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청년소설문학상 대학부 당선작

 사장이 어깨를 잡는다. 뭉쳤던 근육이 풀어진다. 시원하다. 사장이 안마를 해주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 며칠 전부터 어깨를 잡는 아귀힘이 강해지고 있다. 이제 오지 말라는 의미다. 요즘 손님이 없는 탓에 내가 눈에 거슬린 것이다. 어차피 켜놓을 컴퓨터 좀 쓴다고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닌데 괜히 화풀이다. 나도 매일 오는 것이 미안하다. 하지만 달리 갈 곳이 없다. 엄마는 사장처럼 점잖게 행동하지 않는다. 손에 든 것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그것이 빗자루거나, 걸레일 때는 견딜 만 하지만 간혹 부엌에서 마주치면 식칼을 피해야 한다. 목숨을 걸 바엔 좀 춥더라도 밖에 나와 있는 게 낫다. 여기 못 오면 이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걱정이다. 열 시까지는 버텨야 한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는 게 좋다. 일단 오늘은 넘겼다.

나는 조용히 문을 연다. 엄마의 출근이 늦는 날도 있다. 다행히 집은 비어 있다. 옷을 벗고 냉장고를 뒤져 밥을 먹는다. 냉장고엔 늘 먹을 게 가득하다. 하루 한 끼 밖에 못 먹기 때문에 과식을 한다. 정자세로 섰을 때 코보다 배가 더 볼록해지면 먹는 것을 멈추고 잠을 잔다. 자명종을 맞추는 것을 잊지 않는다. 가족들이 돌아오기 전에 나가야 한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나이는 먹었고, 제대로 하는 일도 없이 놀고 있는 것이 면목없을 뿐이다. 사실 엄마만 닦달 할 뿐, 아버지는 별말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빛을 받고 있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내가 마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게도 나름의 생활이 있다. 용돈을 받을 수는 없었다. 달라고 주지도 않겠지만, 돈을 달라고 말할 염치가 없다. 할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음식 배달, 피시방, 서빙까지 두루 거쳤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한 적은 없다. 난 뭐든 쉽게 질린다. 그나마 가장 오래 한 것이 피시방이다. 다양한 종류의 게임들이 지루함을 달래줬다. 게임을 하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피시방을 그만둔 것은 라면을 끓여 달라는 손님들 때문이다. 귀찮은 건 질색이다. 하지만 일을 그만둔 후에도 계속 가게로 출근해서 게임을 했다. 벌써 두 달 째였다.

새 일을 찾고 싶진 않다. 별로 돈 쓸 일이 없다. 연락 오는 친구도 없었다. 다들 자기 일을 찾아서 바쁘다. 대학원에 간 녀석도 있고, 군대에 짱박힌 놈도 있다. 아주 드물지만 몇 명은 취직을 하기도 했다. 앞으로 친구들을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쉬울 건 없다. 딱히 친구들과 있는 게 즐거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실없는 농담과 여자 얘기로 웃고 떠들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 녀석들도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인생들이다. 하지만 나보다 조금 나은 것 같긴 하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자신의 역할을 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내게는 아무런 재능이 없다. 학창시절 나는 남들의 두 배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성적은 반 평균을 넘지 못했다. 영어를 하기엔 암기력이 없었고, 국어를 하기엔 이해력이 부족했다. 계산력은 남들만큼은 있었다. 머릿속으로 미리 따져 보는 게 나한테 맞았다. 수학 성적은 평균을 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못하지 않았을 뿐 뛰어나게 잘하진 못했다. 나한테는 학문이 맞지 않았다. 머리로 안 되면 몸으로 해보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했던 적도 있다. 나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라는 달리기에 뛰어났다. 술래잡기에서 한 번도 잡힌 적이 없었다. 누구한테도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선생만 잘 만났다면 육상선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1학년 여름이었다.

