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맛'나는 술 이야기

▲모주가 담긴 유리병과 잔이 나무쟁반에 놓여 있다.
▲모주가 담긴 유리병과 잔이 나무쟁반에 놓여 있다.

첫눈이 내린다는 절기인 소설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추워지는 날씨, 모주와 콩나물국밥 한 그릇이면 차가운 바람에 꽁꽁 언 몸을 뜨끈하게 녹일 수 있다. 따뜻하게 먹어도, 시원하게 먹어도 맛있는 모주는 조선시대부터 우리 곁에 함께 해온 술이자 해장 음료다.

▲정성껏 끓인 어머니의 술, 모주
모주는 술을 빚고 남은 건더기인 술지게미나 막걸리에 대추, 생강, 감초, 약쑥, 칡뿌리, 인삼 실뿌리, 헛개 등의 한약 재료를 넣고 끓여 만든다. 여기에 흑설탕을 넣어 달콤한 맛과 먹음직스러운 갈색을 낸다. 모주의 사전적 의미는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에 물을 타서 뿌옇게 걸러낸 탁주다. 박일두 전주전통술박물관장은 “모주는 혈액순환을 돕는 일종의 해장 음료”라며 사실 음료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모주의 이름이 붙여진 데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 번째로 제주모주는 광해군 시기 제주도로 귀양 갔던 인목대비의 어머니가 생계유지를 위해 술지게미에 물을 넣어 판 것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모가 빚었다는 의미에서 모주라고 칭하게 됐다.

둘째로 전주모주는 풍남문 인근에 있는 남부시장에서 꽃피웠다. 조선시대 전라감영 앞에 수많은 장터가 생기면서 주막들도 터를 잡았고 많은 사람이 남부시장에서 술을 마셨다. 이곳에서 술을 많이 먹는 아들의 건강을 염려한 어머니가 자녀의 혈액 순환을 돕고자 술을 만들었다. 술집에서 술지게미를 얻어 여덟 가지 약재와 당밀을 넣고 달달하게 끓여 해장 음료처럼 마시게 한 것이다. 이것이 전주모주의 시작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박일두 관장은 “전주 지역 모주가 인기를 끈 것은 전주의 해장국집에서 막사발에 따뜻한 모주를 주는 것이 유명해졌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콩나물 국밥, 육전과 함께 마셔요
모주는 탁주의 일종이다. 모주를 빚는 과정에서 술을 한번 끓이는데, 이때 알코올이 날아가며 도수가 낮아진다. 시중에 유통되는 모주 역시 대체로 알코올 함량 1.5% 정도이기에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맥주의 알코올 함량이 보통 4~5% 정도인 것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박일두 관장은 “모주에 한약 재료들이 들어가 건강 유지에 좋고, 해장도 돕는다”고 설명했다.

모주가 해장 음료인 만큼 해장국의 대표주자인 콩나물국밥집에서 함께 판매된다. 김현(서울시·22세) 씨는 “콩나물국밥 가게에서 모주를 처음 마셔봤다”며 “콩나물국밥과 모주의 조합이 생소하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보통은 모주를 콩나물국밥에 곁들여 먹지만, 육전과의 조화도 일품이다. 육전과 모주를 함께 먹으면 육전의 기름진 맛을 모주가 부드럽게 눌러준다. 이서영(신문방송·22) 씨는 “전주 한옥마을에서 육전과 모주를 함께 먹었다”며 “수정과를 즐겨 마시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맛이었다”고 모주의 맛을 표현했다. 모주는 한약 재료로 만들어졌기에 수정과와 유사한 맛이 난다.

▲막걸리에 각종 약재를 퐁당!
모주 빚기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막걸리를 끓인다. 끓는 막걸리에 계피를 넣어 향을 내고 손질한 대추, 감초, 생강 등의 재료도 거름망에 담아 넣는다. 이때 거름망을 꼼꼼하게 잘 포장해야 한다. 완성된 모주에 재료들이 남아있으면 마실 때 거슬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흑설탕을 첨가해 모주의 색을 낸다. 흑설탕이 잘 섞이도록 국자로 저어주면 뽀얗던 막걸리가 어느덧 달고나와 비슷한 갈색 빛깔을 띠게 된다.

모주를 빚을 때 기호에 따라 사과나 배, 히비스커스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특히 히비스커스를 넣을 경우, 특색 있는 분홍빛의 모주를 만들 수 있다. 평소 계피 향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정량보다 적게 넣어 은은하게 즐기면 된다. 취향에 맞게 끓인 모주가 완성되면 10분간 식힌다. 모주에 약재 향이 잘 뱄길 바라며 어느 정도 식기를 기다린 뒤, 준비된 다과와 함께 시음한다. 흑설탕을 넣어 달콤하면서도 입안 가득 계피 향이 맴돌아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시음하는 동안 모주가 마저 다 식으면 병에 담아 포장한다. 병뚜껑에 한지를 덮고 리본으로 장식하면 완성이다. 완성한 모주는 냉장 보관한 뒤 2일 안으로 음용하는 것이 좋다. 막걸리로 만들어져 침전물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니 가볍게 흔들어 마시면 된다.

▲도수 낮고 달콤한 모주, 젊은 층 취향저격
전주가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고 기념품으로 모주를 사가거나 콩나물국밥을 먹으며 모주를 접한 이가 많아지면서 모주 대중화의 길이 열렸다. 김태준(광주시·25세) 씨는 “술을 잘 못하는데, 술보다는 한방차 같은 느낌이 들어서 편하게 마실 수 있었다”며 “집에서도 마시고 싶어 여러 병 사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윤진(전주시·42세) 씨는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모주를 대접하는데, 늘 좋아했다”고 말했다.

전주 여행 등으로 모주를 맛본 이들은 일상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모주를 찾았다. 이는 전주의 모주 산업 발전을 이끌었고 온라인이나 일반 마트에서도 상당한 양의 모주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모주를 색다르게 즐기기 위해 모주차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관련 마을기업 및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박일두 관장은 한국식품연구원 등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모주를 새로운 현대 음료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주가 더욱 대중적인 술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솥단지에 모주를 끓여 짜먹을 수 있는 모주 시럽을 만들거나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냉모주 등을 실험 중”이라며 모주에 대한 젊은 층의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백선영 기자 seonyoungkk@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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