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에 삶이 묻어나는 댄서로 기억되고 싶어요”

고등학교 때 우연히 본 비보잉 무대, 인생 전환점
현대무용, 한국무용, 비보잉 등 다양한 장르 섭렵
“댄서 되길 원한다면 노력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댄서는 자신의 역량만큼 마음껏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에요.” 인터뷰 내내 힘차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자신의 비전을 말하는 그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댄서 명 ‘마스터키’로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전주시 대중문화 발전에도 힘쓰고 있는 한솔(무용·15) 씨를 만났다.

춤을 시작하기전, 그는 소위 말하는 ‘말썽꾸러기’ 학생이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1학년 장기자랑 시간에 우연히 반 친구의 비보잉 무대를 보고 춤에 매료됐다. “노력한 만큼 정직한 결과로 돌아오는 춤의 세계를 경험한 후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어요.” 그는 비보잉을 시작하며 방황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학교가 끝나면 전주 중앙시장에 있는 작은 무대에서 매일 5시간씩 연습 했다. 19살에는 MBC 방송사에서 주최한 전국 비보이 배틀에서 우승하며 ‘소울헌터스’라는 유명 비보잉팀에 입성하게 됐다. 그러나 당시 ‘비보잉’은 뒷골목 문화라는 편견이 있었다. “춤을 업으로 삼는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심해서 춤을 그만두고 공장에서 돈을 벌기도 했어요. 하지만 돈이 없더라도 다시 춤을 춰야 저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느꼈고 춤을 추기로 했죠.”

이후 한솔 씨는 댄서로서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전념했다. 그쯤 무용 선생님으로부터 신체 조건이 좋은데 무용을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무용을 시작하기에 나이가 많다는 주변의 우려에도, 25살에 무용학과에 입학했다. “절제된 동작과 풍부한 감정 표현도 갖추게 되자 댄서로서의 역량이 더 커졌어요.” 이를 통해 그는 비보잉과 현대무용, 한국무용 세 장르를 모두 섭렵하게 됐다. 현재 한솔씨는 댄스팀 ‘already awesome’의 대표이자, 현대무용팀 ‘시스템 온 퍼블릭 아이’, 한국 무용팀 ‘마훌라 컴퍼니’에 소속돼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7개 국이 참가하는 ‘골든에이지’ 대회에 한국 1인 대표로 출전했던 때를 꼽았다. “춤 추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셨던 부모님이 처음 보러 오신 공연이었어요. 정말 재밌는 공연이었는데 부모님은 객석에서 울고 계셨죠. 제가 걱정돼서 그토록 반대하셨다는 것이 느껴졌고 가족에게 분노했던 마음이 모두 녹아내렸어요. 그 뒤로 저는 항상 부모님의 자랑이 됐습니다.”

한솔 씨는 올해로 춤에 정진해온 지 15년이 됐다. 그는 과거 시간 제약 없이 춤을 연습하기 위해 개업했던 aa 댄스 스튜디오에서 이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전주시의 대중문화를 발전시키고자 댄스 공연 기획에도 힘쓰고 있으며, 오는 10월 22일에는 우리 학교 대학로 상점가와 함께 댄스 배틀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쌓으면서도 누군가의 스승으로, 때로는 공연 기획자로 춤에 관한 일이라면 도전을 마다치않았다. 한솔 씨는 춤에 삶이 묻어나는 댄서로 기억되고 싶다며 춤을 향한 굳건한 열정을 드러냈다. “예술은 나이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아요. 댄서의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들이 그저 자신을 믿고 노력으로 증명했으면 좋겠어요.”

황설희 기자 gkak1248@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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