체력장이 열렸다. 첫 종목은 100m 달리기였다. 반 아이들의 기록은 빠르면 16초대 느리면 20초를 넘었다. 학급 번호 순서대로 달렸기 때문에 내가 마지막이었다. 남자 수가 홀수여서 나는 혼자 달렸다. 체육 선생은 순식간에 100미터를 달려와 자기 앞에 멈춰선 날 보며 “꽤 빠른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시계를 보고서 한 마디 덧붙였다. “이거 많이 사용해서 초시계가 고장 났나 보다. 반장 체육부실 가서 초시계 좀 가져와.” 기록은 10.52초였다. 그 당시 한국 신기록은 서말구선수의 10.34였다.  반장이 새로운 초시계를 가져왔고, 나는 다시 달렸다. 10.55초가 나왔다. “반장, 이것도 고장 났잖아. 다른 거 가져와.” 체육선생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세 번, “반장.” 네 번, “반장.” 다섯 번, “야.” 기록은 매양 비슷했고, 체육선생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땡볕 아래 서 있던 반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모두 나를 원망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랐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체육부실에 있던 초시계는 여덟 개뿐이었다. 체육선생은 마지막 초시계를 운동장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소리쳤다. “니가 시계에 장난 쳐놨지?” 그제야 나는 너무 빨리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한 아이가 자신의 손목시계를 풀러 체육선생에게 건넸다. 할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 선생들에게 예쁨을 받는 아이였다. “아, 이게 그 스위스 오메간가 하는 건가?” 덕분에 체육선생의 화가 좀 누그러졌다.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앞번호의 아이에게 몇 초가 나왔냐고 물었다. 18초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18초에 맞춰서 달렸다. 체육선생은 만족했다. 반 아이들도 끝나서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그 후로 한 번도 계주선수조차 해보지 못 했다. 뭣보다 나는 스포츠장애가 있었다. 달리기만 빠를 뿐, 구기 종목은 전혀 하지 못했다. 축구든 농구든 공은 언제나 내가 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운동을 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것도 문제였다. 엄마는 내게 최소한의 투자만을 했다. 핑계일 수도 있다. 재능이 없어도 부단한 노력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열정이 없었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재능이 없어도 도전해 봤겠지만, 나는 도무지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나마 이것저것 해보려고 시도라도 했던 것은 엄마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다들 마찬가지다.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공부를 하고, 직장을 구해 안정적인 삶을 찾아간다. 다행히 엄마는 그렇게 강압적이지는 않았다. 구박은 했지만 억지로 학원에 다니게 하거나 책을 읽도록 감시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언제나 공부 잘하고 착한 옆집 아이와 자신의 아이를 비교하게 마련이다. 참 신기하게도 언제나 옆집엔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산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옆집 아이보다 뛰어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엄마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동네의 누구도 진우보다 뛰어난 아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 경우엔 오히려 옆집 애들이 변호를 해줬다. 진우와 비교하면 나나 다른 애들이나 매한가지였다. 엄마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이 가장 뛰어난데 나까지 잘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나는 별다른 반대 없이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몇 년을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요즘 엄마의 구박이 심해진 것은 내가 보통의 삶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걱정할 이유가 없다. 우리 집에는 든든한 희망인 진우가 있다. 몇 년 만 지나면 진우는 의사가 될 거고, 엄마는 의사 어머니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


쉽지는 않았다. 덩치가 큰 아르바이트생을 보고 겁이 나서 몇 번이나 그냥 나왔다. 복면의 위력을 알지 못한 탓이었다. 털모자에 구멍을 내서 만든 복면이었다. 나는 차츰 복면에 적응했다. 상대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큰 무기였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한 녀석도 겁을 먹었다. 무엇보다 칼의 역할이 컸다. 편의점 직원들은 교육받은 내용에 충실했다. 턱밑에 칼을 들이밀면,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금고를 열어 돈을 꺼내줬다. 안에 들어가서 돈을 갖고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이 분이 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엔 세 곳밖에 돌지 못했다. 너무 긴장했다.

며칠이 지나면서 경찰을 무서워할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경찰의 출동은 늘 늦고, 편의점에 들어가 사건 경위를 듣는 게 고작이었다. 경찰이 나를 검문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무턱대고 지나가는 사람을 검문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이 일은 내 천직인 것 같았다. 세 시간 동안 열다섯 곳을 돈 적도 있었다. 그날 수입은 사백만 원이었다. 피시방을 차리는 게 생각보다 빨라질 것 같았다. 뉴스에서 편의점 강도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다. 형사가 편의점 직원으로 위장해서 잠복하기도 했다. 나와 같은 일을 하던 사람들이 몇 명쯤 잡혔다. 나는 뉴스를 매일 봤다.

지방의 편의점은 더 쉬웠다. 띄엄띄엄 있어서 하루에 여러 곳을 돌 수는 없지만, 그만큼 경찰도 적었다. 난 차를 하나 구입했다. 차로 이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차로 이동을 하면 위험했다. 곳곳에 카메라가 있으니까. 차는 잠자리로 사용했다. 여관은 위험하기도 하고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차가 더 싸게 먹힐 것 같았다. 삼천만 원을 모았다. 자동차 할부금이 남아 있었지만, 그건 앞으로 일하면서 갚아 나갈 수 있으니, 순이익이었다.

