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무라 미즈키| 이윤정 역| 손안의책(사철나무)| 2008

 

하얗게 얼어붙은 바다에 잠겨있는 고래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아시자와 리호코라는 소녀의 성장 소설이며, 그녀가 사진을 찍게 된 계기를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도라에몽이라는 만화를 소재로 하여 전개되는데, 도라에몽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도구들이 부제목으로 쓰이는 것이 흥미롭다.
리호코는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편, 밤에는 술집에서 어울려 노는 예쁜 외모의 소녀다. 어릴 적 유명한 사진가인 아버지가 위암에 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실종된 후, 어머니마저 난소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이다. 그녀에겐 사람들을 ‘조금·어떠하다’라고 분류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녀는 스스로를 ‘조금·부재’ 라고 부른다. 그녀는 마치 도라에몽에 나오는 요술문(원하는 곳을 말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도구)처럼 학교에서든 어디에서든 문제없이 녹아들어 친해질 수 있지만, 절대 그 어느 것에도 진심을 가지지 못한다. 스스로가 외롭고 고독함을 알면서도 절대 무엇에도 열정을 가지지 못하는 무감각한 소녀. 그 소녀가 신문부 선배인 벳쇼의 사진 모델 제안을 받으면서 시작된 인연이 그녀를 바꾸게 된다. 특히 유명한 지휘자를 아버지로 두었지만 사생아로 태어나 빛을 보지 못하는 이쿠야라는 어린 소년을 알게 되면서 그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에 위로 받고 감명 받으며 리호코는 점점 변한다. 애인이 있음에도 리호코에게 부재하던 감정이 작은 만남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당신이 그려내는 빛은 어째서 그렇게 강하고 아름다운 걸까요?
간혹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내가 찍고 있는 사진 얘기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늘 똑같다.
그것은 캄캄한 바다 밑바닥과, 머나먼 하늘 저편의 우주를 비출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곳에 있는 사람을 비추어 숨을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살아가기 위한 장소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받은 적이 있다. 아무도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몇 년이나 지난 옛날에 그 빛이 나를 비춰 준 적이 있는 것이다.
같은 빛을 이 세계에 전해주고 싶어서, 나는 사진을 찍고 있다.’
얼음 속에 갇혀 숨을 쉬지 못하고 바다 깊숙이 가라앉는 고래는 조금·부재한 리호코의 모습이며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리호코가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빛은 그녀의 아버지와 이쿠야, 그녀를 사랑하는 이들의 애정이다. 그녀가 사진을 통해 전하고 싶어하는 빛은 우리에게도 비춰지고 있을까? 그 빛이 내게 비춰지고 있다면 삶을 살아가며 그보다 행복하고 감동적인 일은 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게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의 증거일 테니까.
천혜란|문헌정보·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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