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해 국민이 군부 독재에 항거하며 몸바쳐 싸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오늘로 42주년을 맞는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남도민과 광주시민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보안사령관 및 12·12 사태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의 퇴진, 김대중을 위시한 민주정치 지도자 석방 등을 요구하며 벌인 운동이 바로 5.18 민주화 항쟁이다.

짧지만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시민은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폭력진압에도 결코 무릎 꿇지 않았다. 하여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전두환 신군부의 헌정 유린에 분연히 맞선 한국 민주주의의 금자탑으로 자리 잡았다. 나아가 5·18민주화운동과 그 정신은 혼돈의 시대를 밝힌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이자,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투쟁하고 있는 전 세계 시민에게도 희망의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의 진실과 학살에 대한 사과 없이 노태우와 전두환은 사망했고,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고 5·18 광주 학살을 벌인 신군부 핵심 5인(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 중 남은 사람은 2명뿐이다. 이희성 5·18 당시 계엄사령관과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만이 살아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26일 노태우, 뒤이은 11월 23일 전두환에 이어 해를 바꿔 지난 4월 23일 황영시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특히 노태우와 전두환은 끝내 참회나 사과 등의 뉘우침이 없었다. 12·12 쿠데타 과정에서 내란죄·내란목적살인죄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그들에게 끝내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책임은 묻지 못했다. 오늘날 5·18 정신을 헌법에 담겠다는 약속에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조사도 이뤄지고 있지만, 억울함과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건 왜일까?

더구나 여전히 5.18을 두고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매도하기도 하며, 소위 일베라고 불리는 한 사이트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진실을 부정·왜곡하는 사람들의 온상으로 떠오르며 고귀한 희생을 조롱과 폄훼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심지어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들이 나서 시민군 다수가 북한 특수군이었다는 파렴치한 왜곡도 서슴지 않고 있다.

5·18은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되는 것은 물론, 1997년 5월 18일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는 등 온당한 역사 정립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와 역사적 왜곡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짓이다.”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시 처벌할 수 있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 소위 ‘5·18역사왜곡처벌법’이 지난해 1월 시행되어 이런 행위가 잦아들고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밑거름이 된 5·18 광주민주화운동.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열사들이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분명한 건 화해와 용서는 지속적인 진상규명과 가해당사자들의 진정한 사과 그리고 살아있는 역사로서 ‘5월 광주’를 함께 기억하고 소환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진실보다 위대한 애도는 없다. 과거가 아닌 오늘의 역사로서 광주를 기억하는 것은 진실을 향한 처절한 규명, 그것이 그날의 5월 광주에 응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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