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대표자들 친일 행위에 앞장서
도내 200여명…서정주·채만식 포함

◇장지연이 2대 총독 하세가와 취임을 축하하는 한시(왼쪽)와 박정희의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민족문제연구소(이하 민문연)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일제 강점기 당시 군, 교육·학술계, 문화·예술계, 언론 등에서 친일 행위를 한 4,389명이 수록돼 있다.

대표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는 정치권과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전에 게재돼 있다. 만주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군의 중위로 활약한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을 보여주고 있는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이 지난 5일 공개돼 사전 수록의 신빙성을 높였다. 이 내용을 보면 「혈서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라는 제목의 기사는 박 전 대통령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내용의 혈서와 군관학교 지원동기와 좌절했던 사연을 미담으로 소개했다.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린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防聲大哭)」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지연도 사전에 수록됐다. 독립유공자로 <황성신문>의 주필로 활약했던 장지연은 국채보상운동에 동조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남겼지만, 191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서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친일행위를 시작했다. 1916년에는 2대 총독으로 부임했던 하세가와를 환영하는 한시를 게재하기도 한 그는 이후 조선총독부의 시정을 미화하고 옹호하는 글을 다수 남겼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안익태, 홍난파 등이 대표적으로 친일 행위를 했던 인물로 분류됐다. 일본과 미국에서 첼로와 지휘를 전공한 안익태는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축전곡을 의뢰 받아 「만주환상곡」이란 작품을 완성하고 초연을 지휘했다. 한편 민족운동단체인 흥사단에 가입해 활동했던 홍난파도 1937년 「사상전향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친일 행위에 앞장섰다. 홍난파는 대동민우회에서 ‘전향성명’을 발표하며 내선일체를 주장했고 친일문예단체인 조선문예회 위원으로 참여해 활동했다. 또한 일본을 추종하는 음악인 「정의의 개가」, 「희망의 아침」등의 작품을 작곡, 공연하고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헌납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행위의 모습을 보였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우리 지역에서 활약한 서정주, 채만식 등 200여명도 등재됐다. 191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서정주는 주로 시나 소설, 평론 등을 통해 일제에 협력했다. 1943년에는 <매일신보>에 「헌시(獻詩)」를 발표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면서 조선 학생들에게 학도지원병 출정을 독려했다. 군산 출신의 채만식도 「탁류」,「태평천하」 같은 세태소설을 쓰다가 일제 강점기 말에 「포로의 시사」와 같은 친일 작품을 저술했다. 그러나 1948년 「민족의 죄인」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친일 행위를 자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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