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청년소설문학상 고등부 당선작

 사우나에서 나왔을 때는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쌀쌀한 새벽공기에 구씨가 서너 차례 재채기를 한다. 사우나 건너편으로 이제 막 문을 연 해장국집이 보였다. 메마른 가로수 낙엽들이 운치 있게 블록을 뒹굴다가 최씨의 우악스러운 걸음에 밟혀 여지없이 부스러졌다. 스산한 도로변으로 트럭 몇 대가 연달아 지나간다. 거리는 지난밤의 현란한 불빛에 온 기운을 탕진해버린 듯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창백하게 잠들어 있었다. 구씨가 해장국 곱빼기 세 그릇을 시키자 주인여자는 좀 기다려야하는데 괜찮겠냐고 묻는다. 들여다보이는 부엌 안쪽의 커다란 솥은 이제 막 불에 올린 듯 보인다. 비닐 팩에서 솥으로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불그죽죽한 뼈다귀들을 보자 지금쯤 우리 안에서 깨어났을 로빈이 떠오른다. 지난밤에도 게걸스럽게 밥그릇을 비우고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빈 그릇을 핥아댔던 놈은, 훈련성적은 미진한 주제에 제일 거침없이 먹어댔다.

 젖어있는 목덜미께 위로 찬바람이 스치자 나도 모르게 진저리가 쳐진다. 최씨가 춥다고 소리치자 주인여자는 미적미적 걸어 나와 석유난로를 켰다.

 “기름 냄새 좀 날거유.”

 큼직한 석유난로에 비해 좁은 식당 안은 금세 공기가 훈훈해졌다. 밥도 나오기 전에 소주병부터 기울이는 최씨의 곁에서 구씨는 팔짱을 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부연 유리창 밖으로 빈 거리를 내다보며, 더 늦기 전에 놈을 경매에 부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소문만 더 퍼져 손해가 더 커질게 뻔하다. 사우나에서 노곤히 풀어진 뼈마디에, 난로의 온기가 더해져 나른해질 때쯤 주인여자가 선지가 숭덩숭덩 담긴 뜨거운 해장국을 내왔다.


 “나가! 그렇지! 앞다리, 그렇지! 더 나가, 더!”

 한쪽은 이미 지쳐있었다. 움직임이 둔해진 것은 둘째 치고라도 숨소리부터가 가빠졌다. 그것을 감지한 상대편 도사견은 더욱 맹렬하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지친 놈 쪽의 눈빛이 마지막 위협조를 띠고 희번덕인다. 코끝을 후비고 드는 개 비린내 속에 피 냄새가 스며있었다. 그러나 투기꾼들의 짙은 욕망의 비린내에 비하면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상대편 도사견은 지친 놈의 목에 이빨을 박고 늘어진다. 피할 수도 있는 공격이었지만 상대방의 공격을 고개를 돌려 피하게 되었을 경우, 곧 패가 된다. 비명을 지르거나 짖어서도 안 된다. 공격하는 태세로 봐서는 워낙 단련이 되어있는 데다 빈틈이 없는 편이었지만, 지친 놈 쪽도 그 못지않게 독한 놈이다. 힘이 빠졌음에도 끝없이 상대편의 복부를 중심적으로 공격했다. 슬슬 나가  떨어질 때도 되었는데, 쓰러지면 재차 일어나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발을 쳐든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정신력도, 끈질긴 훈련에서 다져진 공격 요령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법이다. 귀가 너덜너덜해졌다. 이쯤에서 판을 접는 편이 개에게도 나을 것 같건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견주(犬主)는 발을 구르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쳐댄다. 달려들어, 싸워! 더 지켜 볼 필요도 없이 볼 장 다 본 판이다. 구씨는 판에서 비껴나 가래침을 뱉고는 담배를 문다. 오늘도 구씨의 예감이 적중했다. 이 분야에만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구씨는 이제 도사견들의 걸음걸이만 보아도 그 날의 승자를 가려낼 수 있다고 했다. 사투가 시작된 지 3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슬슬 끝내고 연장전을 벌여야 하나 싶던 찰나에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곳곳에서 욕지기가 터져 나온다. 이긴 견주가 달려가, 개의 목을 끌어안았다. 진 놈은 가쁜 숨을 헐떡이며 우리 밖 견주의 눈치를 본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선  듯한 다리가 상처투성이다. 최씨가 나서서 빠른 속도로 판돈을 나누기 시작했다.