진우에게 돈을 줘야 할지 고민됐다. 학비가 없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았는데 도와주고 싶었다. 시간이 문제였다. 갑자기 큰돈을 주면 진우는 날 의심할 게 분명했다. 진우를 속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도서상품권을 선물했다. 아르바이트 비를 받았다는 핑계로 어머니 화장품도 샀다. 아버지 몰래 마시고 보리차를 섞어놨던 양주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놨다. 아버지는 조금은 대견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고, 엄마는 더 이상 손에 든 것을 휘두르지 않았다. “이제야 사람 구실을 하네.” 엄마가 말했다. 엄마한테 칭찬을 듣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진우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주 들었다.

생각해 보니 돈을 모은다 해도 곧바로 피시방을 차릴 수는 없었다. 한 푼도 없는 내가 갑자기 가게를 차리면 의심받을 테니까. 세무조사를 받게 되면 돈의 출처를 설명할 수 없으니 검찰로 넘어갈지도 몰랐다. 은행엔 한 달에 70만 원씩만 저금 했다. 나머지 돈은 가방에 담아 차 트렁크에 넣었다. 시장 입구에서 파는 만 원짜리 가방이었다. 미리 가방을 세 개 샀다. 가방 하나를 가득 채우면 일억이 될 것 같았다. 세 개의 가방이 가득 찰 때 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저금을 하라는 진우의 조언은 탁월한 것이었다. 가방을 열어 돈을 넣을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



갈 곳이 없다. 지갑을 열어본다. 며칠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진우가 준 돈 덕분이다. 내게 돈을 주기 위해 나가지 않고 기다린 것 같다. 남에게 돈을 주는 것이 그토록 자연스러운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같다. 진우는 어릴 때부터 특별했다. 동네에서 무슨 놀이를 할지 정하는 것은 언제나 진우였다. 사람들은 진우의 말을 잘 들었다. 나이와 지위고하를 떠나서 진우를 신뢰했다. 그리고 진우는 그 신뢰를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 나도 진우의 말대로 해서 손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생각난 김에 진우를 찾아가 앞으로 내 삶에 대해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다. 나도 내심 이대로 사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사장의 축객령이 날 새롭게 할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진우가 학교에 없다. 같은 과 학생에게 이름을 대니 휴학했다고 한다. 몰랐던 일이다. 전화를 거니 다행히 근처에 있다.

“엄마한텐 비밀이야”

진우가 말한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진우가 하는 일에 내가 끼어들 필요는 없다. 내 이야길 들은 진우는 한동안 말없이 날 쳐다본다.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다.

“난 사람들이 무언가를 위해서 산다고 생각해. 그 무언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일거야. 아마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거야. 하지만 경제적인 안정이 행복과 연관되어 있는 건 틀림없어.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했지만, 형이 원하는 생활은 있을 거야. 이를테면 형이 좋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내가 원할 때 자고 싶고, 몸을 힘들게 움직이고 싶지 않다. 여름엔 시원했으면 좋겠고, 겨울엔 따뜻하길 바란다.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더 좋다. 내 이런 생각을 말했더니 진우는 웃는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지금 형이 말한 그런 생활을 하려면 돈이 필요해. 형이 부자라면 원하는 데로 살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지금처럼 버는 대로 다 쓰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저축을 해봐. 몇천쯤 모아서 분식집이라도 차려. 그때쯤이면 나도 졸업했을 테니까. 나도 도와줄게. 아니다 너무 멀리 볼 것도 없어. 일단은 얼마가 됐든 돈부터 모아.”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문득 나는 궁금해진다.

“너는? 너도 나중에 생길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공부하는 거야?”

진우는 내 말을 듣고 또 한 번 웃는다.

“물론 나도 결혼을 할 테고, 경제적인 안정을 원해. 사실 지금도 돈이 많으면 좋겠어. 학비가 모자라서 휴학 한 거거든. 하지만 의사가 되려는 것이 돈 때문은 아니야. 사람을 살리는 일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내 손으로 몇 명이나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을 살리고 싶어.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거야. 살아 있어야 행복 할 수도 있잖아.”

