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라는 직업이 말로 지식을 팔아먹는 일이라 그런지 요즘 말이 많아졌다. 학생들 앞에 서면 입이 근질거려 혀를 억제하지 못하겠다. 말이란 인격체와 인격체가 만나 서로를 나누는 것이어야 하는데 교수가 된 이후부터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내 말만 하려고 한다. 인생을 얼마나 안다고 입 밖으로 나오는 말도 대부분 설교조의 말이다. 교수랍시고 훈계조로 내뱉은 나의 말에 많은 학생들이 상처받고 괴로워하였을 것이기에 깊이 반성한다.

오늘날 내가 교수가 된 것은 순전히 대학시절 스승님의 말 한마디에 의해서다. 진로 및 여러 인생문제로 방황하던 2학년, 한 모임에서 교수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이군, 나는 자네가 좋네. 자네 같은 사람이 교수가 되면 좋겠어”라고 하셨다. 방황하던 나에게 ‘그 말 한마디’는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 후부터 교수가 돼서 학생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고, 스승님의 말씀대로 교수가 됐다. 말이란 단순히 목과 입안에서의 소리 합성이 아니라 가슴의 울림에 의한 생명의 노래여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을 알수록 만남의 대상에게 꿈을 주고 기를 살려주는 말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교수 방을 노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큰 마음먹고 교수를 찾아와 고민을 이야기하고 진로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데, 한심하다는 듯 나무라는 말만 한다면 학생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용기를 주며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말(대화)의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학교에 온 지도 20여 년이 됐다. 보수가 연구소 절반밖에 안되지만 학생을 사랑하기 위해 교수가 됐다. 교수생활 초기에는 사명감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그 후 오랜 시간, 연구비 수주와 내 잘난 맛에 열심을 냈지 학생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말과 경멸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난 2학기 수업 전, ‘아버지와 아들(nick and dick)’이란 동영상을 틀어 주고는 “너희들은 불구자도 아닌데 왜 좌절하고 낙망하며 아무 꿈도 없는가, 함께 달리자”고 말했다. 가슴속에서 나오는 사랑도 주고 가끔 식사도 하며 강의를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전공Ⅰ에서 F를 받은 학생이 전공Ⅱ의 중간시험에서 100점을 맞은 것이다. 불러서 “전공Ⅰ에서 F를 받았던 학생이 절대 100점을 받을 수 없다, 커닝한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3주 동안 다른 공부는 안하고 밤을 새며 내 과목공부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래도 믿지 못하겠으니 기말고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기말고사에서도 100점을 맞은 것이다.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가 불가능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경험했다. 내 잘난 맛에 일방적으로 말하고, 충분히 바뀔 수 있는 학생들을 경멸하기만 했었던 과거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호시우행(虎視牛行)이라는 말이 있다. 목표를 호랑이 눈으로 보고 소걸음으로 우직하게 걸어간다는 뜻이다. 교수로서 소명을 다하기 위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앞으로는 소걸음으로 우직하게 처음 사랑으로 한 걸음씩 내딛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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