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역사가 양심에 묻는다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모든 국민들은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만한 대가를 직접 몸으로 감당해 왔다. 예컨대 이승만의 권력남용과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4·19혁명, 그리고 부마항쟁이 그것이다. 또한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는 5·18 민중항쟁 역시 민주화 투쟁의 절정기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이 쟁취하고자 했던 항쟁과정에서 뜻밖의 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런 군의 무력 진압과정 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려야만 했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백 명의 죽음과 수천 명의 인권침해를 자행했던 책임자들의 대가는 과연 어떤 결과로 귀결되었는가? ‘성공한 내란은 처벌 할 수 없다’, ‘공소권 없음’이란 지극히 형식적인 법적 논리로써 종결 처리되었다. 권위주의적 군부의 영향력 속에 숨죽이고 있었던 검찰의 태도는 마치 칼과 칼집의 관계를 연상케 했다. 지금도 책임자들은 공소시효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대규모 학살행위가 실증적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보관되어 있어도 가해자가 없다거나 더 이상 밝혀내지 못하는 현실을 두고, 그 어느 누가 대한민국을 법치주의국가라고 감히 논할 수 있겠는가 싶다.

벌써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1주년이 되었다. 많은 일반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데 어울려 그들의 소박하고 낮은 목소리로 현 정부의 일방주의와 독선주의를 비판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정작 돌아 온 답변은 집회 참가자 및 관련자 전원 수사와 구속영장이었다. 이런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와 재판관의 비본질적 행동양식을 주목해 볼 때, 과거나 지금이나 피 묻은 칼과 칼집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적용된다는 점을 새삼 알게 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시키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의문스럽기 그지없다.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법 해석과 법 집행’인지 말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법적 정의를 다시금 일으켜 세워야 할 법률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소명과 임무를 뼛속 깊이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깊은 성찰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광주의 봄은 또 이렇게 소리 없이 우리들 곁으로 찾아오고 있다. 그때 그 시절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내일을 향한 역사는 기성세대와 다음 세대들에게 이렇게 말을 걸고 있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언젠가 다시 한번 반복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너와 나는 이 역사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응답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 오고 있다.

신종훈┃전남대 교류학생·정치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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