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을 맞아 설레는 마음으로 첫 수업에 들어갔다. 호기심과 설렘도 잠시, 학생들을 향한 교수의 비판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강의계획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마자 교수는 대학생들의 의식에 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주된 내용은 지난 학기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새로운 학생들에게 걱정과 당부를 덧붙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학생들의 태도를 일반화시켜 지적을 일삼는 예는 많다. 얼마 전 기자가 진행했던 교수 인터뷰 중 놀라웠던 것은 대학생들에 대한 칭찬의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조언과 아쉬운 점에 대해서는 교수들의 말들이 쏟아졌지만 칭찬에는 인색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칭찬 받은 적이 언제인가. 발표 수업을 할 때도 틀린 부분에 대한 지적을 할 뿐 칭찬은 부족했다. 그 흔한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도 듣기 어려웠다. 이렇게 칭찬 없이 쏟아지는 비판 속에서 학생들은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학생들이 발표수업을 기피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격려 없이 쏟아지는 지적 때문일 것이다.  
대학생들을 향한 공격은 비단 강의실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대학생을 보는 시선은 학교보다 더 날카롭고 거칠다. 혹자는 청년실업의 원인은 개인이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고 한다. 또 다른 혹자는 대학생들은 사회문제에 등을 돌린 채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라고 폄하한다.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사회에서 준비를 하라고 강요하며 대학생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였을까. 대학생들에 대한 평가가 ‘게으르다, 열정이 없다. 놀기만 한다. 목표의식이 없다’라는 말로 대표된 것은. 21세기 대학생에게는 그 시대 젊은이에게 맞는 고민이 있다. 과거와 비교하며 현재의 대학생들을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생각이다. 사회는 등록금과 학점, 토익, 아르바이트 등으로 얼룩져 피폐해진 대학생들의 내부는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모든 원인을 대학생 개인의 문제로 돌린다. 대학생의 노력이 부족할 뿐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기성세대는 항상 대학생에게서 새로운 것을 원한다. 대학생에게 창의성과 새 시대를 열 책임감을 부과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대학생들에게 거는 기대만큼 격려와 칭찬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교는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하지만 대학생은 예비 사회인일 뿐 사회인은 아니다. 아직 격려를 받고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먹고 자라나는 학생이다. 
허황한 칭찬이 아니더라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로도 노력이 보상받는다는 기분을 알까.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따뜻한 시선으로 대학생들을 바라보길 바란다. 21세기 대학생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칭찬’이다.    김슬기┃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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