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최용만 역│푸른숲


대학 입학 전 겨울 방학, 인터넷 서점 추천 책으로 광고가 떠있는 것을 보고 어떠한 내용인지는 몰라도 중국소설을 접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궁금증 반, 생소함 반으로 책을 읽어내려 갔다. 이 소설은 평생을 피를 팔며 살아야만 했던 허삼관의 이야기이다. 허삼관은 피를 팔아 건강을 증명하고 돈도 벌고 그 돈으로 마을에서 제일가는 미인 허옥란과 결혼하고 일락, 이락, 삼락 삼형제를 낳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아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 아들의 머리를 돌로 내리친 일을 수습하느라 두 번째로 피를 판 이후, 삶의 모든 고비를 피를 팔아 넘어서는 매혈 인생을 걷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이 소설은 피를 파는 행로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주인공 허삼관이라는 인물로 인해 중국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청년 허삼관은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피를 팔며 살아왔다. 그리고 예순살 노인이 되어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팔아보려고 했지만 허삼관은 건강이라는 문제로 그러할 수 없었다. 부정이라는, 가족과 희생이라는 아름다운 가치를 실현했음에도 허삼관에게 아쉬웠던 점은 바로 삶의 목적지와 자신의 만족 따위는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러한 기회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에 대한 지적과 반성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영화나 소설을 보면 어쩐지 답답한 마음이 든다. 통제적인 사회적 환경이 개인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책의 옮긴이도 중국이란 곳에서는 현대적 인간의 존재 문제를 고민하기에는 기형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에서야 중국은 전보다는 자유로워졌지만 아직까지도 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다.
비록 허삼관은 자신의 삶에 대해 늦게 인식하더라도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두려움을 걷어차고, 희생이라는 가치 하나로 가족을 위해 걸어왔다는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허삼관의 이러한 생애를 보면서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떠올랐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자기 하나를 불태워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안겨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허삼관 매혈기와 같은 따뜻한 희생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나가는 것에 가치를 두어보는 것은 어떨까.
허삼관은 이 소설을 희극적 필체로 그려 내려가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매혈 여정만큼이나 즉흥적이고 피 같은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란 걸 알 수가 있다. 가족의 사랑과 지켜주고 돌보아줌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평등이라는 가치, 이 소설만큼이나 유연하고 냉정하게 실현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자유로움과 평등이 전제된 사회. 작가는 작은 행복 하나하나를 감사하게 만들어가며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도 작은 행복 하나하나를 만들어가고 지켜나가기 위해 피와 땀으로 물든 돈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많은 부모님들을 생각하고는 참 많이 숙연하고 또한 감사하고 행복하다.
강도경┃경제·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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