 로빈은 내가 몇 달 전 헐값으로 사들인 도사견이었다. 판마다 내리 지고 막판에 다 죽어 가는 것을 데리고 온 것은 순전히 그 놈의 눈빛 때문이었다. 상대편에게 당할 대로 당하고 주인에게 심하게 걷어차였지만 진 쪽의 비굴함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말리지 않고 두었으면 물어 뜯겨 죽을 때까지 덤벼들어 싸웠을 듯한 투지가 배여 있었다. 그러나 좋게 말해서 투지이지 견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실력도 없는 것이 쓸데없이 우직스럽기 만한 놈이었던 것이다. 데리고 온 날 저녁 녀석은 숨도 안 쉬고 밥을 먹어댔다. 환경이 바뀐 데에 대해 보통 개들이 보일법한 불안감 같은 낌새도 전혀 보이지 않을 뿐 더러, 식사를 마친 뒤에는 코까지 곯아가며 잠들었다. 로빈은 다음 날부터 시작된 훈련에도 영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조련소의 다른 개들이 짖어대기라도 할라치면 영락없이 꼬리를 내리며 물러났다. 최씨는 내가 개를 속아 샀다며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한참을 낄낄거렸다.


 녀석은 우리 안에 엎드린 채로 앞발을 핥고 있었다. 어스름한 하늘 아래 유난히 새까맣고 커다란 녀석의 두 콧구멍이 뜨거운 바람과 함께 어둠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흘끗 한번 올려다보았을 뿐 별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도사견, 그것도 9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거구가 고작 제 앞발이나 핥으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니, 놈이 못 견디게 한심해진다. 한 때는 일본에서 잘나가던 투견이였다던 전 주인의 말이 떠오르자, 최씨의 말대로 내가 영락없이 속은 게로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를 걷어차려다가 말고 놈의 발 앞에 놓여 진 빈 밥그릇을 빼내어 멀찍이 던져버렸다. 놈은 벌떡 일어나서 나를 올려다본다. 목에서 잠시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굴러 나오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몸을 뻗고 누운 채로 앞발에 얼굴을 묻는다.

 “병신 같은 놈.”

 나는 우리 앞으로 침을 퉤 뱉었다. 사실 판을 붙이고 급히 종적을 감추기를 반복하는 생활에서 견을 길러낸 다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조련사의 말대로 녀석은 판에서 피비린내를 풍기고 날뛰기에는 늙은 편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오직 싸우기 위해 운명 지어진 도사견들은 그 목숨도 적당한 때에 대부분 싸움판에서 매듭지어지기 마련인데, 그에 비하면 녀석은 꽤 오랫동안 살아남은 축에 속했다. 사투 중에 죽는 개들을 아무도 측은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그런 불굴의 공격성이 그들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도사견들은 사람이나 다른 개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시내 나가서 한 잔 안 하려우?”

 조련소 안채에서 나오던 최씨가 물었다. 뒤쪽으로 구씨도 허리춤을 추켜올리며 따라 나오고 있었다. 고개를 젓고는 피곤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들이 나간 뒤 나는 안채에서 소주병을 들고 나왔다. 병 채로 몇 모금을 들이킨 뒤 마당 한 복판을 뒹굴고 있던 녀석의 밥그릇을 주워서, 콸콸 따라 부었다. 맑은 액체가 찰랑이는 밥그릇을 우리 안으로 들이밀자 녀석은 슬그머니 코를 갖다 대고 몇 번 핥아 보더니 신음소리를 뱉어낸다. 나는 입가에 묻은 술을 문지르며 낄낄거렸다.

