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낚이지’ 않으려면 오늘 예방, 필수

메신저·전화·대면 등 변화 중인 피싱 범죄
정부, 합동수사단 및 통합 센터 운영 계획
“2차 피해 막으려면 빠른 신고·예방 최우선”

▲전화를 받으며 ATM 기기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전화를 받으며 ATM 기기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보이스피싱은 공감이야. 무식과 무지를 파고드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거지.”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한 영화 <보이스>에서 등장한 사기범의 대사다. 피싱 범죄는 상대의 상황과 희소성, 불안감 등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해 남녀노소 누구나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 지난 2017년 2431억원, 2018년 4440억원, 2019년 6720억원으로 해마다 피해액이 증가하고 있는 지금, 전북대신문이 피싱 범죄의 사례와 현황에 대해 알아봤다. <여는 말>

▲중장년도, 청년도 ‘낚일’ 수 있다
‘엄마, 나 핸드폰 잃어버렸으니까 이 번호로 연락 줘.’ 지난 6월, 자녀들과 떨어져 살던 70대 주부 ㄱ씨는 낯선 번호로 온 문자를 받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평소 딸의 목소리와 달랐지만, 당시 딸은 코로나-19 환자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기범은 “급하게 은행 업무를 봐야 해서 엄마의 신분증과 보안 카드가 필요하다”며 은행 거래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ㄱ씨가 사기범에게 개인정보를 전달한 며칠 뒤부터 ㄱ씨의 핸드폰으로 딸에게 전화할 수 없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ㄱ씨의 남편이 통신사에 문의하자 상담사는 “현재 ㄱ씨 딸의 연락처가 차단됐다”며 “은행 애플리케이션이 계속 실행되고 있는 것을 보니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ㄱ씨는 즉시 경찰서로 향해 보이스피싱 신고를 접수했으나 이미 통장에서 약 3600만원이 빠져나간 후였다.

중장년층만 피싱 범죄의 타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 갓 20살이 된 ㄴ씨는 지난 7월 사기범의 전화를 받았다. 사기범은 스스로 중고 거래 사기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라며 “ㄴ씨가 중고 거래 사기에 연루돼 있으니 범행 연루 여부를 확인해봐야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범행 연루 여부 확인을 위해 ㄴ씨에게 약 40만원의 문화상품권을 결제한 후 핀 번호를 보낼 것을 지시했다. ㄴ씨는 당시 검사라는 단어에 겁을 먹어 보이스피싱이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못한 채 자연스레 사기범의 지시에 따랐다. 이후 ㄴ씨가 돈을 돌려받는 방법을 묻자 사기범은 “전화를 끊으면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고 답했다. 전화를 끊은 지 한참 후에도 금감원에서 연락이 오지 않자 ㄴ씨는 보이스피싱을 당했음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다.

▲나이·시대에 발맞춰 지능화되는 피싱 범죄
피싱 범죄는 전 연령층을 망라하며 생애주기별 특징을 활용할 만큼 고도화되고 있다. 금감원의 ‘보이스피싱 피해자 설문조사 분석결과’에서도 나이별로 취약한 수법이 드러났다. 피해자 중 20대 이하는 범죄연루 빙자, 30·40대는 금융사를 사칭한 저금리 대출, 50·60대는 자녀 사칭에 속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메신저를 이용한 피싱 범죄 피해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메신저피싱 피해액은 전년도 대비 618억원이 증가해 991억원에 이르렀다. 피싱 범죄 피해액의 증가세에 대해 금감원은 코로나 확산 이후 메신저 등을 통한 비대면 채널 이용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이뿐만 아니라 금융 서비스의 편의성 증대로 인해 비대면 대출, 오픈 뱅킹, 간편송금을 활용한 신종 피싱 범죄 수법도 등장하고 있다.

