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취재-철야로 열정 불태우는 건지인들

예로부터 밤은 생명이 잉태되고, 낮에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신비의 힘을 갖고 있는 시간으로 간주됐다. 건지벌에도 어디에선가 밤의 신비한 힘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 자정까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열정의 건지인들이 있다. 환한 태양이 비추는 낮에 가려졌던 20대의 패기와 오기, 열정이 밤을 만나 별빛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 건지벌의 밤은 낮보다 더 환하게 부서지고 있었다.〈엮은이 밝힘〉

건지벌의 밤은 마감의 압박이다         


“설계실은 건축학과의 커뮤니티 공간”

‘전통의 현대화를 통한 한옥마을 문화 체험관 계획안’으로 지난달 27일 제 10회 전라북도 건축문화상 대상을 수상한 소재남(건축·04), 송문영(건축·04), 이신혜(건축·08) 씨는 오늘도 공대 5호관 5층 설계실에서 밤낮 없이 건축설계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 3인방은 마루와 담, 마당을 현대적 건축요소로 변화시켜 한옥마을을 중심축으로 주변의 전통과 현대의 이질적 문화 영역을 연결할 수 있는 창의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작품공모를 위해 이들은 지난 9월 중순부터 2개월 간 설계실에서 밤을 새가며 각종 회의부터 모형 만들기, 디자인까지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
건축학과에서는 매주 2번의 건축설계 과제와 각종 공모전 등으로 일년에 300일 정도는 설계실에서 밤을 새는 것이 보통이란다. 하루종일 설계실에서 식사부터 공부까지 모든 일을 해결하다보니 3인방은 서로에게 가족보다 더 친근한 존재들이 됐다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샴푸에서 커피포트에 이르기까지 설계실은 없는 게 없는 만물상이다.
일주일 중 5일은 2∼3시간 밖에 못 자고 있지만 문영 씨는 “잘 지어진 건물에 들어가면 감동을 받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건축을 하고 싶어 밤이 늦은 것도 모른다”고 웃음 지었다.
자하 하디드 같은 유명한 여성 건축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신혜 씨, 사람과 시대를 담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문영 씨, 건축을 통해 인간의 삶을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겠다는 재남 씨. 꿈을 가진 건축학과 3인방의 눈빛은 이 순간 하늘에 떠있는 별보다 더 찬란하다.

건지벌의 밤은 ‘쇼팽 발라드 2번’이다


“피아노와 함께라면 무섭지 않아”

밤 10시. 예술대 본관 3층 복도에서는 옅은 불빛과 함께 열정적인 피아노 연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고요한 멜로디를 따라 문을 열자 피아노 실기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김수란(음악·07) 씨가 피아노 연습에 한창이다.
수란 씨가 들려주는 서정적인 쇼팽 발라드 2번은 그녀의 단아한 첫인상과 잘 어울렸다. 수란 씨는“피아노 실기시험이 다음달 1일이라 밤에도 실기실에서 피아노 연습을 한다”며 늦은 밤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반짝였다. 남들보다 다소 늦은 시기인 중학교 1학년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스스로를 천재적인 재능은 아니지만, 꾸준한 노력파라고 소개한다. 연습만이 실력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언제나 늦은 시간까지 피아노를 친다.
“친구들과 함께 야식을 시켜 먹으며 수다를 떨 때가 고단한 연습의 꿀맛 같은 휴식”이라는 수란 씨는 “단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수업이 끝나고 자정까지 피아노와 함께 하는 생활을 고단해하기보다 자랑스러워했다.
그녀는 학부과정을 마치면 우리학교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라고 했다. 노력파 김수란, 그녀를 위해 화이팅!

건지벌의 밤은 ‘4545’다
“학교·학생 안전은 제게 맡겨요”

1만평이 넘는 건지벌, 누가 이 드넓은 캠퍼스를 지킬까. 태권도 5단, 특공무술 3단의 무술실력을 지닌 염주철 씨, 바로 그가 우리학교의 사건사고를 예방하는 통합경비상황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통합경비상황실은 24시간 교내에 설치한 CCTV를 통해 도둑침입 및 화재, 엘리베이터와 같은 시설물 고장 등의 사건이 생기면 곧바로 출동해 해결해 주는 곳이다. 9명이 근무하는 이곳은 3명씩 주·야로 번갈아 근무하며 24시간 학교와 학생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오후 6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3∼4번의 야간순찰을 돌며 취객 및 학생들을 귀가 조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자전거 분실이 일어나는 야간에는 순찰하다 현장에서 자전거 도둑을 잡기도 한다고.
주철 씨가 주로 하는 야간 활동은 동아리전용관 및 강의실에서 숙식하는 학생들을 귀가 조치하는 것. 주철 씨는 “원래 학교에서 숙박을 하면 안 되는데 과제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학교에 남아 있으려는 학생과 부딪히는 일이 많다”며 “밤을 지키려는 학생들과 안전을 지키려는 제가 실랑이하면서 매일 밤이 그렇게 깊어간다”고 웃었다.
밤늦게까지 학업의 열기를 불태우는 많은 학생들을 보면 그는 세계100대 대학으로의 진입은 지금이라도 이뤄질 것 같다고 말하는 주철 씨. 누구보다 학교와 건지인에 대한 애정이 깊은 그는 언제 어디서나 ☎270-4545로 전화하면 달려온다.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바쁘게 달려가는 주철 씨를 보면 먼저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건지벌의 밤은 ‘24시간 개방’이다
“도서관 관리에서 공부까지 불철주야 ”

학습도서관은 캄캄한 밤을 환하게 밝히며 공부하는 학생들로 만원이다. 학습도서관 3층 구석에 자리한 자치위원회실에는 학도에서 공부하는 건지인의 손발이 되어주는 학습도서관 자치위원장 주화정(토목·05) 씨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달 9월 자치위원장으로 선출된 화정 씨는 학습도서관 열람실의 삐걱대는 문을 고치거나 분실물을 관리하는 등 도서관의 만능해결사. 그의 일은 많은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 자리를 비운 자정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도서관 휴게실 및 전산원 청소부터 보수공사까지 안 하는 일이 없는 그는 “24시간 운영되는 시험기간에는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생활하고 있다”며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 힘들지는 않다”고 말했다.
항상 학습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하는 화정 씨는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던 날 학생들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학습도서관 입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그래서 도서관 우산비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있기에 오늘도 학습도서관의 건지인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는 것. 학습도서관의 캄캄한 밤을 밝히는 등대, 그에게 이런 수식이 전혀 아깝지 않다.
김선희·민지수 기자
ksh107@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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