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문연, 지난 8일 『친일인명사전』 편찬
각종 탄압 불구하고 국민들 참여 큰 도움
친일문제연구총서 완간․박물관 설립 예정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한반도는 환희에 찼지만 친일파 청산 문제가 남아 있었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는 정부와 손을 잡았고, 친일파 청산에 앞장섰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1949년 와해되고 만다. 이후 60년 동안 잠잠했던 이 문제가 친일 청산활동의 첫 출발인 『친일인명사전』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8일 민족문제연구소는 효창공원 내 김구 선생 묘소 앞에서 『친일인명사전』발간 보고대회를 진행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주관한 ‘민족문제연구소(이하 민문연)'은 지난 8일 서울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선생의 묘소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대회’를 열었다. 당초 서울 숙명아트센터에서 보고대회를 추진했던 민문연이었지만 외압에 의해 행사 당일 장소를 옮겨 보고대회를 개최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탄압 속에서 만들어진 『친일인명사전』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각종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 일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이다. 인물은 1905년 을사늑약 전후부터 1945년 해방 이후까지 일제에 적극 협력한 이들을 대상으로 적극성과 자발성, 지속적인 행동들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이 사전은 전체 3권, 2,800여 쪽의 분량으로 민문연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이하 편찬위원회)가 만들고 있는 ‘친일문제 연구총서’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인명편이다.

민문연 방학진 사무국장은 “민족 내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진실규명을 통해 반성과 화해로 이끄는 데 목적이 있다”며 “사전 발간으로 그동안 금기 시 됐던 친일문제 연구에 첫걸음을 뗐다”고 밝혔다.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인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지난 1991년 설립된 민문연은 친일 문제에 관한 연구와 함께 친일의 잔재를 알리고 청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지난 2001년 편찬위원회를 조직한 민문연은 8년의 편찬 기간동안 3,000여종의 문헌자료와 250만 명의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그 중 2만 5,000여건을 추출하고 인물 수록의 객관성을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20여 개의 분과 150여 명의 전문가들이 면밀한 검토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감수작업에 석ㆍ박사 연구자 80여 명이 참여했고, 각 인물 소개 끝에 참고문헌을 넣어 자료의 신빙성을 높였다. 방 사무국장은 “사전의 객관화를 위해 일제시대 나온 관공서 및 총독부 공문, 신문 등을 기본적인 자료로 사용했고 증언록, 전기문 등은 부수적 자료로 이용했다”며 “사전의 특성상 개인적 감정을 배제한 작업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당초 민문연과 편찬위원회는 지난해 8월 『친일인명사전』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민간단체로서 재정적인 문제와 유족들의 잇따른 이의신청과 가처분 소송으로 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1998년 IMF 위기 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80%에 해당하는 회원들이 이탈하면서 재정이 흔들렸고, 2004년에는 국회의 연구예산 5억 원 전액삭감으로 편찬작업이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네티즌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열흘만에 목표액 5억 원이 모금되는 등 시민들의 주도로 사전이 편찬됐다.

또한 사전의 출판 금지 및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의 소송이 1년에 120여건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6일 법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장지연의 유족이 이름을 빼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판결에서 인명사전 수록은 학문적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할 자유라며 사전이 대부분 사실을 근거해 작성한 것이므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문연은 다른 4건의 이의신청과 가처분 소송에서도 승소 판결을 받았다. 방 사무국장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사전편찬을 지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큰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뒤늦게 친일 청산에 대해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공표하고 2005년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오는 30일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지만, 친일파 705명의 명단을 새로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4년의 짧은 기간과 소수만 친일행위자로 규정되는 한계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문연과 편찬위원회는 오는 2015년까지 󰡐일제협력단체사전󰡑, 󰡐식민지통치기구사전󰡑, 자료집과 도록 등 총 20여권의 󰡐친일문제연구총서󰡑 완간을 계획 중에 있다. 또한 문헌자료와 일제시대 물품 2만여 점을 전시할 역사관 건립도 추진 중에 있다. 방 사무국장은 󰡒관련자료 기증운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고 임시 박물관도 개관할 예정이다󰡓며 󰡒박물관도 정부가 아닌 국민의 힘으로 만들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방 이후 친일 문제는 과거의 일로 치부되어 왔다. 보수언론은 정치적 의도, 국론분열론 등을 이유로 친일 청산문제에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지금까지도 나치 협력자들을 추적해 공소시효 없이 처벌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은 그 동안 금기 시 됐던 친일 문제에 대해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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