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기

홀로 그리고 같이

참으로 질긴 인연입니다. 전북대신문과의 인연을 이토록 질기게 이어나갈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것은 새롭게 사령을 받을 때마다 나의 삶에 시련과 도전의 과제를 안겨준 값진 경험들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문사의 말단인 수습기자 시절에는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작은 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 “조금 있다 오겠다”는 취재원을 한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그 기사에 대한 퇴고를 받기 위해 수업이 없는 날에도 밤 10시까지 자리를 지키기도 했습니다. 신문사 이제 좀 알겠는데 싶었던 정기자 시절에는 고독을 배웠습니다. 항상 옆자리에 있어줄 것 같았던 동기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갔습니다. 덕분에 하는 일도 곱절로 많아져 점심식사를 혼자 대충 때우는 일도 부지기수. 심지어 시험과 작업기간이 겹친 주에는 혼자 편집국에 남아 밤을 새우며 공부와 기사 작성을 병행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어느새 선배들을 모두 떠나보낸 부장 시절에는 눈물을 배웠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울지 않으려 애썼지만 “이 놈의 신문사 때려치워야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을 정도로 무언의 책임감과 압박에 서럽게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서 전북대신문에 싣을 최후의 글을 쓰면서도 아직은 쓰라린 기억에 몸서리쳐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인연의 끈을 끝끝내 놓지 못하고 3년 동안 터벅터벅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이제 와서야 고단했던 신문사 생활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것은‘혼자’라고 생각했던 내 옆에 ‘같이’남아준 기억들 덕분일 것입니다. 요령 없던 풋내기 기자 시절 허겁지겁 진행했던 인터뷰에도 정성스럽게 답해주던 취재원이 있었습니다. 이제 학생 기자질 그만둬야 할 것 같다며 푸념할 때마다 내 손을 잡아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항상 밤샘 철야에도 기사에 파묻힌 우리의 처지를 우스갯소리 삼아 서로 화이팅을 외치던 동기들이 있었습니다. 대학신문과 학생기자 활동에 대해 진지하게 논했던 목소리들도 떠오릅니다. 기자활동에 가장 큰 당위성을 안겨준 그러나 애증의 대상이기도 했던 매주 월요일에 나오는 신문과 내 기사들 또한 그리운 기억의 한 토막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용히 힘을 북돋아 주던 부모님, 힘들었을 때 나를 지탱해주셨던 김회경 편집국장님과 선배님들, 존경하는 손희정 선배님, 믿고 따라준 후배들, 특히 사랑하는 48기 동기들 동우, 미진, 슬기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자영(국문·07)┃대학부장

 

되돌아보니……


반쯤 감긴 눈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모니터 화면에 커서는 깜빡일 뿐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고 키보드에 올린 열 손가락도 부동이다. 이어지는 한숨소리와 짜증 섞인 욕지거리. 지난 3년간 마감 때만 오면 제 1학생회관 3층 편집국에서 보인 나의 모습이다.
이렇듯 기사쓰기는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원고지 1매인 200자를 채우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울어도 보고 재치있는 한 마디가 생각이 나지 않아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어려움은 기사 작성 외에도 많았다. 마감 때는 시간에 쫓겨 밤을 새는 날도 비일비재했고 원고를 넘기는 시간도 늦춰 주위에 민폐를 끼치기 일쑤였다.
또 취재원이 약속을 취소하는 등 마음처럼 취재가 따라주지 않을 땐 ‘블랙 리스트’를 만들어 복수하겠다는 유치한 다짐도 했었고 바쁘다는 이유로 취재거부를 밥 먹듯 당할 땐 포기하고도 싶었다. 이렇게 지난 3년을 되돌아보니 당시에는 힘들었던 일들이 먼저 뇌리를 스친다. 그러나 이것도 이젠 지나보니 웃으면 말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됐고 앞으로 내가 가는 길에 있어 현명한 답을 내려주는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신문사 생활에 있어 나의 정신을 지배한(?) 사회부를 언급 안 할 수가 없다. 방향치인 주제에 사회부로 들어와 취재하는데 길을 헤매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6면, 한 장은 온전히 사회부다웠기에 뿌듯함이 더 앞섰다. 또 사회부로 인해 사회적 약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할 수 있었고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북대신문사 현역기자로써 쓰는 마지막 원고의 마무리는 ‘Thanks to’가 될 듯 싶다. 감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먼저 48기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한 슬기, 동우, 자영 기자에게 고맙고 나의 더러운 성격 때문에 고생한 선, 후배에게도 감사의 말 전한다. 또한 3년 동안 48기와 희로애락을 함께 해주신 김회경 국장님, 기자의 부족한 점 메워 주신 손희정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음악이 없이는 기사를 쓰지 못하는 나에게 좋은 음악 제공해준 동방신기와 언제나 사회부 아이템 걱정 덜어주기 위해 미디어법 통과시키고 4대강 삽질해주는 현 정부에게도 감사하다.
정미진(사학·07) |사회부장

