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밀군 채우지 못한 경우 꿀 흉년 불가피
“양봉농가 지원 및 보상 범위 확대 촉구”
기후변화 완화 위한 각계각층 노력 절실

▲꿀벌들이 들어 있는 벌통의 모습이다.
▲꿀벌들이 들어 있는 벌통의 모습이다.

“꿀벌들을 월동에서 깨우기 위해 봉군(꿀벌이 무리 지어 활동하는 공동체)을 들여다봤는데, 벌들이 없었다. 월동을 지나고 나니 총 60군의 봉군 중 26군의 봉군이 비어있는 상태였다.”

전북 익산에서 5년째 양봉업을 하는 박넝쿨 씨는 지난해 월동 이후 절반가량의 꿀벌들을 잃었다. 어찌해야 하나 하루하루 막막했는데 다행히 올해 날씨가 도와줘서인지 아카시아 꿀 유밀은 현재까지 작황이 좋다. 하지만 변동이 너무 많아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도 없다.

▲ 전국 4173개 농가 39만 517개 벌통 꿀벌 손실
지난겨울부터 전국 각지에서 꿀벌 폐사 소식이 전해졌다. 농촌진흥청에 의하면 전국 4173개 농가의 39만 517개 벌통의 꿀벌이 손실됐다. 김종화 한국양봉협회 전라북도 지회장은 “전라북도청에 등록된 29만 2천 통 중 약 30%에 해당하는 8만여 통에서 이러한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며 “44년 양봉업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벌이 폐사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약 78억 마리의 꿀벌 집단 폐사 사건의 원인으로 조재영(농대·생물환경화학) 교수는 ‘급격한 기온변화’를 꼽았다. “꿀벌은 온도 변화에 민감한 변온 동물”이라며 “지난해 11~12월, 고온이었기에 꿀벌들이 동면에 들어가지 않고 오후 2~3시 꿀 채집에 나섰다가 오후 4시 이후 찾아온 극심한 일교차를 견디지 못한 채 벌통 밖에서 동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화 전북 지회장은 꿀벌들이 ‘살충제 남용’으로 폐사했다고 말했다. “꿀벌 발육에 영향을 주는 기생충인 꿀벌응애의 수가 급증해 기존보다 더 많은 살충제를 사용하게 됐다”며 과도한 살충제 사용으로 꿀벌응애에게 내성이 생겨 꿀벌들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됐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근래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농약 네오니코티노이드 또한 꿀벌의 기억력과 위치 파악 기능에 혼란을 일으키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폐사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꿀벌 집단 폐사에도 양봉업자들은 예약된 자연 숙성 천연벌꿀의 수량을 맞춰야 했기에 채밀군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양봉업자 박넝쿨 씨는 “벌통 하나에 보통 15만 원이었는데 올해 25만 원에서 35만 원 정도로 가격이 뛰어 비싼 가격에 겨우 채밀군 꿀벌을 구해 꿀 생산을 이어 나갔다”고 전했다. 채워져 있는 봉군보다 반도 채워지지 않은 봉군이 더 많은 상태, 분명 이번 해 꿀 생산은 굉장히 암담할 것으로 예상했다.

▲꿀 재배 이상적 환경에도 증가폭 제한적
올해 전반적 꿀 채집량은 지난 2년에 비해 양호한 작황을 띠고 있는 상태로 나타났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벌꿀 생산량은 1만 톤으로 평년 수준인 8만 5000톤에 비하면 상당한 흉작이었다. 지난 2년간 봄철 이상저온, 잦은 강우 등으로 흉작에 시달린 데에 반해 올해는 작황 상황이 좋으며 풍작을 예상할 정도다. 윤화현 한국양봉협회 회장은 “벌통마다 보유 중인 벌꿀 양에는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벌통이 꿀벌로 가득 찼다”며 “이상 기후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올해는 풍년일 것”이라고 말했다.

