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에서 열린 범국민대회 취재를 다녀왔다. 서울 시청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무장하고 있는 전경들뿐이었다. 지난해 촛불 집회 때보다 더 많은 전경들이 집합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수가 많았고, 그들은 사람이 모일만한 장소라면 빈틈없이 배치돼 있었다. 불법 집회로 간주된 터라, 게릴라식 시위가 진행됐고 여기 저기서는 범국민대회 참가자가 연행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 2일에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며 시작된 촛불 집회가 1주년을 맞아 청소년, 시민, 시민단체 등 지난해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서울 시내에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특히 이날은 집회로 인해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하이서울 페스티벌이 취소됐다. 이후 경찰들은 시청 광장을 점거했고 나이·성별을 불문하고 촛불만 들고 있으면 연행해 가는 비이성적 행태를 보였다.
1년 전과 변화한 건 하나도 없었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민심을 외면하고, 촛불 재점화를 막기 위해서만 혈안이 돼 있었다. 이렇게 바깥 상황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우리들은 점차 이 상황을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촛불 집회 때 전경과 시위대의 대치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1천명이 넘는 시위자가 연행됐다. 또 많은 이들이 전경의 방패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으며 군홧발에 밟히는 여대생도 있었다. 이 때 너무 충격적인 장면을 봐서일까. 이젠 누군가가 피를 흘려도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하루가 멀다 하고 촛불집회가 열려서인지 몇몇 시민들은 "또 시작이야"라는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간은 적응이 가장 빠른 동물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러한가. 배후가 누구냐며 유모차 부대를 연행하고 인터넷에서 현 정권을 반대하는 글을 올리면 잡혀가는 상황, 우리는 너무 쉽게 적응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적응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옥죄어 올 법안들이 줄줄이 상정을 기다리고 있다. 언론장악 음모에 다름 아닌 미디어법, 반인권법이라 불리는 집시법, 경찰관직무집행법까지 생각하면 가슴 답답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대한민국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돼 있다. 우리는 촛불집회 때 많은 걸 외쳤지만 실상 이뤄진 건 없었다. 이제, 그것이 현실이라고 포기하고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적응하기엔 아직 이르다. 현 정권이 남은 임기 동안 어떤 정책으로 우리를 절망에 빠뜨릴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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