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폰 잔드라르트,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1683

고대 그리스 문화의 황금기로서 고전기(Classical)라고 불리는 기원전 4세기, 5세기경 활동한 세 명의 화가가 있다. 바로 4세기 초 화가인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그리고 그보다 한 세기경 뒤에 이름을 알린 아펠리스다.

하루는 제욱시스가 정물화에 포도송이를 그려 넣었더니 새가 진짜인 줄 알고 쪼려고 했다. 그러자 그의 라이벌 파라시오스는 “나는 새뿐만 아니라 사람도 속일 수 있다”고 말했다. 파라시오스의 작업실로 초대받은 제욱시스는 그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고, 파라시오스는 “그림은 커튼 뒤에 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커튼을 열려고 했던 제욱시스는 곧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만다. 바로 그 커튼이 파라시오스의 그림이었다.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을 설친 아펠리스는 구렁이 한 마리를 나무에 그려놓았다. 이후 새들이 그 구렁이를 보고 아펠리스의 집 근처에는 다가오 지 않았다.

일련의 일화들은 도대체 화가들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렸을까 하는 궁금증을 폭발시키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의 실제 작품은 현존하지 않고 문헌으로만 그들의 실력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또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은 당시 아테네인들의 미술을 평가하는 기준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혹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재현해냈느냐’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초기 그리스 미술은 고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 미술은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파라오를 초월적인 신으로서 묘사했다. 이와 달리 그리스 미술은 현실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신과 인간 재현이 처 음부터 중시됐다. 여기에 고대 그리스의 민주적인 사회는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미술가들의 기술 발전을 부추겼다. 아펠레스와 프로토게네스 사이에 벌어진 예술가들의 경쟁은 관련된 일화를 담고 있다.

아펠레스는 프로게네스의 작업실에 몰래 들어가 긴 직선을 긋고 나갔다. 이를 본 프로게네스는 그보다 곧고 바른 긴 직선을 그 위에 평행으로 그어놓았다. 아펠레스는 다시 돌아와서 더욱 반듯하고 곧은 직선을 긋고 나갔다. 화가의 자존심을 건 ‘예술적인 경쟁심’은 앞서 본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에게서도 동일한 문제였고, 그리스 미술가들 사이에 만연해 있었다. 이를 통해 몇천 년을 이어온 이집트의 부동성(不動性) 미술은 결국 극복됐다.

김미선 | 예대 강의전담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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