 어느 새 어둑해진 하늘에는 희부연 안개가 끼어있었다. 초승달 허리춤이 휘어져 보인다.

 보도블록 위로 뜨거운 볕이 쏟아지던 한여름이었다. 아내의 이마에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었다. 한약방이 있는 건물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짙은 약 달이는 냄새가 풍겼다. 유명하다는 아내의 말대로 진맥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꽤 많았다. 대기실 벽에는 방송에 나온 한의사의 홍보 사진이 몇 장 걸려있고 한 구석에는 박제 된 커다란 거북이 놓여 져 있었다. 나는 문득, 주먹만한 알들을 쏟아놓는 거북의 생식력이 몹시 부러워졌다. 다른 집 같았으면 우리도 중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음직한 시기였다.

 나이 지긋한 한의사는 진맥을 짚는 동안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팔뚝 아래서 너무도 힘차게 뛰고 있는 맥박이 민망스러워져서 시선을 멀찍이 두었다. 그러나 정갈하게 정리된 방안의 어느 한 구석도 눈을 편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하였다. 한의사는 장황한 설명을 늘여놓았다. 아내는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두겠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잘 좀 지어주세요, 선생님.”

 아내의 말에 그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둔한 움직임을 보자 나도 모르게 조소가 떠올랐다. 병원에서조차 단념하기를 권한 상황에 그 어떤 용한 한약재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말인가. 의사는, 나의 정자들은 미처 제자리를 찾아가기도 전에 중도에서 맥없이 죽어버린다고 했다. 말하는 그이 눈빛은 너는 애초에 제 구실 하기 힘든 물간 놈이란 말이다. 라고 나를 비웃는 듯 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봐야지 않겠어요.”

 약방을 나오며 아내는 내 손을 다부지게 움켜쥐고 말했었다. 나는 애매한 표정으로 말없이 서 있었다. 아내는 씩씩하게 앞장서서 고기 집으로 들어갔다.


 로빈의 대리주(代理主)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판을 주최하는 쪽에서 개를 출전시켰다가는 트집잡힐 소지가 있어서, 임시로 견주를 붙여놓은 것이었다. 보름 후 로빈이 대전하게 될 상대편 개는 춘천에서 내로다 하는 조직의 도사견이었다. 로빈의 중량 몸무게를 속여서, 대형 급으로 나가야 할 것을 중형 급으로 붙여놓았으니 조금만 노력을 보여준다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출전이 결정된 로빈은 맹훈련에 들어갔다. 아이가 먹든 안 먹든 음식물을 입안으로 쑤셔 넣는 어른처럼, 조련사는 로빈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훈련을 강행했다. 그는 로빈 같은 경우에는 흥분제를 놓아봤자 혼자 날뛸 뿐 대전에서는 오히려 역효과 일 거라고 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녀석에게 주사 따위를 놓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녀석의 눈에서 전과 같은 투지를 발견하고 싶을 뿐이었다.

 트랙을 달리다가 중도에 하차해 버리는 로빈을 보며 몇 번이고 채찍질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기록을 깬 대가로 날고기를 받아먹는 개를 우두커니 서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녀석은 한숨을 자아내게 했다.

 "이번 판 끝나고 나면 집에 좀 내려가 봐야 할 거 같어요."

 최씨가 차에 기대어 서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말했다. 그의 뒤로 조금씩 헐벗어 가기 시작한 야트막한 산이 내다보였다. 구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거 끝나고 나면 한창 단속 뛸 시간이니께 좀 쉬어둬야 쓰지. 다녀올라면 그 때 후딱 다녀오든가. 한달 뒤에는 부산으로 갈거여. 연말쯤 해서 중국 애들 끼워 갖고 크게 한 판 벌여야 할테니께."

