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짐 벗고 하늘에서 편히 쉬소서

투옥·연금속에서 민주화 의지 불태워

퇴임 후에도 세계와 인류 문제 고민

도서관에 대통력 흔적 고스란히 남겨

 

민주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제 15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1시 43분 향년 85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숱한 투옥과 연금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낸 '인동초'같은 사람이었기에 국민들의 애통함과 아쉬움은 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와 흔적을 찾아 나선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아시아 최초의 대통령도서관이다. 지난 2003년 설립된 김대중도서관은 지상 5층 지하 1층으로 구성돼 있고 시민들에게는 1, 2층만 개방돼 있다. 1층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에 관한 자료들과 대통령 재임 당시와 퇴임 이후의 기록들이 소개돼 있다. 2층은 각국 정상들이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내온 선물들과 의상들이 전시돼 있고, 3층과 4층은 각각 통일연구원과 김대중 도서관후원회가 들어서 있다. 그밖에 책을 누구보다 사랑한 김 전 대통령답게 1만6천 여 권의 서적과 김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국정운영 사료, 민주주의와 인권 관련 전문자료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대중도서관 1층 로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작은 분향소였다. 조문객들은 저마다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며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었다. 간간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시민도 있었다. 김대중도서관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시설관리를 맡아온 임동섭 씨 또한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있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말단 직원에게도 반갑게 인사하시며 안부를 챙겨주시던 인정 많은 분이셨다"며 "병이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에 쾌차하실 줄로 믿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분향소를 지나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김 전 대통령의 고등학교 시절 증명사진이다. 짧게 자른 머리와 강인한 인상에서 그가 생전에 지녔던 불굴의 의지와 투쟁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해운업에 종사하던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52년 이승만 정부가 정권 연장을 위해 일으킨 부산정치파동에 분노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1954년 목포에서 오늘날 하원에 해당하는 민의원에 출마,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이후의 김 전 대통령의 정치생활은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이고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1963년 김 전 대통령은 3번의 낙선 끝에 목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달변과 공부하는 정치인으로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0년에는 신민당 대선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박정희 후보에게 94만 표의 차이로 낙선하게 된다. 이후 군부세력과 유신시대에 반대하는 운동가로 급부상하며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결코 불의에 꺾이지 않았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 1998년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취임식 사진을 보고 있던 박일환(숭실대·산업정보시스템03) 씨는 "영결식을 봤는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고 느껴 도서관에 오게 됐다"며 "대통령도서관이라고 해서 크고 웅장한 줄 알았는데 소박한 것을 보고 평소 김 전 대통령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신군부 세력으로부터 북한의 사주를 받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일으켰다는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 받는다. 도서관 안쪽에는 투옥 당시 입었던 수의와 옥중 사용한 물품들을 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투옥 당시 깨알 같은 글씨로 쓴 봉함엽서가 눈에 띄었다. 엽서 글귀를 보니 '용기는 바른 일을 위하여 결속적으로 노력하고 투쟁하는 힘이다. 용기는 모든 도덕 중 최고의 덕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과 나태를 물리칠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꾹꾹 눌러쓴 글자 하나하나가 민주화에 대한 그의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고 김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가족에게 보낸 엽서

이 날은 평소에 개방하지 않았던 대통령 퇴임 후 김 전 대통령이 집무실로 사용한 5층이 공개됐다. 집무실은 김 전 대통령이 국․내외 인사들과 교류하거나 손님접대 및 각종 비서회의가 진행됐던 곳이다. 최경환 공보비서관은 크게 걸려있는 세계지도를 가리키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으셔서 세계지도를 항상 집무실에 붙여두셨다"며 "세계와 인류의 문제에 대해 가장 고민하시고 걱정하시던 대통령이셨다"고 덧붙였다.

고 김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사용한 집무실

도서관 밖으로 나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김 전 대통령이 55번의 가택연금을 당했던 민주화의 성지 동교동 자택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주위에는 경찰들이 사진촬영을 금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가 계속되고 있었다. 동교동 자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32년 간 김 전 대통령 가족의 세탁을 책임졌던 박병선(66·서울시 마포구) 씨는 "나라의 기둥으로 좀 더 오래 사시길 바랐다"며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닌 큰아버지 같이 친근하게 느껴졌던 분이셨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도서관에서 만난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 남북 관계 발전에 대한 희망,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철학을 지닌 민족의 큰 어른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인생과 정치절학은 그 자체로 한국정치사의 발자취이자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증언해 주고 있다.

그의 고결하고도 강건했던 그의 뜻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한국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용기를 내야 하는지 그의 삶이 우리에게 또 다른 역사적 물음을 던져놓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