역시 진우는 대단하다. 내 동생이지만 정말 멋지다. 새삼스럽다. 진우는 언제나 멋졌고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특히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산수경시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그리고 3년 뒤 진우는 나와 같은 나이에 전국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진우는 몇 번이나 신문에 이름이 실렸고, TV에도 나온 적이 있다. 진우와 내가 세 살 차이가 나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만약 우리의 나이 차가 한 살만 적었어도 진우와 같이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너무 뛰어난 동생을 둔 것이 꼭 좋은 일 만은 아니다. 나는 가끔 진우가 없었더라면, 내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부질없는 망상이다. 오늘처럼 진우가 날 도와주는 날이 더 많다.

더 이상 진우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아서 밥 먹자는 것도 거절하고 밖으로 나온다. 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분식집을 차리라는 데는 동의 할 수 없다. 뭔가 해야 한다면 피시방이 좋을 것 같다. 아르바이트생을 두 명쯤 쓰고 계속 게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계산을 해본다. 전에 사장이 말하는 걸 들으니 피시방을 차리려면 삼억 정도가 필요한 모양이다. 사장은 이억이 있었고, 일억을 대출받았다고 했다. 내게 대출을 해줄 은행은 없을 테니, 나는 삼억을 모아야 한다. 월 백이십의 일을 한다고 치면, 이십만 원은 생활에 쓰고 한 달에 백만 원씩 저축 했을 때, 일 년이면 천이백을 모을 수 있다. 삼억을 모으려면 이십오 년이 걸린다. 은행에서 얼마간의 이자를 줄 테니 몇 년쯤은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십 살이 되어야 피시방을 차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가 몇 살까지 살지 알 순 없지만,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수명을 70세라고 가정하면 피시방 사장으로 이십 년쯤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좀 잘못된 것 같다. 이십 년 동안 힘들게 일해서, 십 년을 편하게 산다는 것은 손해다. 뭣보다 그 나이가 돼서 게임을 하는 것은 우습다.

수정이 필요하다. 한 달 수입을 늘리면 돈을 모아야 하는 기간이 짧아질 것이다. 수입을 늘릴 방법이 문제다. 월 백이십을 넘는 일자리는 흔하지 않다. 있다 해도 내게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은 낮다. 일을 두 개 할 수 있다면 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겠지만, 그건 내 몸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방법이 없다. 생각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일단 뭔가 시작해야 한다. 며칠 지나면 또 귀찮아질 게 분명하다.


                             *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어느 성현이 일하지 않는 것은 도둑과 거지 뿐이라고 말했다지만, 그는 도둑질을 해보지 않은 게 분명하다.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막상 자기가 그 상황에 처해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이 일도 마찬가지다. 수입이 많은 만큼 위험부담도 크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처음 할 때는 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점점 준비과정이 복잡해졌다. 우선 순찰차의 순찰 시간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차안에서 며칠씩 밤을 새야 했다. 어둡고 답답한 차 안에서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차를 기다리는 것은 정말 지루한 일이었다. 잠깐이라도 잠이 들어 순찰차가 지나가는 시간을 놓치면, 또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 의경들이 무리지어 도보로 순찰을 도는 동네도 있다. 그런 곳은 피해야 한다. 도보 순찰은 시간이 일정하지 않을뿐더러, 의경들이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파 편의점에 들르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만 경계하면 끝이 아니다. 목표로 정한 가게에는 삼 주 정도 전에 미리 가서 가게구조와 아르바이트생을 확인해야 한다. 새벽 아르바이트생을 두 명 쓰는 가게도 있다. 혼자 있을 때는 없던 용기가 왜 둘이 되면 생기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을 몰랐기에 큰 낭패를 겪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의 스타트를 끊는 가게였다. 들어가 칼을 내밀었는데 직원이 두 명이었다. 나는 어느 쪽 턱 밑에 칼을 향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그들은 덩치가 크지도 않았고, 언뜻 보기에도 한 가닥 할 것 같은 생김새는 아니었다. 그러나 눈빛 교환을 몇 번 한 그들은 갑자기 “잡아”라고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나는 칼을 좌우로 휘두르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결국 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그들은 소리만 칠뿐 날 쫓아오지는 않았다. 놀란 탓에 그날은 일을 하지 못했다. 그 뒤로 직원이 두 명인 가게는 피했다.