 구씨는 자기도 딸네 집에 가 있을 생각이었다고 덧붙이며 먼지 낀 차창을 장갑으로 문질러 닦았다. 

 “그래도 김형 개 흥정 붙이는 건 해주고 내려갈 거요. 거, 제 값 받으면 한턱 쏘기로 한거 잊지 마쇼.”

 최씨가 나를 쳐다보며 히힉거렸다.

 

 내가 덤비라는 사인을 보내며 보호대를 찬 팔을 내밀자, 로빈은 처음에는 이빨을 드러내 보이는 듯하더니 이내 혀를 내빼고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보호대를 집어던지고 녀석의 코앞에 맨 팔을 내밀어 보였다.

 “물어, 새끼야!”

 그러나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녀석의 두 눈에는 무관심과 나태함이 얼룩져 있었다. 얼마쯤 그렇게 서 있던 로빈은 고개를 몇 번 털더니 그 자리에 몸을 뉘었다. 짧고 짙은 황색 털이 햇빛에 비늘처럼 반짝인다. 그대로 나른하게 잠이라도 한 숨 잘 듯한 자세였다. 만두 모양으로 접힌 귀가 맥없이 축 쳐져 있었다. 속에서 무언가 울컥 솟아오른다. 나는 마당한 구석에 세워진 야구 방망이를 들었다.

 “김형, 큰일 날 짓 하지 말아!”

 멀리서 보고 있던 조련사가 달려와 방망이를 빼앗아 들었다. 놈의 둔한 몸속에는 흔들어 깨워낼 수 있는 한 덩어리의 투지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듯 보였다.

 

 아내가 약탕기에 끓이는 한약 냄새는 온 집안에 배어들었다. 이상하게도 내 몸은 약을 흡수하면 할수록 움츠러들었다. 씁쓸하면서도 묘한 비린내를 품고 있는 약은 소화불량까지 만들어냈다.  나는 일을 핑계 삼아, 판이 끝나고도 집에 돌아가지 않는 날이 늘었다. 아내는 내가 너무 피곤한 탓에 기가 허해진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생기려면 몸의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해요. 요즘 들어 당신 너무 힘없고 불안해 보이는 거 알아요?”

 아내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대꾸 없이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만 수차례 바꿔댔다. 아내는 내 곁에서 빨래를 개고 비질을 하고 콩나물을 다듬다가 졸음을 못 이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들어가자 나는 숨겨 놓은 비밀을 풀어놓듯 조심스럽게,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거실을 뛰노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애국가가 흘러나오고 전파가  끊길 때까지 덩그러니 거실에 남아 있었다.

 아내에게 상상임신이 두 번 찾아왔고, 매번 임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아내는 민망한 듯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길고 지루한 장마철이 끝나가던 어느 날 아내는 결심한 듯 시험관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최씨는 다 식은 커피를 티스푼으로 연신 저어대며 카운터 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요란스러운 조화가 장식된 카운터에는 그 빛깔 못지않게 화려하게 꾸민 다방 여자가 서 있었다. 구씨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새로 줄을 놓은 심판과 이야기 중이었다. 나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는다. 먼지 낀 통 유리창 너머로 조촐한 변두리 시가지가 내다보였다. 최씨는 손가락을 오도독거리며 꺾더니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김형 요 근처에 괜찮은 술집 있는데, 같이 안 가실라우?”

 그가 눈을 찡긋하고 물었다. 나는 껄끄러운 입맛을 다시며 빈 담배 곽을 구겼다.

 “정말로 김형은 무슨 재미로 사는 지 모르겠수. 아무리 봐도 김형은 이 쪽 일보다는 사람 없는 산에 들어가서 산림경비 같은 거 하면 잘 할 거 같구만. 사람이 말수도 적은데다 싱겁기는 또 왜그리 싱거워. 요즘은 그 로빈을 애인 삼으셨나보던데, 재미 좋습디까? 허긴, 둘 다 외곬수라 궁합은 잘 맞겠수. 히힉.”

