⑱ 『단지 유령일 뿐』, 유디트 헤르만, 민음사

어떤 글은 문체 그 자체가 문학이 되기도 합니다.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이 그런 글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이 책은 소설집이고, 7편의 단편이 모여 있습니다.

이 소설집은 우리가 흔히 소설 하면 떠올리는 기승전결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과거 소설이 가지던 형식이 아니라는 점이 이 소설만의 독특한 형식일지도 모릅니다. 단편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별하고 어딘가로 떠납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떠난 곳에서 새로운 사건을 마주치거나, 많은 여행 영화에서 나오듯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설레는 뜻밖의 관계를 형성하지도 않습니다. 극적인 연출이 없습니다.

 이별했다고 해서 모든 생활이 이별의 쓸쓸함만 가득한 일상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쓸쓸함과 슬픔이 없다고도 할 수 없어요. 때로는 낯선 장소에 대한 궁금증을 느끼기도 하고, 담담히 이별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은 만나 작은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일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소설은 문체가 곧 문학입니다. 사건이 없다고 해도, 그리고 나는 슬프다, 나는 외롭다, 그런 단어로 쓰지 않아도, 우리는 유디트 헤르만의 글을 읽으면 저절로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마치 아무 말이 없는 사람이 눈빛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듯이, 나는 슬프다고 쓰지 않지만, 문체, 즉 글의 몸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말하고 싶을 때는 소리 내어 말하는 것보다 몸짓, 침묵, 그리고 일상의 자잘한 행동으로 더 잘 보여줄 때가 많습니다. 이 소설이 그렇습니다.

 ‘천천히 담배를 피웠다. 펠릭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잠들었는지도, 아니면 잠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얼굴에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엘렌은 그의 눈가에 있는 주근깨와 코에 깝질이 벗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를 끔찍하게 사랑한다.’라는 표현이 떠올랐고, ‘나는 너를 끔찍이 사랑해, 나는 너를 끔찍이 사랑해.’라고 여러 번 연달아 생각했다. 그러자 말의 의미가 사라져 버렸다. 창밖으로 내다본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조용했다. 그림자는 점점 더 길어졌고 빛은 푸른색으로 물들었고 열어 놓은 방문 사이로 열기가 쉼 없이 무겁게 스며들어 왔다.’ -117쪽

강성훈│독립서점 카프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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