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은 선생님의 은덕과 공을 기리는 스승의 날이었다. ‘빨간 날’은 아니지만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전국의 학교에서 이를 기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이러한 스승의 날의 시초는 1958년 논산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병중이거나 퇴직한 선생님을 위로키 위해 봉사활동을 펼쳤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생들의 선행을 알게된 청소년적십자 충남협의회는 9월 21일을 ‘은사의 날’로 정하고 기념 행사를 진행해왔다. 그러다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날짜를 옮기고 명칭도 ‘스승의 날’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스승의 날이 전국 초·중·고등학교 행사로 확산됐고, 윤석중 작곡의 스승의 날 노래도 이러한 현상을 부추겼다. 이후 유신정권의 핍박으로 스승의 날 행사가 규제를 받기도 했지만 1982년 부활한 이래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스승의 날 행사도 존폐의 위기에 놓였던 적이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높은 우리나라의 교육열 때문일까? 정치계에서 나올법한 금품수수와 촌지논란으로 한동안 교육계가 떠들썩했다. 급기야 스승의 날을 없애거나 변경하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고등학교 시절 존경하던 담임 선생님께 작은 선물, 꽃 한 송이 드리지 못한 채 학생들이 서로 눈치만 보던 기억도 난다.
대학에 와서 보니 스승의 날에 교수와 제자가 함께 하는 행사는 매년 어김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학교 홍보대사는 교직원에게 꽃을 선물하고 총학생회 간부들도 본부 보직교수들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또한 스승과 제자가 체육활동으로 친목을 다지거나 각 학과·단대 학생회도 단대 건물에 현수막을 걸고 교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대학도 역시 ‘나를 가르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스승의 의미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행사 내용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처럼 의미 있는 스승의 날 행사가 자칫 ‘속빈 강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스승의 날 행사에는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면서 휴강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학생들을 보며 서운함을 느꼈다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이미 스승의 날 행사는 일부 소수의 학생이나 학생회만 참여할 뿐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년 스승의 날은 돌아오지만 주체가 되는 스승도 제자도 없이 자꾸 의미만 퇴색해 가는 듯 하다. 스승의 날이 생긴 이유는 그동안 받은 가르침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소박한 마음일진대 정작 오늘날에는 행사만 있고 그 안에 알맹이는 없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나 역시 이와 같은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학생기자로 활동하면서 취재를 위해 수도 없이 교수 연구실의 문을 두드려 왔지만 강단에선 교수님이 마냥 멀게만 느껴져 소속학과의 교수님을 찾아뵙는 일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활의 7부 능선을 넘어오면서 건지인들은 나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감히 제언한다. 내가 지금 와서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학점관리도 토익성적도 아닌 학업과 진로가 고민될 때 조언을 구하고 싶은 은사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교수와 학생간 단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마음의 창을 닫지는 말자. 서로 교감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소통의 가능성을 믿어 보자. 다음 스승의 날에는 형식적인 만남은 잠시 접어두고 학년과 소속을 떠나 따뜻한 배려로 감싸주셨던 교수님께 말 한마디 건네는 학생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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