 그런 농을 천연덕스럽게 받아치는 데 재주가 없는터라 나는 뒤통수만 긁적이며 시선을 구씨 쪽으로 옮겼다. 구씨가 그만 나가자며 손짓을 해 보인다.


 병원에 찾아간 아내는 뜻밖에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를 보아온 이래로 그렇게나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 또한 믿기지 않은 소식에 며칠 밤을 설레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는 그동안 나 몰래 사 모았던 아기용품들을 모조리 꺼내어 하나씩 펼쳐 보이고, 거실의 천장에는 때 이른 인형 모빌을 걸어두었다. 태교에 좋다는 명상 음반들을 보면 꼬박꼬박 사들이고, 커피포트도 찬장 깊숙이 넣어놓았다. 아이에 대한 아내의 지극한 정성과 애착을 보며, 나는 새삼스러운 죄책감이 들었다.

 한창 판이 성행할 때라 아내를 혼자 남겨두고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아내는 서운한 표정을 했지만 이내 수줍게 웃어 보이며 내 어깨를 털어주곤 했다.

 “당신, 우리 아이 태어나면 일 그만두기로 한 거 잊으면 안돼요. 모아둔 적금으로 작은 가게라도 하나 열자구요. 난, 당신 도와가며 가게도 보고, 우리 아이랑 셋이 오순도순 살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뛰어.”

 그날따라 판을 준비하는 동안 유난히도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싶었다.


 경기를 이틀 앞두고 로빈은 더욱 게을러졌다. 녀석이 관심을 보이는 일이라고는, 같잖게 우수에 젖은 눈을 들어 석양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남의 밥그릇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일 뿐이었다. 나는 가관인 녀석을 보며 더 이상 열을 올리지 않았다. 다만 얼른 판을 끝내고 녀석을 넘겨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판이 있기 전이면 늘 그래왔듯 구씨는 가까운 절을 찾아갔다. 이번 판도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시주를 하고 나와서는 그는 어쩐지 느낌이 좋다고 했다.

 조련소에 들어서자, 나를 본 조련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로빈의 우리를 가리켰다. 녀석이 훈련도중에 탈출을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밖으로 도망가려다가 수차례 철조망에 찔려 나가 떨어져, 끝내는 피투성이가 되어서야 잡아넣었다고 했다. 우리 안의 로빈은 고되게 잠들어 있었다. 사람의 손에 키워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사견들에게서는 야생의 냄새가 났다. 녀석에게서도 그 냄새만은 희미하게나마 풍기고 있었다. 그것이 나약한 녀석의 모습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가까이 지내던 견주 중 하나가 늙고 쓸모없어진 도사견을 식용으로 팔아넘기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차에 싣는 동안 개는 짓무른 눈으로 제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개를 향해 주먹을 치켜 보이고는 속에 것을 모조리 꺼내 올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가래침을 뱉었다. 개는 그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차가 출발하기 시작했을 때서야, 멍, 하고 한번 짖었다.

 “개나 인간이나 늙으면 다 질퍽거리는구만. 저것도 왕년엔 물건이었는데.”

 그가 씹어뱉듯 말하며 돌아섰다. 한창일 적에는 틈새 없는 잔인한 공격으로 챔피언 급에서만 놀던 도사견이었다.

 나는 로빈을 차에 싣고 돌아서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이어, 칼 아래 동강나는 녀석의 몸뚱이가 그려졌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이내 나의 모습으로 변했다.