혼자 있더라도 살펴볼 필요는 있다. 계산대 옆에 야구 방망이를 준비하고 있는 녀석도 있다. 강도를 잡아 뉴스에라도 나와 보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집 앞에 있는 편의점 직원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는 녀석이 문제다. 말하자면 갈릴레이 같은 부류다. 지구가 멈춰 있고 태양이 돈다고 배웠으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믿을 것이지, 굳이 실험이니 뭐니 해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알아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 수입이 줄고, 피시방을 차리는 꿈이 연기되는 것이다.

사람만 살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편의점의 위치와 주변도 살펴야 한다. 근처에 노래방이나 술집이 있는 곳도 피해야 한다. 새벽에도 손님이 자주 드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잡한 골목보다는 직선으로 쭉 뻗은 길 한가운데 있는 편의점이 좋다. 그런 곳은 들어가기 전에 길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준비 과정은 많은 시간을 필요 하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신중히 돌아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본 업무에 들어가면 많은 정신력과 체력이 소모된다. 복면을 썼다가 벗을 때까지의 오 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 몇 시간처럼 느껴진다. 복면을 쓰면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세밀하게 보인다. 편의점 직원들의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들의 들숨과 날숨의 간격이 느껴진다. 간혹 돈을 건네는 팔에 힘줄을 세우는 녀석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칼을 더 꽉 잡고, 경계심을 높인다. 돈을 받고 나온 후가 제일 힘들다. 놀란 아르바이트생들은 대체로 몇 분 정도 시간이 지나야 정신을 차리지만, 신속히 대처하는 놈들도 있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면 근처에 있던 순찰차가 바로 도착할 수도 있다. 제일 심각한 것은 나를 뒤 쫓아 오는 녀석이다. 주로 청소도구를 들고 따라온다. 자신도 무기가 있다면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가게에서 멀어지면 더는 따라오지 못한다. 경황 중에 문을 잠갔을 리가 없으므로, 쫓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따라왔다가 가게 물건을 다 도둑맞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지만, 일단 문밖을 나오면 나는 미친 듯이 달린다. 만에 하나 따라온다면 대책이 없다. 나는 빠르다. 국가대표 단거리 선수보다도 빠를 것이다. 태릉에서 훈련을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매일 달렸다. 한 달에 한 켤레씩 신발을 샀다. 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시급이 제일 많은 일은 야간 시간대의 편의점 근무다. 점장은 노처녀다. 추측이다. 화장 때문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목의 주름을 보니 삼십대 후반으로 보였고, 통화 하는 걸 얼핏 들으니 선을 보러 다니는 것 같다. 어쩌면 이혼녀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꽤나 깐깐한 여자다. 그녀는 내가 할 일에 대해 설명한다. 청소 두 번, 아침에 들어오는 물건 진열, 특히 쓰레기 분리수거 부분에선 말이 길다.

“만약에 강도가 들어오면, 괜히 어떻게 해볼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돈 줘서 보내”

그녀는 마지막에 그렇게 덧붙인다.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시간은 밤 열 시부터 다음날 아침 여덟 시까지다. 통상보다 긴 근무 시간이다. 돈을 모으려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긴 시간 일 할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 일은 쉽다. 적잖게 날 귀찮게 할 것 같았던 첫인상의 점장은 선보러 다니느라 바쁜지 얼굴 보기가 힘들다. 비 오는 날만 아니면 청소도 빗자루만으로 금방 끝나고, 상품 진열은 물건 넣으러 온 사람들이 알아서 해준다. 손님도 별로 없다. 새벽 한시부터 여섯 시까진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다. 가끔 택시 기사가 담배를 사가는 게 고작이다. 지루하다. 진우라면 이 시간에 공부를 할 테니 손님이 없는 것을 좋아했을 테지만, 난 견딜 수 없다. 라디오를 듣는 것도 질린다. 어쩌면 지루함을 깨버릴 일이 일어나길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새벽에 찾아온 한 남자가 내 기대에 응해준다. 곧 쓰러져 죽을 것만 같은 모습이다. 난 말로만 들었던 황달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니코틴에 물든 내 방 벽지 같은 얼굴색이다. 아니 얼굴뿐만 아니라 손도, 목도 모두 누렇게 얼룩져 있다. 점퍼 때문에 몸은 볼 수가 없다. 새벽 기온이 차다고는 해도 4월 말에 입기엔 더워 보이는 점퍼다. 하지만 점퍼 위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아주 말랐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는 정신없이 물건을 고른다. 한 달치 식량을 모두 사가려는 것 같다. 난 그가 올려놓은 물건을 봉지에 담으면서 과연 이걸 다 들고 갈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15만 4천3백40 원입니다.”

