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이는 옛날 엄했던 아버지, 선생님을 은어로 부르던 말이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꼰대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라는 속어로 사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과거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순식간에 꼰대가 되기에 십상이다. “나 때는 말이야”가 곧 꼰대로 정의되는 것처럼 해당 문장은 전연령을 아우르는 하나의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은어가 유행어로 변화하면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꼰대로 불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꼰대라는 꼬리표가 붙을까 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한다. 합당한 비판과 조언을 꼰대질로 쉽게 치부하는 역꼰대는 이런 부분을 이용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7월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에서 진행한 역꼰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587명 중 40%(1434명)가 주변에 역꼰대가 있다고 응답했다. 역꼰대가 일어나는 이유로 ‘기성세대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구식이라는 젊은 세대의 선입견’을 가장 많이 꼽았다. 역꼰대에는 내 생각만 옳다는 유형, 당연하게 부탁하는 유형, 예의 없는 유형 등이 있다.

필자도 식사 자리에서 역꼰대를 만난 적이 있다. 그 후배는 선배가 밥을 사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선배는 얼떨결에 밥값을 결제하게 됐다. 이후 식사를 마친 뒤 감사 인사를 하지 않는 후배에 금세 분위기는 싸해졌다. 기본적인 예의임에도 ‘이런 말을 하면 꼰대라고 할까?’라는 생각에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고 그날을 회상했을 때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같은 생각임을 깨달았다.

예의는 말을 시작함과 동시에 배운다. 도움받으면 “감사합니다”, 밥을 얻어먹으면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이런 예의를 가르치는 어른은 어쩌다 꼰대라고 불리게 됐을까? 누가 꼰대라는 낙인을 감수하면서까지 함부로 쓴소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기본적인 예의를 말하는 타인까지 너무나도 쉽게 꼰대로 칭한다. 물론 필자도 누군가를 꼰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정작 내가 그런 소리를들으면서 옳은 말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니 대답은 아니었다.

꼰대라는 말이 쉽게 쓰이는 사회에서는 그릇된 신념에 바른말을 하는 사람, 잘못 나아갈 때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는 사람이 더는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땐 부모님의 가르침이,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먼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조언이 필요한 것처럼 누구나 살면서 타인의 조언은 필요하지 않은가? 우리가 쉽게 칭하는 현대사회의 꼰대는 분명 우리 사회에서 필요하다.

김아름│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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