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세계적 평가 높이고 싶어

붓글씨에 소질 보이던 소년, 문학도 길 걸어
노력 끝에 600년 전 전통 사경 분야 개척
성경, 코란 등과 불교 사경 작품 전시하고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불교 교과서 만드는 일이에요.” 김경호(국어국문·86졸) 사경장은 사경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설명했다. 불교 경전을 보전하는 목적으로 경전을 옮겨 쓰고, 경전 내용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사경. 햇수로 26년째 이 작업에 매진한 그는 사경에 대해 “예술적으로 봐도 가장 난도가 높은 예술이고, 종교적으로 봐도 가장 훌륭한 수양 방법”이라고 자부했다.

어린 시절 붓글씨를 쓴 그는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배웠다. 고등학교 때는 시를 쓰며 문학적 재능을 드러내는가 하면 어릴 때부터 심취했던 불교에 귀의하고자 출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거센 반대로 출가 대신 문학도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고,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 시절 시를 지어 총장상을 받았다”며 “당시 금서였던 정지용 시인의 시집으로 공부하기도 했다”고 대학 시절을 회상했다.

김경호 사경장은 대학 졸업 후 상경해 서예실을 열었고 운영이 잘 됐다. 그렇게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지난 1997년, 대한불교조계종과 동방연서회가 개최한 ‘제1회 불경 사경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뒤로 그는 사경에 몰두했다. 어릴 때부터 불교 경전을 붓으로 써 온 그지만, 이 대회 대상이 가지는 의미는 남달랐다. 김경호 사경장은 “수백 년 동안 단절됐던 분야에서 첫 번째로 일인자가 됐다는 책임감이 컸다”며 “내가 이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하던 일도 그만두고 사경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600년간 단절됐던 기술을 되살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김경호 사경장은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유물을 보고 연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우수한 사경 작품들은 국보나 보물급 유물이기에 볼 길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끝없는 연구’를 꼽았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활용해야 유물과 흡사하게 나올지 실험을 이어갔다.

결국, 노력이 빛을 발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구자 없이 사경 기술을 부활시킨 노력을 인정받은 그는 지난 2010년 기능전승자로, 2020년에는 무형문화재로 선정됐다. ‘국가대표’가 된 김 사경장은 “한국 문화·예술이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해외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했던 경험을 살려 성경, 코란 등과 함께 불교 사경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꿈을 그리고 있다.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사경에 뛰어들어 국가가 인정한 문화재에 이른 그는 ‘인생은 절대 짧지 않다'고 말했다. 김경호 사경장은 “인생이 짧지 않기에, 때에 따라 사람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며 “서두르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면 분명 성공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전민 기자 chevikim08@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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