자금 편취 방식은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바뀌고 있다. 박동현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 금융사기대응팀 선임조사역은 “금융권의 적극적인 피해 예방 노력으로 인해 계좌이체를 통한 자금 편취가 어려워지자 사기범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는 대면 편취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계좌 이체형 피싱은 지난 2019년 3만517건, 2020년 1만596건, 2021년 3362건으로 감소했지만, 피해자를 직접 만나 현금을 가로채는 대면 편취형은 2019년 3244건, 2020년 1만5111건, 2021년 2만2752건으로 급증했다.

이런 변화는 범죄에 대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정운영 금융과 행복 네트워크 의장은 “현행법상으로는 대면 편취형 수법을 즉각적으로 대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계좌 이체형의 경우 특정 계좌가 사기에 이용됐다는 정황이 드러날 시 은행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바로 계좌를 지급정지해야 한다. 그러나 대면 편취형은 현금을 이용한 수법이기에 계좌 내에 기록이 남지 않는다. 경찰을 통해 계좌 지급정지가 가능하나, 영장 발부 절차를 거쳐야 해 단기간에 이뤄지는 피싱 범죄를 막기란 역부족이다.

▲합동수사단 발족 이어 112로 신고 통합 예정
갈수록 피싱 범죄가 고도화되는 상황에 맞서 지난 7월 29일, 정부는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 합동수사단’을 출범시켰다. 이는 국민의 안전한 금융 및 통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검찰과 경찰, 국세청, 금융당국 등으로 구성된 합동수사단은 범죄 조직을 밝혀내 와해시키고, 수사·기소·재판, 피싱 계좌 동결, 피해자 물건 환부 등의 절차와 제도 및 법령 개선을 진행할 예정이다.

신고 방식도 개편할 계획이다. 현재는 부처별로 신고 창구가 달라 피해자가 직접 본인이 겪은 피해와 관련된 부처를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에 정부는 피해 예방 및 구제기능을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보이스피싱 통합 신고·대응 센터 설립을 예고했다. 세부적으로는 부처별 신고 접수 전화번호를 112로 통합하고, 부처별로 운영 중인 인터넷 홈페이지 역시 하나의 사이트로 일괄해 신고 접수와 처리 절차를 일원화할 예정이다.

정 의장은 피싱 범죄 피해자들의 심리적 트라우마 해소를 위한 치유 회복 상담도 동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비자를 위한 예방과 사후 처리에 대해 민간과 협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가나 기업의 금전적 지원을 바탕으로 금융 전문단체 등에서 피싱 범죄 관련 교육과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각적인 신고와 신종 수법 숙지로 피해 줄여야
피싱 범죄는 정부와 기관의 사후 대응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사전 예방도 필수적이다. 사기범의 현금 인출을 막을 수 있는 황금 시간은 단 30분이다. 그러나 금감원의 조사에 따르면 피싱 범죄 피해 중 30분 이내에 범죄를 인식하는 비중은 고작 25.9%에 그쳤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신속히 인지하지 못하면 일차적으로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갈 뿐만 아니라, 탈취된 정보를 통해 피해자의 다른 계좌를 이용한 범죄 또는 비대면 대출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피해를 알게 된 즉시, 망설이지 말고 관련 기관에 피싱 범죄를 신고해야 한다. 보이스피싱으로 약 100만원 피해를 본 ㄷ씨는 홀로 인터넷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았다. ㄷ씨는 “실제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게 창피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며 당시 상황을 상기했다. 정 의장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부끄럽거나 무능하다고 여겨 주변에 알리지 못하다 신체 질병을 앓거나 자괴감에 빠지는 피해자들도 있다”며 피싱 범죄는 누구나 속을 수 있기에 주변에 빠르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범죄 발생 후 조속한 신고는 피해금 환급에도 도움이 된다. 박 선임조사역은 “피해환급액의 규모는 사기 이용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가 얼마나 신속히 이뤄졌는지에 따라 다르다”며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즉시 금융회사에 피해구제를 신청한 후 경찰에 피싱 범죄를 신고할 것을 권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피싱 범죄는 피해 예방이 최우선이므로 평소에 금감원, 경찰청, 금융회사 등이 안내하는 신종 수법 사항을 숙지할 것을 강조했다.

지혜민 기자 202210263@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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