점장이 기뻐할 만한 금액이다. 하지만 그가 점퍼 안쪽에서 꺼낸 것은 돈이 아니다. 과도. 말하자면 사과 깎는 칼이다. 그 조잡한 칼조차도 뼈만 남은 그의 손엔 버거워 보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봉지를 들고 조금씩 뒤로 물러선다. 난 싸움에 자신 있는 편은 아니지만, 그를 제압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내 턱밑을 겨누고 있는 칼 때문이다. 그 순간 점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정해진 원칙이 있다면 따르는 게 좋다. 그는 무사히 가게를 빠져나간다.

경찰은 정확히 십분 후에 도착한다. 명세표가 있어 도난품목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나는 상세한 인상착의를 몇 번이나 말한다. CCTV로는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 몇 달씩 테이프도 갈지 않고 녹화만 하는 화질이 선명할 리가 없다. 점장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한다. 가게에 경찰이 들락거려서 좋을 게 없다는 게 그녀의 판단이다. 나로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내게도 대가는 있다.

“믿고 맡긴 거니까, 절반은 강의민씨가 책임져야겠어요. 월급에서 제 할게요.”

나는 반박하지 않는다. 할 필요가 없다.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난 굉장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바로 이거다. 새벽 시간에 편의점에 있는 현금은 이십 만원 정도다. 가게의 위치나 그날의 매상에 따라 기복을 있을 테지만, 대체로 어디나 비슷할 것이다. 새벽 시간에 칼을 들고 들어가 돈을 요구하면, 편의점 직원은 교육받은 대로 두말없이 돈을 줄 것이다. 그렇게 하루 다섯 곳의 편의점을 돌면 하루에 백만 원 혹은 그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하루에 백만 원씩 저축하면, 삼억을 모으는 데 일 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난 동대문 시장으로 간다. 언젠가 동대문야구장 앞의 행상에서 군용 단검을 파는 걸 본 적이 있다. 칼을 파는 곳은 많았지만, 적당한 칼을 찾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위협적이면서도 눈에 띄지 않게 갖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단검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그 남자처럼 허접한 과도를 쓸 수는 없다. 내가 고른 것은 인도 바닥에 좌판을 벌이고 있는 노파가 파는 칼이다. 나는 그녀가 용도를 물으면 뭐라고 답할지 고민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칼날 옆에는 모사드라는 낱말이 적혀 있다. 어감이 좋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검색결과에는 이스라엘과 이탈리아라는 단어가 많다. 둘 중 한 나라의 비밀첩보기관이 모사드라고 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상관없다. 둘 다 나는 모르는 외국일 뿐이다. 관련 사진은 없다. 이탈리아의 명소 사진만 다섯 장이 나온다. 피사의 사탑이 첫 번째다. 갈릴레이가 두 개의 공을 떨어뜨렸다는 탑이다. 갈릴레이에 대해선 질리도록 들었다. 고3 때 담임이 과학 선생이었는데, 갈릴레이의 신봉자였다. 담임은 수업시간마다 갈릴레이 얘기를 했다. 나는 그 얘기를 외우고 있다. 아마 우리 반이었던 사람은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갈릴레이는 지구가 돈다고 말했다. 잘 이해는 안 가지만 그때는 그런 말을 하면 신성모독이었다.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됐고, 화형당할 위기에 몰렸다. 최후 진술에서 그는 지구가 돌지 않는다고 말하고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재판장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낮게 중얼거렸다. 담임은 이 부분에서 늘 흥분했다. 진실은 언제가 됐든 밝혀진다고 열변을 토했다. 진우는 담임과 생각이 달랐다.

“진리는 시대의 아이지, 권위의 아들이 아니야. 위협을 받는다고 해서 자기 신념을 바꾸는 건 비겁한 짓이야. 정말 옳다고 믿었다면, 화형이 아니라 더 한 형벌을 받더라도 부인하지 말았어야해. 그는 스스로 진실을 왜곡한 거야”

담임이 해줬던 얘기를 듣고 진우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지구에 관심이 없다.

모사드를 지우고 편의점이란 단어를 친다. 서울의 편의점 위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경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파출소 위치가 표시된 지도도 다운 받는다. 편의점이 백배는 많다. 되도록 파출소에서 먼 편의점에 표시를 한다.


