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두 번째 장소』, 레이첼 커스크, 한길사

많은 평론과 문학작품에서, 심지어 영화에서도 예술은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의 도구로 묘사된다. 예술가에게는 구원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마음이 아프고 슬플 때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린다. 가끔은 처방책이라고 치료약으로 문학을 권하기도 한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예술을 하는 자체가 어떤 위안이 된다.

하지만 예술은 마냥 긍정적인 영향만 주지는 않는다. 예술가는 스스로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갈구하고 욕망하는 창조 행위는 너무 강렬한 에너지라서 그것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적당히! 이건 예술에 대한 모독이다. 적당히 해서는 예술의 끝자락을 잡지도 못한다.

편하게 써봐야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그냥 잡문이 된다. 혹여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역사에 남는 작품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걸러지고 걸러진 무엇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하고, 그것을 향유한다. 너무 과한 평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두 번째 장소가 있다. 예술가 자신이 구축한 거대한 세계. 그 세계를 탐닉하고 만들어 낸다. 자신이 만들었지만, 그 세계는 자신이 해석하지 못한 너머에 있다.

‘진실은 현실이 우리의 해석을 넘어서는 곳에서 싹터요. 진정한 예술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을 포획하고자 해요.’ -272쪽

예술가가 만든 세계는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지만 그 너머에 있는 무엇이고, 그것은 현실에서 번뜩이면서 지나간 무엇이다. 그것을 포착하기 위해 끝없이 갈구한다. 하지만 포착하고 잡아채려고 노력할수록 결핍의 공간은 늘어난다. 그 결핍은 결국 자신이 만든 작품보다 더 큰 무엇이다. 더 멀리 가고자 하는 예술가는 그 장소와 대결한다. 잡아채든지, 잡아먹히든지.

‘제퍼스, 생전 처음으로 나는 예술이-단지 L의 예술뿐만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뱀일지도 모르겠다고, 예술이라는 뱀이 우리에게 눈앞에 놓인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좋은 것이 있다고 속삭이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향한 만족감과 믿음을 앗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갑자기 예술에 느껴지던 거리감이 내 내면에서 느껴졌어요.’ -224쪽

두 번째 장소는 예술가가 자신이 열어젖힌 세계이면서 닫고 싶은 세계이다. 열어서 더 멀리 간 예술가, 더 멀리 가기 전에 닫은 예술가. 둘은 서로를 동경한다. 그것이 M과 L의 거리다. 어느 삶이 행복한지는 독자가 선택할 몫이다. 그리고 예술가의 선택이다.

강성훈│독립서점 카프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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