯해 30여 권에 이르는 시집을 출간했다. 또한 30여 권에 이르는 수필집을 내기도 했는데 그 중 지난 1988년 7월에 발표한 수필집인 『풍미산책-한국 전통의 맛과 멋을 찾아서』의 서문에서는 “밥알 하나에도 여름지이의 피땀이 스며 있음을 생각하고 달게 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최승범 시인은 우리 식자재처럼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소재로 문학작품을 구성해왔다. 또한 지난 1969년 동인지 『전북문학』을 창간해 50년가량 이끌며 전북지역 향토 문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런 곳 있는지 몰랐다", 시민 대상 프로그램 전무 
처음부터 현재의 장소에 고하문학관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지난 1996년 고하문예관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스타상호저축은행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대학 시절부터 버릇처럼 헌책방에 들러 고서적을 수집하고 본인이 가진 책을 버리거나 훼손하지 않았던 최승범 시인의 장서는 5만여 권을 넘어서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 서적들을 고하문예관에서 보관하며 한주 평균 이틀 이상 지역민들과 함께 시와 수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후 최승범 시인은 이 책들을 전주시에 기증했으며 지난 2010년 현재의 자리인 한옥마을 내 구 교동사무소로 자료를 이관한 후 ‘고하문학관’으로 재탄생했다.

“고하문학관이 어디예요?” 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ㄱ씨는 고하문학관의 존재를 모른다고 말했다. 지역민, 심지어 전공자까지도 모르고 있는 고하문학관은 많은 관광객의 필수코스가 된 최명희문학관이 전주시 문화정책과 소속인 것과 달리 전주시립도서관 도서관운영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관광 및 문화자원으로 육성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곳에는 현재 고서나 초인본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만이 종종 방문하고 있다. 보존상태가 좋은 조선말사전이 있어 관련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지난 2019년에는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정리 및 관리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돼 학예연구사가 상주하며 정리를 진행했으며, 이중 236권의 책은 주요 소장자료로 인정받아 디지털화를 진행했다.  

현재 고하문학관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지난 2010년 개관 이후 현재까지 지역민과 소통한 행사는 지난 2018년 9월 15일 전주독서대전과 연계해 진행된 ‘시와 소리의 만남’ 뿐이었다. 도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도서 대출도 하지 않는다. 최승범 시인 생전에는 고하문학관에서 제자의 시나 수필을 봐주거나 문인들과 만났으나 지난 1월 13일 향년 93세의 나이로 작고한 후에는 방문객의 발길이 끊겼다. 

▲문학적 가치 보존할 방도 찾아야
이후 최승범 시인을 기리고 문학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그의 제자들과 문인들이 동참해 ‘고하최승범문학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최승범 시인의 문학적 가치를 보존하고 고하문학관을 활성화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하최승범문학기념사업회 신임회장을 맡은 양병호(인문대·국어국문) 교수는 “학부부터 석·박사과정까지 최승범 교수님께 지도 받았다”며 “한국의 맛과 멋, 색, 소리를 사랑하는 최 교수님은 수년 동안 인문학자를 양성해 낸 대단한 스승”이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최승범 시인은 전북에서 나고 자라 그의 시집과 수필집에서는 보존 가치가 있는 전라도 사투리와 고유어 사용이 많다. 양병호 교수는 “최승범 시인의 주체적 삶을 이루려 하는 줏대정신과 전통문화에 대한 애호정신, 풍류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며 “문학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고 말했다. 또한 “전주시립도서관 도서관운영과가 아닌 최명희문학관처럼 전주시청 문화정책과에서 관리하며 문학관 홍보 및 프로그램 가공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전북의 문학인을 기억하고 키워내기 위해서는 관심을 주고 섬세히 가꿔야 한다”며 전주시의 고하문학관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전주시립도서관 도서관운영과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고하문학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용이 없어 답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최승범 시인은 지난 1957년부터 40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학교에서 시조와 수필을 가르쳤다. 최승범 시인은 인문대학장과 교무처장, 명예교수을 엮임했으며 고 한승헌(정치·57졸) 변호사와 지난 1954년 2월 16일 전북대학교보의 창간을 함께했다. 교수로 재직할 당시에는 전북대신문의 주간을 맡기도 했다. 

백수아 기자 qortndk0203@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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