  


                            *


가방 하나가 다 찼다. 나는 다시 일을 중단했다. 경찰이 집중수사를 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참 알기 쉬운 조직이다. 출동할 때도 그렇다. 한 번인가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내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누군가 신고를 했던 것 같다. 아마도 복면 쓴 사람이 칼을 들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으니 어서 오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그때 들어간 편의점 직원이 돈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시간을 지체했다. 아마 그대로 경찰이 들어왔다면 난 붙잡혔을 것이다. 그런데 경찰차가 도착하기 전에 신호가 왔다. 싸이렌 소리였다. 내게는 ‘우리 곧 가니까 어서 도망쳐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집중수사도 똑같다. 경찰청장이 나와 회견을 했다. 꽤나 어려운 말을 많이 했다. 사회정의와 국민재산이 어쩌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뭐 축약하자면, ‘우리 한동안 집중 수사 할 테니 너네도 좀 쉬어라. 우리도 먹고살아야지.’라는 뜻이다. 나는 이해한다. 우리는 말하자면 공생관계인 것이다. 이건 진우한테 배운 말이다. 약간 변형되긴 했지만.

“의사도 똑같아. 유능한 의사가 많아지고, 의술과 약이 발전하면 환자는 줄어들어. 세상에 아픈 사람이 없으면 의사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데도 우리는 계속 아픈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어. 아마 소방관이나 경찰도 마찬가질 거야. 화재가 없고, 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들은 존재할 이유를 잃는데도, 불이 나지 않게 예방하고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니까.”

진우가 말했다. 그때는 그 말을 듣고 공감했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경찰은 범죄가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 적당히 일이 터져야 자신들이 할 일이 있고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가족이 있고, 목표가 있다. 조금씩 돈을 모아 집 평수를 늘리고 차를 바꾸고 싶어 한다. 결국 나는 경찰공무원이 먹고사는데 도움이 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집중 수사 기간엔 잠시 일을 쉬어서 경찰에 협조해야 한다. 의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을 살린다는 건 그럴듯해 보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물주가 사라질까봐 걱정하는 것뿐이다. 병들어 골골하는 사람이 좀 더 오래 살아야 돈을 더 벌 수 있다. 진우가 하는 일도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운동 후에 마시는 맥주가 더 맛있는 것처럼 열심히 일 한 후의 휴식은 더 달콤했다. 나는 그동안 일부러 통장을 책상 위에 놓고 나갔다. 엄마는 매달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통장을 봤을 것이다. 엄마는 진우에게만 주던 반찬들을 내게도 줬다.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파만 들어간 계란찜만 먹다가 새우젓이 들어간 계란찜을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다시 피시방에 갔다. 당당히 돈을 내고서 게임을 했다. 사장은 더 이상 어깨를 잡지 않았다. 게임만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다. 장차 피시방을 운영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살폈다. 사장은 꽤 수완가다. 배울 점이 많다. 가맹점에 가입할 인기 게임을 선택하는 법과, 돈이 많이 남는 음식 고르기, 아르바이트생의 관리 법 등을 알 수 있었다. 경찰의 수사는 차츰 기세를 잃어 갔다. 바로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집안이 조금 시끄러웠다. 진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인가로 집에 전화를 거는 바람에 엄마가 진우의 휴학을 알게 된 것이다.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진우에게 큰 소리 내는 것을 들었다. 그것이 내가 일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진우가 혼나는 것을 보는 것이 묘한 희열을 느끼게 했고, 주눅 들어서 엄마를 피하는 진우의 모습도 왠지 모르게 기뻤다. 앞으로 다시는 보기 힘들 장면이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대학들이 방학을 시작했을 때야 화가 누그러졌다. 진우는 다음 학기에 꼭 복학하겠다고 단단히 다짐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비를 벌기 위해 뭔가 일을 하는 눈치였다. 나도 다시 일을 시작했다.

                          *  


나는 동네를 몇 바퀴 돌아보고, 표적에서 멀리 떨어진 초등학교 앞에 차를 세운다. 최적의 조건이다. 별다른 사전 준비도 필요치 않다. 서울에선 드물게 큰 공원이 있는 동네다. 반원 모양의 공원이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를 감싸고 있다. 편의점은 원의 중심에 해당 한다. 가장 가까운 파출소도 공원 너머에 있고, 근처엔 야간에 영업을 하는 어떤 업종의 가게도 없다. 도주로도 완벽하다. 편의점으로 들어오는 길은 하나뿐이다. 바로 길을 달려, 주택가의 복잡한 골목이나,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차 안에서 청소하는 모습을 얼핏 보니 아르바이트생도 만만해 보이는 놈이다.