벌꿀 집단 폐사로 우려됐던 꽃가루받이 피해와 벌꿀 수급 난항도 걱정과는 달리 비교적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소비량이 많은 벼, 밀, 보리, 콩 등의 주요 곡물과 복숭아, 포도는 꽃가루받이를 도울 곤충이 없어도 자가수정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사과와 배는 꽃가루 분사기를 통해 인공 수정되므로 꿀벌 피해가 작물 재배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지금은 꿀벌 사육마릿수가 약 240만 봉군인 데 비해 153만 봉군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던 지난 2011년에 2만 톤 수준의 벌꿀을 생산했기에 올해도 원활한 벌꿀 수확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집단 폐사의 영향을 지속해서 받는 농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단 폐사 이후, 꿀벌을 추가로 들여오지 않은 농가는 흉년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월동 폐사 이후 벌통과 꿀벌 가격이 높아졌고 일부 농가는 경제적인 부담 등의 이유로 이를 구매하지 못했다. 윤화현 협회장은 “지난 겨울 집단 폐사로 꿀벌 개체 수가 줄었기에 봉군 당 꿀 생산량이 늘었더라도 전체 생산량 증가폭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월동 폐사로 손해를 입었으나 꿀벌을 재구매해 채워 넣지 못했거나 약해진 벌통을 이전으로 되돌리지 못한 농가들은 대부분 채밀조차 어려운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농업재해로 인정 안 돼 지원 어려워
이번 꿀벌 집단 폐사 사건은 ‘농어업재해대책법’ 상 ‘농업재해’로 인정되지 않아 피해 양봉농가에 제대로 된 지원이 이뤄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병충해가 아닌 자연 실종에 따른 피해이며 이상기후와 이번 꿀벌 폐사의 인과성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다. 김추철 전라북도 농축산식품국 축산과장은 “사태 해결에 필요한 긴급 예비비는 긴급재해대책을 위한 보조금으로만 지원 가능한데, 이를 위해서는 중앙행정기관의 농업재해 선포 등이 이뤄져야 한다”며 “선포 없이 보조금 지원 시 관련 법령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에 지원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 시도와 함께 농림축산식품부 및 정치권에 피해 현황 조사, 농업재해 선포, 피해 지원 대책 수립, 꿀벌 질병 보상 범위 확대 등을 촉구했다”고 덧붙였다.

김종화 전북 지회장은 “긴급 예비비 지원을 원하지만, 예비비 편성이 어려워 전라북도 측과 협의를 진행했고 추경에 기자재 등을 지원 받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국립농업과학원의 발표로는 국내에서 꿀벌이 농작물 생산에 기여하는 가치는 약 5조 9000억 원에 달한다. 김종화 전북 지회장은 “꿀벌은 전 세계적으로 막중한 가치를 지녔지만 그 가치를 대부분 잘 모른다”며 “꿀벌의 중요성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이어 “숙련된 양봉업자들도 폐사를 피해 가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마이스터대학을 설치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생육에 영향 끼치는 농약 금지, 탄소배출 최소화
전문가들은 꿀벌이 살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다고 강조한다.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용수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원은 “현재 벌통 내부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디지털 양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니터링 기술은 벌통에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는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농도를 확인할 수 있게 돕는다. 그는 “만약 꿀벌 개체 수가 줄어든다면, 벌통 내 온도도 내려가기 때문에 사전에 이상함을 느낄 수 있고 빠른 대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영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꿀벌의 생육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농약에 대한 신규 등록이나 변경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카시아나무, 백합나무 등 꿀 향기가 진한 밀원수를 확대 조성해 꿀벌에게 최대한 많은 꽃을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는 농가 차원에서는 꽃이 피어있는 기간 농작물의 품질 향상과 수량 증대 목적의 살충제 살포를 지양하길 권했다. 꿀벌들은 꽃이 피어있을 때 가장 활발히 활동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재영 교수는 “꿀벌 개체 수 유지에는 탄소배출의 최소화를 통한 기후변화 완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일상생활에서 대기전력을 줄이기 위해 플러그를 뽑거나,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텀블러 사용을 생활화하는 것을 추천했다.

백선영 기자 seonyoungkk@jbnu.ac.kr
임현아 기자 crushonair@jbnu.ac.kr

저작권자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