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신영복, 돌베개, 2004

『강의』를 초등학교 은사님께 보내드렸고, IT 중소 업체를 운영하는 젊은 사장님께 선물하였다. 나는 두 번째 읽기 시작하였다.

2005년 초봄, 신영복 선생님께서 전북대에 들르셨다. 월간 잡지 「열린전북」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고전으로 읽는 성찰과 전망’이라는 강연 때문에 귀한 발걸음을 하신 것이다. 삼성 문화회관 건지아트홀은 복도와 연단이 사람으로 꽉 찬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쉼 없이 이어진 세 시간의 강연. 그때의 감동을 열린전북 2005년 4월 호에 썼다. 이렇게 신영복 선생님과 『강의』를 만났다.

이 책은 동양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개인뿐 아니라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본질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바탕에는 자기 성찰이 깊고 넓게 깔려 있다.

‘之人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 惟恐基似己也(장자) / 불치병자가 밤중에 아기를 낳고 급히 불을 들어 살펴보았다. 급히 서두른 까닭은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였다.’ 이보다 자기 반성을 잘 표현한 문구를 본 적이 없다는 말씀이 따른다. “그 사회 그 시대의 일그러진 모습을 정확히 직시하고, 그것을 답습할까봐 부단히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지요.” 남 탓하고 남을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세태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물의 철학을 말씀하신다. 물은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우고 다시 흐름을 계속한다. 결코 낮은 곳을 그냥 둔 채로 전진하지 않는다. 물처럼 낮게 연대하는 하방연대. 이건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노동 운동은 더 낮은 빈민운동과 연대하고 정규직은 더 낮은 비정규직과 연대하여 바다와 같은 힘을 얻으라는 충고이시다.

이 책은 지역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기 위한 영감을 주었다. 전주에 고군분투하며 수익 모델을 만들어 가는 IT 업체들이 있다. 이들은 고급 인력이 부족하여 곤란을 겪고 있다. 이들 기업과 뜻 있는 교수들이 포럼을 결성하여 3년을 이어 오고 있다. 이들 기업에 컴퓨터 공학 전공 학생들을 현장 실습 보내는 실험적인 시도도 시작되었다. 실습 기간 중 사장님과 눈이 맞아(?)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아니라 지역 업체에 남기로 한 사례는 뭉클한 감동을 안겨 준다.

신영복 선생님은 군사 정권에 의해 20년 간 감옥에 계셨다. 하지만 그분의 글에는 분노가 스며있지 않다. 희망의 메시지와 사람에 대한 진한 애정이 배어 있다. 따뜻한 봄날 어느 가난한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천진하게 노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광경을 실제 본 적도 읽은 적도 없지만 실물보다 생생하다. 책 속에 담긴 진실 때문일 것이다.
저작권자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