 시합이 있는 날 아침, 잡곡밥과 닭고기, 통조림 등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로빈의 밥을 만들었다. 녀석은 여느 때와 달리 깨작거리며 얼마 먹지 못했다. 조련사가 등을 두드려 줄 때 잠깐 희미한 신음소리를 내었을 뿐, 아무리 힘을 돋구어 주려 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리주가 끌고 온 용달에 로빈의 우리를 싣고 먼저 판이 벌어질 민가로 보냈다. 구씨를 비롯한 우리 셋은 조금 간격을 두고 출발했다. 차창을 통해 빈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빛이 건조하고 맑았다. 나는 연신 손을 쥐었다 펴며 하늘 위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새 떼를 바라보았다.

 판이 시작되려면 좀 이른 시각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이 몰려 있었다. 주부에서부터 건달들, 복잡한 눈빛부터가 다른 전문 노름꾼까지, 모인 이들은 다양하다. 상대편 개는 덩치 큰 조직 일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로빈은 대리주 옆에 서 있었다. 녀석은 조금 긴장해있는 듯 했지만 곧 사투를 벌일 투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게 힘이 빠져 보였다. 구씨가 나서서 판돈을 모으고 최씨는 미리 사 둔 몇 사람과 함께 망을 보러 나갔다. 돼지 돈사를 급조해 놓은 투견 판은 휑하고 살벌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슬슬 사람들의 눈빛과 손끝에서 묘한 땀 냄새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굳은 침을 삼키며 시간을 확인했다. 심판이 우리 안으로 들어간다. 양측의 개들도 들여보내졌다. 가슴을 꼿꼿이 세운 상대편 놈은 한눈에도 단단히 단련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크기로 밀고 나간다 해서 뚫릴 듯한 상대가 아니다. 실수를 한 듯한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가로지르며 무겁게 떨어져 내린다. 세찬 호루라기 소리가 불거졌다. 잠시 서로를 가늠해보는 신경전이 계속되다 상대편 놈은 날렵하게 로빈의 목에 이빨을 박았다. 로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두 공격으로 기선을 제압한 놈을 잠시 물러나며 로빈의 공격을 기다린다. 로빈은 머리로 놈의 허리를 들이받았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놈은 앞다리를 쳐들어 로빈의 머리를 강타했다. 로빈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반격에 들어갔다. 나는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지르며 우리 가까이로 바짝 붙어 섰다. 흥을 돋구는 심판의 목소리가 개들의 거친 숨소리 위로 불을 지른다. 로빈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상대편 개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역동적인 데다가 호흡이 눈에 띄게 불안정했다. 개의 눈을 들여다 본 나는 욱하고 성질이 솟구쳤다.

 “저 새끼 약 맥였잖아!”

 구씨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내 고함은 묻혀지고 개들을 응원하는 양측의 목소리만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로빈이 밀릴수록 상대편 놈은 더욱 흥분하여 날뛰었다.

 “뛰어, 새끼야 뛰란 말이야!”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로빈의 앞으로 나아가며 소리쳤다. 녀석은 이미 왼쪽 뒷다리를 절고 있었다.


