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종합적 학문으로 발전
허리통증․신경통 등 직업병 예방에 기여
인간 중심의 전 분야 망라…연구 폭 확대

인류는 문명을 낳고, 문명은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문명은 필요에 의해 발전하고 진보했다. 최첨단의 문명사회를 이룬 현대인들은 이제 ‘필요’의 기본적 전제를 뛰어 넘어 보다 세련되고 보다 편리한 문명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현대인들의 주요 화두가 되고 있는 ‘효율’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무궁무진한 잠재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간공학’도 그러한 맥락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인간공학은 인간 신체의 운동특성을 살리면서 건강과 효율을 추구하고, 디자인의 개념까지 접목하면서 현대인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주요한 학문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간’과 ‘공학’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결합돼 있는 인간공학은 인문분야와 공학분야가 합쳐져 만들어진 통합적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인간이 도구를 사용할 때에는 대부분 시행착오를 거쳐 인간 삶에 적합하도록 개발돼 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최근 기계보다 인간이 우선 시 되면서 설계 초기에서부터 인체 편의적 요소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인간공학이 필요하게 됐다.
인간공학은 작업 환경 및 작업도구들의 설계 시 인간을 배려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즉 인간이 지니고 있는 신장, 몸무게 등의 신체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들을 연구해 이에 맞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 인체의 한계 근력, 활동 범위, 작업 시야, 활동 시 각 부분에 가해지는 힘의 상관관계 등을 연구해 보다 나은 작업환경을 이룬다거나 제품개발에 이를 적용하고 허리통증, 신경통과 같은 직업병도 예방할 수 있다.
◆ 사람의 손목을 고려한 인체공학 키보드

손의 피로도를 줄이고 입력속도를 높여주는 인간공학적 키보드, 시청자의 위치에 따라 움직이는 TV, 음성을 인식하는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의 개발 등이 인간공학을 적용시킨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발의 형태를 고려한 신발이나 허리를 고정시켜 앉는 자세를 바르게 유도하는 의자, 사무환경의 인간공학적 개선 등도 인간공학의 관점에서 발전해 온 것들이다.
◆ 인체에 맞게 조절가능한 인체공학적 의자

한편 인간공학은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출발해 가장 과학적인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인간공학의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세 가지 개념이 등장해 널리 쓰이고 있는데, 우선 ‘평균치 설계’가 있다. 이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의 경우에 쓰이는데 버스의 손잡이 높이, 공공기관의 의자 높이 등이 이에 속한다. 반면, 가장 큰사람이나 가장 작은 사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극한치 설계’는 통로의 경우에 가장 큰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설계하고, 게시물의 높이는 가장 작은 사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또 앞의 두 설계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조절 가능한 설계’도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사용하는 의자와 책상의 경우 장시간 여러 사람이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높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인간공학은 어떻게 하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됐다. 20세기 중반부터 학문으로 인식된 인간공학은 신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공학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한 학자는 오크너(J. O'Conner)로 1922년 미국 보스톤에 설립한 인간공학연구소에서 ‘여러 작업 능률에 대한 조사방법’을 고안하면서부터다.
이후 대중들에게 인간공학의 필요성이 부각된 시기는 1910년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최소의 생산비로 최대의 생산 능력을 얻으려는 산업화 운동과 맞물리면서부터다. 과거 값싼 임금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얻을 수 있었을 때에는 작업장의 환경과 작업도구의 개선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량 생산되는 과정에서 작업의 단순화와 일관된 작업방식, 즉 기계사용이 증가하면서 인간공학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어 제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군사상 필요한 항공기나 병기의 설계에 인간공학적 접근이 시작되면서 인간공학이 본격적인 종합학문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항공기의 성능을 높이는 것에 집중했다면, 인간공학적 접근을 통해 전쟁 중에 조종사가 오류를 범하지 않고 계기를 조작할 수 있도록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산업구조가 공업화되고 인간이 조작하는 물건이나 환경시스템이 복잡해지면서 군사산업뿐 아니라 산업현장 전반에서 인간공학적 접근이 필요로 하게 됐다. 또한 현대에 들어와 인권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작업현장 설계의 인간공학적 배려는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2년에 ‘대한인간공학회’가 설립돼 현재까지 인간공학 발전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 연구 인력의 부족과 연구의 미비로 아직까지 서양인의 인체자료 및 행동 특성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양인과 우리의 인체 체형이 다르고 심지어는 일본과도 작업 공간의 이용도나 습성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연구가 시급하다는 평가다. 인간공학을 통한 연구 결과들이 체계화되고, 이를 통해 산업경쟁력의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정인수(생활대·주거환경) 교수는 “인간공학은 모든 제품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분야에서도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며 “앞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분야에서 인간공학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정희 기자
june@jnb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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