복면을 쓰자 떨림은 가라앉는다. 길에 사람은 없다. 손바닥에 전해져 오는 칼의 느낌이 좋다. 편의점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꽤 넓다. 아르바이트생은 책을 보고 있다. 내가 들어온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내 말소리에 고개를 든다. 하지만 난 늘 하던 대로 턱밑에 칼을 겨눌 수가 없다. 진우다. 나는 뒤로 물러선다. 그러나 곧 다시 전진해서 칼을 겨눈다. 내겐 복면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최대한 목소리를 변조해서 돈을 꺼내라고 말한다.

“형”

진우가 어떻게 날 알아봤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형제라고 해도 복면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만으로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다. 목소리도 충분히 변조했다. 내가 듣기에도 낯선 음성이었고, 몇 마디 하지도 않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내가 입은 옷이다. 어느 시장에서나 파는 싸구려 남방과 청바지였지만, 진우와 옷을 같이 입다 보니 알아봤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진우처럼 똑똑한 사람만 갖고 있는 어떤 직감이 발동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진우의 성격으로 볼 때, 신고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그 전의 범행들도 들통 날 테고 난 감옥에서 몇 십 년을 살아야 한다. 피시방을 차리는 것도, 미래의 내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도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삶을 망칠 수는 없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름대로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진우 입장에서 보면 내가 ‘형’ 소리를 듣자마자 찌른 줄 알 것이다. 진우는 칼에 찔리면서 입을 벙긋거린다. 뭔가 말을 하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벌어진 입에서 나온 것은 소리가 아니라 피다. 난 잠시 멍청히 서서 진우를 바라본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 잠시의 지체가 위기를 만든다. 새벽 운동을 나왔던 남자 둘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운동복에 한국체육대학교라는 글씨가 보인다. 난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도망친다. 다행히 반대편에도 출구가 있다. 그들은 소리치며 뒤 쫓아 온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아무도 날 잡을 수 없다. 그 편의점에서 공원까지 달리는 것을 가지고 기록을 잰다면 내 기록이 세계신기록일 것이다. 따라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뒤를 돌아보니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너무 심하게 달린 탓에 다리에서 경련이 난다. 숨이 차다. 어지럽다. 나는 어두운 곳에 앉아서 숨을 고른다. 땅이, 하늘이 움직이는 것 같다. 확실히 지구가 돌긴 도는 모양이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후회가 된다. 경솔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확실하게 행동했어야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팔이 가렵다. 쓰라리기도 하다. 팔 여기저기에 긁힌 상처가 많다. 거미줄이 온몸에 휘감겨 있는 것 같다. 팔을 휘둘러 떼어내도 끈적한 감촉이 사라지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나무뿐이다. 공원 깊숙이 들어온 모양이다. 무의식중에도 도주로로 확실하게 도망친 게 다행이다.

안정을 찾을수록 후회가 깊어진다. 몇 번 더 찔렀어야 했다. 두 번만 찔렀더라도 안심이 됐을 텐데 안타깝다. 그 남자들이 돌아가서 구급차를 불렀다면 살아날 수도 있다. 진우가 무사하면 내 삶은 끝이다.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혼란스럽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다. 시계를 보려고 핸드폰을 켰는데, 바로 전화벨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안녕하세요, 강의민씨 되십니까? 송파경찰서 한태준 경윕니다.”

순간 몸이 정지한다. 숨을 쉴 수도 눈을 깜박일 수도 없다. 너무 놀라서 전화를 끓지도 못한다.

“강진우씨 형님 되시죠? 유감입니다. 여기 서울 병원인데 강진우씨가 칼에 찔려서 돌아가셨습니다. 빨리 와주셔야겠습니다. 주무시는지 댁에 연락이 안 돼서……”

온몸이 얼었다가 녹은 것처럼 갑자기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네? 네. 지금 갈게요”

나는 하마터면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뻔 했다. 형사의 목소리가 너무도 감미로워서 전화를 끊은 후에도 계속 귓속을 맴돈다. 나는 만세를 하고 있던 손을 내려 주먹을 쥔다.

병원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난 잠시 병원 앞에서 머뭇거린다. 너무 일찍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옷차림 때문에 의심받지는 않을지 생각한다. 유족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다시는 진우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진우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도 충고를 들을 수도 없다. 손이 떨린다. 이 손으로 진우를 죽였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갈릴레이가 옳았다.

“그래도 나는 진우를 사랑한다.”

영안실 문을 열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온다.

     

저작권자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