 불을 끈 거실에 아내가 금방이라도 말라 부스러질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집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난로에 손을 올렸을 때 허전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여보.”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는 무릎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어둠 속에 천장에 매달린 모빌이 창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가 자연 유산되었다는 말을 하는 아내는 중간 중간 말을 못 잇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나는 아내의 뜨거운 눈시울을 훔치고는 가만히 끌어안았다. 그 순간, 비스듬히 새어 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태교음악 씨디 표지의 모차르트가 견딜 수 없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그의 두툼한 머리며 지휘봉 위쪽으로 그려진 갓난아기의 모습이 머릿속을 균열시키듯 파고들었다. 자신도 의미를 모르는 말에 웃음이 내뱉어졌다. 웃음은 잔물결처럼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내 몸은 어느 한 구석에 무수히 많은 알들이 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깨어진 알 속은 텅 비어있었다. 나는 어깨까지 움칠거리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아내의 거친 손길이 나를 밀어냈다. 그녀의 매서운 두 눈동자가 내 눈으로 와 불안하게 박혀 있었다. 나는 거실 한 쪽에 놓여 있는 보행기로 시선을 돌렸다. 울컥, 비린내가 스치며 헛구역질이 솟았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속을 게워냈다. 한참 만에 입을 훔치며 거실로 나왔을 때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로빈은 놈의 어깨 죽지에 이빨을 박았다. 놈이 끊임없이 로빈의 허리와 다리를 공격했지만 로빈은 좀처럼 이빨을 빼지 않았다. 로빈은 놈의 몸에 붙은 채 바람에 펄럭이는 비닐봉지처럼 이리저리 출렁였다. 순간 나는 로빈의 눈에 한줄기의 붉은 빛이 스쳐 가는 것을 보았다. 목덜미가 섬뜩해지는 듯 싶더니 발바닥에서 뜨거운 전율이 치솟았다. 놈에게서 물러난 로빈은 사정없이 앞발을 쳐들었다. 놈은 요령 있게 로빈의 발길질을 맞아가며 더 세찬 뒷발질을 해댔다. 로빈은 나가떨어질 때마다 벌떡 일어나 다시 덤벼들었다. 채이고, 물어뜯기며 로빈이 쓰러졌다 일어난 모래 위에는 핏자국이 묻어났다. 로빈의 공격에서는 녹슬긴 했지만 아직 잊혀 지지 않은 공격 기교들이 튀어나왔다. 어깨살을, 엉덩이 살을 깨물린 상대편 놈도 성질이 있는 대로 난 듯 했다. 로빈의 목에서부터 가쁘고 뜨거운 숨결이 토해지는 것을 느껴진다.


 “내가 아이 때문에 당신을 떠난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당신은 말이죠 ……. 옆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어요.” 한사코 만나기를 거부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공허하게 들려왔다. 나는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로빈의 우리를 바라보며 전화선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놈은 약기운이 한껏 올라 있었다. 상대편 견주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어 보인다. 그들은 점부터 이 지역의 단골 노름꾼이라 우리와는 서로의 편의를 암암리에 봐주곤 하는 사이였다. 로빈의 앞가슴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온다. 상대편 놈은 틈을 놓치지 않고 상처 난 부위를 집중적으로 연속하여 내리쳤다. 녀석은 형편없이 나동그라졌다가 벌떡 일어섰다. 녀석의 정신은 타오르고 있었지만 몸은 이미 정신력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문즉 나는 녀석이 그만 신음소리를 내거나 공격을 기피하여 공격기피 패 로 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경매에 넘겨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녀석은 규칙에 있어 단 한 번의 허물어지는 모습도 없이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쓰러져, 누워 버리란 말이야 이 병신새끼야 넌 틀렸어.

 그때, 요란한 진동과 함께 핸드폰이 울렸다.

 “이런 썅! 짭새들 떴다.”

 최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구씨에게 사인을 보내고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심판이 우리에서 뛰쳐나오고 조직원들은 급히 녀석들을 떼어 낸다. 일시에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구씨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악을 쓰는 투기꾼들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부연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사이렌 단 승용차 몇 대를 보자 다들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구씨가 먼저 다급히 달아난 후 나는 우리에서 로빈을 끌어내었다. 녀석은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고 있었다. 녀석은 가쁜 숨결을 몰아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속이 뜨거워진다. 녀석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좁은 논둑과 빈 밭을 가로질러, 낡은 농가와 소의 울음소리를 지나쳐 산으로 들어섰다. 길이 아닌 곳으로 찾아 달렸다. 메마른 나뭇가지가 발아래서 부러졌다. 녀석과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었다. 야트막한 산을 반쯤 오르던 나는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한번 터진 웃음은 쉴새없이 입과 코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내 물 밀린 둑이 터지듯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턱까지 차 오른 숨소리에 뒤섞인 웃음소리는 우스꽝스럽게 내뱉어졌다. 녀석이 따라 짖기 시작했다.

 따가운 건지 간지러운 건지 모를 햇살이 웃음소리 위로 하얗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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