황홀한 신문감옥


…‘제목이 낯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맞다. 예상대로 조정래 작가의 『황홀한 글감옥』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 책은 얼마 전 퇴임식에서 받은 선물로 작가의 40년 글 인생을 여실히 담고 있다. 그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3년의 신문사 생활이지만 감히 인용해 제목을 붙여봤다. 그만큼 대학신문과 함께했던 감옥 같았던 3년은 황홀했던 시간이었다.
…사진부. 사진기자. 다른 이름보다 사진과 관련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가장 듣기 좋았다. 서툰 솜씨지만 열심히 찍었던 사진이 처음 신문에 실렸을 때의 기쁨을 생생히 기억한다. 한 장의 사진을 지면에 싣기 위해 몇백 장의 사진을 찍었던 노력. 한여름에 몇 시간 동안 큰 카메라와 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캠퍼스를 누벼도 마음만은 가벼웠다. 신문사에서 활동하는 동안에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있었던 순간, 가장 황홀했던 순간은 셔터를 누를 때가 아니었을까.
…3년간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매주 안부를 물었던 학내 곳곳의 취재원들부터 타지에서 만났던 인심 좋은 시민들, 시위현장에서 슬픔과 분노를 전했던 목소리까지. 그중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던 것 감옥 내의 신문사 사람들이었다. 함께 울고 웃으며 동고동락했던 시간들과 그들이 했던 말들이 스스로 성장하는데 영양분이 되었다. 최고의 파트너였던 48기 동기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선배님들, 못난 선배 때문에 고생했던 후배들, 편집일마다 긴장을 안겨주던 손희정 선배님, 사랑하는 김회경 국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김슬기(국문·07) 편집장

고양이의 세계에 다녀온 고등어


잠시 잡설 좀 하겠다. 보잘 것 없는 과거이야기지만 내가 퇴임하는 소감을 적기 위해 꼭 필요한 말이니 꼭 읽어주시기 바란다.
누구나 어릴 적부터 그림자처럼 따라다녀 또 하나의 본명이 된 별명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내게도 딱 하나 그런 별명이 있으니, 고등어가 바로 그것이다. 본명의 자음이 완벽히 같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은 더 이상 다른 별명을 붙여주지 않았다. ‘고등어=물고기=금붕어=머리 나쁘다’는 공식이 머릿속에 그려진 나는 발끈할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친구들은 나를 더 이상 본명으로도 불러주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단 하나뿐인 별명이기에 더없이 소중하게 다루고 있지만(?) 어린 날의 내게는 아직 다른 별명을 붙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해본적 없지만 당시 내가 바라고 바라던 별명 중 하나를 밝힌다. 고양이. 뭐, 큰 이유는 없다. 일단 성이 같고, 귀여우며(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미안하다), 고등어보다 피라미드에서 높은 단계에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리수라는 걸 알기에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는 점이 그나마 나를 위안하고 있다.
퇴임을 하는 지금 내 심정이 어떤지 한마디로 말해보겠다. 나는 마치 고양이의 세계에서 3년을 지내고 돌아오는 고등어와 같은 심정이다. 때로는 ‘이대로 잡아먹히는 게 아닐까?’싶어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아 이래서 내가 이곳을 동경하는구나’같은 생각이 훨씬 지배적이었다. 단순히 신문의 세계였더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전북대신문사에서 일했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이 들어와 같은 기수로 활동했지만 언제나 나보다 한발 앞서 생각하고, 더 깊이 생각할 줄 알았던 자랑스러운 나의 동기, 48기. 그리고 우리보다 힘든 시절에도 후배들을 챙겨줬던 46기, 47기 선배님들. 신문사를 이끌어가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성장해준 49기, 50기들. 바쁜 일상에 치이면서도 항상 신문사를 찾아 용기를 줬던 퇴임선배님들. 가장 힘들 때 큰 힘을 준 김회경 국장님과 토요일마다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신 손희정 선배님. 모든 분들과 만날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그동안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여러분 모두를 정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합니다. 못났던 나였기에 언제나 미안했습니다. 앞으로 아예 안보는 사이가 되는 건 아니니까, 이 글 읽고 너무 낯부끄러워 마시고 자주자주 얼굴 봤으면 합니다.
고동우
gdw@jbu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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