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개념 등장…무절제한 예술에만 적용
현세의 불확실성·죽음의 환기 강조된 시기
서정성 비장미의 바로크, 개방 종합의 예술

바로크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18세기에는 여전히 고전주의적 예술 이론의 확고한 관점에서 바로크를 무절제하고 혼란스러우며 기괴하게 느껴지던 예술현상에만 적용시켰다.


이 시기는 보편주의와 국가주의, 계몽의식과 궁정문화, 세속적인 쾌락 추구와 죽음의 공포 및 내세에의 동경이 양립 혹은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기본 구조는 문학의 경우 비기독교적 고대형식과 기독교적인 내용, 규범의 강요와 사상의 유동성, 궁정의 과시욕과 현세의 무상함이라는 대립적인 현상의 표출로 나타난다. 17세기의 인간에게 있어 모든 존재는 갈등과 대립으로 이해됐다. 소재, 형식, 표현방법에 두루 나타나는 이러한 대립과 부조화는 당대 생활감정의 표현이며 이 감정들의 분열을 야기한 사회적 변화의 직접적인 계기는 30년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구교측의 반종교개혁과 더불어 현세지향적인 인문주의적 문예부흥기의 자의식을 파괴했고, 신과 현세, 영원과 유한성, 영혼과 육체, 죽음과 현세의 행복, 금욕과 현세적인 욕망, 지식과 신앙 사이에 극복될 수 없는 심연을 열어 놓았다.


바로크 시대의 사람들은 ‘죽음을 잊지 말라(memento mori)’는 교훈을 강조했다. 이는 현세의 거부와 죽음의 경고는 외견상 다채롭고 환락에 찬 생의 무상함과 불확실성에 대한 환멸에서 연유했다. 현세는 온갖 유혹적이고 화려한 현상들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고 무상한 것일 뿐 의욕과 욕망에 찬 생활감정의 이면에는 항상 죽음에 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러한 불안감은 교양 있는 사람들과 서민계층을 동시에 사로잡고 종래의 귀족적인 여러 성격들을 박탈하여 기독교의 세기에 새로운 힘을 줬다. 


초기 바로크 시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은 신분의 다원성이었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종교의 세속화 과정이 계속된 결과였고 초기 자본주의에 의한 경제구조의 점진적인 변화도 한 가지 원인이었다. 도처에서 중세의 낡은 토지소유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적인 조건이나 농지의 조건이 탄생했다. 소도시들이 중요성을 띠게 됐으며 그럼으로써 반농민인 부르주아 상인, 특히 고리대금업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그리고 이들은 서서히 법조계나 귀족계급으로 흡수돼 갔다. 이러한 중세 봉건질서의 붕괴와 함께 귀족계급은 점차 그 중요성을 상실해 갔다. 장기간에 걸친 전쟁이 초래한 민중의 고난과 물질적 정신적인 파탄, 그리고 정치와 사회구조의 변화는 바로크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로크 예술은 르네상스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정당하게 하나의 독립된 양식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분명한 특징들이 있다.   


프랑스의 바로크 연구의 대가인 장 루세(Jean Rousset)는 바로크 예술을 ‘시르세 circ (변신)’와 ‘팡 paon(전시 욕망)’이라는 두 가지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다. 마법의 여신인 시르세의 지팡이 아래에서 모든 사물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만다. 또한 팡은 화려한 겉모습으로 축제에서 가면들의 행렬을 주관한다. 이들은 가면 속의 인물들로서 모두 겉과 속이 다른 모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겉모습으로부터 영원한 모델로, 끊임없는 변신으로부터 진정한 존재로의 상승을 시도한다. 이러한 겉모습과 참존재의 구별과 분리 그리고 참존재에 도달하기 위한 욕망과 고통이 바로 바로크 시대의 모습이며 그 표출이 바로크 예술라고 할 수 있다.

◆바로크시대의 성카를로스 성당

바로크 예술은 정치, 사회, 종교와 결합된 문화현상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역사적, 사회적 제반원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당시의 시대정신을 작품 안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크는 그 시대의 예술뿐 아니라 문명 전체를 대변하고, 기존의 지식과 질서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성격을 갖는다. 동적인 서정성과 비장미를 함께 지니고 있는 바로크는 개방된 형태의 체계와 종합을 추구하는 예술의 한 형태이다.
건축에서의 바로크의 특징은 구조들의 파열, 형태들의 사라짐과 균형들의 불안정, 선과 공간을 움직임 속에 놓기, 과도한 장식과 착시, 유동적 외관의 망으로 구조를 대체하기, 관람객을 움직임의 세계로 초대하여 그들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 속에 놓아두기 등이다.

◆루벤스의 '오레이티아를 납치하는 납치하는 보레아스'

이들 작품들은 직선적인 윤곽대신에 곡선적 윤곽이 보여지며 빛과 어둠의 효과가 추구되고 그림과 같은 아름다움, 뚜렷이 펼쳐진 조망, 화려한 색채와 장식적인 요소를 띠고 있다. 따라서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들은 규모가 크고 전체나 부분의 취급이 양감적이고 감각적이며 조각적이어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또한 바로크 회화에서는 르네상스 예술의 날카로운 외형 대신에 윤곽을 의식적으로 몽롱하고 불명확한 것으로 처리했다. 이들의 내용도 거대한 것, 격렬한 것, 정열적인 것, 공포심 등 근원적인 것에 집중하게 됐다.


예술작품들과 인간과의 관계는 17세기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시대에도 있어 왔으며, 그 저변에는 당시의 사회상과 다른 예술들에서 표시된 경향, 관념들이 그 나름대로 반영되어 있다. 모든 예술에서 양식이 바뀌면 이상도 바뀌듯이, 형식이 변함에 따라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사상들도 변천했다. 예술가들은 현실 속에서 보여지는 살아있는 생명력의 생성과 움직임, 변화 등을 예술작품 속에 표현했으며, 바로크의 예술은 이런 다양한 감각적인 사물들과 관능적인 체험이 주는 다양한 즐거움들을 인정한다.

◆루벤스의 '아기예수의 할레'

바로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되는 자신의 모습에 때로는 절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매혹당하면서, 이런 변화하는 모습들을 영원성, 불변성, 안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하지 않으며, 변화하는 양상들에 안주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기를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화려한 외관을 드러내 보이는 육체적이고 감각적이면서 때로는 저속하기까지 한 표현의 범람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표면적인 것의 효과와 그것을 현란하게 꾸며내 보이면서 실체에 도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바로크 미학의 본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지은┃프랑스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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