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확장·장르 해체·주제의 다양
미술에 허구성 추방하고 삶과 일치시켜
뒤샹의 레디-메이드…패러다임의 전환

작품의 독창성(Originality)을 통해 순수 고급예술을 추구했던 모더니즘 예술은 삶이나 일상과는 완전히 분리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했기 때문에 예술은 일상의 주제나 소재 등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현대미술은 다양한 미디어의 확장과 장르의 해체, 주제의 다양성 등으로 인하여 다원화 현상이 점차로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 등 정보산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탈이념시대의 개막이라는 외적인 요인 이외에도 개성적인 세대의 탄생과 페미니즘, 비판적 역사주의, 키치, 새로운 미디어의 사용을 통한 다양한 창조 욕구, 전통적인 진리와 이론들에 대한 해체 등에 따른 것이다. 현대미술에서는 모더니즘 예술처럼 예술과 삶이 더 이상 단절되고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미술과 삶의 동일성은 포기한다. 미술작품을 그 환영적, 가상적 성격으로 되돌리고 그것이 허구임을 다시 확인한다. 

◇뒤샹의 작품 '샘(Fountain)'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전환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던 영역이 바로 사진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즉 현대미술에서는 우리의 존재가 단순한 이미지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모두가 거울의 끝없는 이미지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더 나아가 이 시대에서는 우리 경험의 오리지널리티의 가능성을 믿기는 어려우며 우리 모두는 우리가 보는 것의 노예라는 사진 평론가 앤디 그룬드버그의 견해처럼 오늘날 일상의 삶을 반영하는 미디어의 시초가 되어버린 사진의 의미는 실로 엄청난 것이 되어버렸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모더니즘이 신봉하는 새로움, 오리지널리티, 작품의 유일무이성, 작가의 강조나 또는 모더니즘의 제도권화 등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하거나 또는 이젤화로서의 모더니즘의 전통을 타파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게는 사진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의 하나가 되었다.
20세기 초인 190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계속된 모더니즘은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지상주의 미술을 추구하였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19세기의 유미주의처럼 미술작품을 대상세계의 환영적, 가상적인 재현에 의해 미적 허구로 만들고 그 결과 실재하는 삶의 세계로부터 미술을 분리·고립시켰다고 비판하는 몇몇 미술가들이나 미술사조 또한 등장하게 되었고 이런 관점에서 미술 작품에서 허구성을 추방하여 미술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이런 시도는 비록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은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들이었다. 우리는 가장 극단적인 예를 다다(dada)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18년 다다주의 선언에 의하면 “다다는 어떤 미술운동도 아니다. 우리가 삶의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삶 자체의 하나의 방향이다. 따라서 미술은 그 환영적 성격을 포기하고 삶의 형상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다운동을 주도했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20세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巨匠)이다. 아울러 그는 현대미술에서 가장 난해한 논쟁들을 일으켰던 장본인이자 동시에 그에 대한 정확한 해법 역시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뒤샹은 1917년 미국의 앙데팡당 전에 그 유명한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의 남성용 변기를 전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당시 미술계는 전반적으로 아카데믹한 학풍, 즉 제도적인 틀에 맞추어 잘 그려진 그림들이 온갖 상을 휩쓸며 각광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뒤샹은 아주 세속적인 소재인 남성용 변기를 통해, 그것도 작가가 직접 제작한 변기도 아니고 공장에서 수천, 수만 개 대량생산된 복제품을 예술작품으로 출품하였다. 물론 그 당시 뒤샹의 이런 도발적인 행위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져 난타를 당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화풍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던 뒤샹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주목받기 위해서? 물론 아니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 변기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은 예술작품을 억압적 패러다임에서 해방적 패러다임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레디-메이드(Ready- Made, 기성품) 변기를 출품함으로써 그는 ‘창조’적 행위가 아닌 ‘선택’을 통해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작품을 제작하지 않았거나) 혹은 충분히 제작하지 하지 않았다. 그는‘변기’를 제작(창조)하지 않고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 예술의 근본적인 문제인 ‘창조와 비창조의 관계’, 즉 예술작품에서 제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연 작가의 손기술인지, 아니면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작가의 메시지나 철학적 사고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고 작품의 시각적 형식보다는 개념적 과정이라는 측면을 작품의 전면에 부각시켰던 것이다. 아울러 복제적 세계 속에서 유일성과 단일성이라는 관념이 사라지고 개념적 구상과 맥락에 의해 작품의 의미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매체와 미술개념 양쪽모두에 있어서 혁명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다시 독자들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다. 만약 다른 사람이 뒤샹의 변기와 똑같은 작품을 다시 출품하게 된다면 이것 역시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해답은 또 다시‘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문제로 회귀된다.


이태호┃미술학과 겸임교수·익산문화재단 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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