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의 나는 또래 남자애들처럼 컴퓨터, 카메라 등과 같은 기계에 대한 표현하지 못 할 동경심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마련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고, 신문사에 들어와서 생전 처음 만져본 DSLR 카메라에 눈을 빛내고, 관리 권한을 가진 신문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애정을 쏟고 있다. (그것이 사진 찍는 실력과 인터넷 관리 능력으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점이 옥의 티랄까)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손으로 쓰는 글을 선호하는 편이다. 학생기자 활동을 하면서 타자속도가 조금 빨라졌지만, 이전에는 자판기 이용을 거의 안 했기 때문에 타자속도가 100을 넘지 못했다. 요즘에도 기사가 안 써지거나, 내용이 고치기 힘들 때면 MP3 플레이어와 펜, 살포시 찢은 연습장과 자료만 덜렁 들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에 들어간다. 유독 외로움을 타는 성격 탓에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꽉 막혀 있던 일이 한결 나아져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부터 악필로 명성이 자자했던 나는 그런 습관 덕에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의 글씨를 쓸 수 있게 됐음을 내심 뿌듯해하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굳이 손으로 쓰는 글을 좋아하는 것은 ‘낙서’때문이 아닐까. 교과서 한 귀퉁이에, 작성하던 문서 구석에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졸라맨과 머리에 스치는대로 막 휘갈긴 내 나름의 문구. 아직도 버리지 못한 고교시절 연습장에는 철없이 그린 낙서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컴퓨터로는 낙서를 하기가 너무 불편하다. 기사를 쓰면서 문득 스쳐지나간 글귀를 적다보면 내용이 뒤죽박죽 얽혀있기 일쑤고, 작정하고 마우스로 그리는 졸라맨들은 만족스럽지 않다. 30분 정도 혼자서 기사를 쓸 때에도 기사가 쓰여진 종이 뒤편엔 그동안 쓰지 못한 글귀, 그리지 못한 여러 낙서들. 외로운 건 싫지만, 한 두 번 정도 낙서를 하고 나오면 느껴지는 후련함이 좋다.
얼마 전, 낙서를 더욱 좋아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그냥 떠오르는대로 마음에 드는 단어나 문장을 이것저것 쓰고있었는데, 진척이 없던 기사에 쓸만한 문장이 쓰여진 것이다. 옳다구나 신이 나서 기사 내용에 추가하려 끄적이는데, 제목으로 무엇을 할지 떠올랐다. 매번 골머리를 앓아야 했던 제목이 쉽게 풀리자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일반적으로 ‘메모를 하는 습관을 들여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메모가 주는 효과에 대해 듣다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나도 메모를 생활화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 이후? 아마 십중팔구는 메모 습관들이기를 그만뒀을 것이다. 나도 그 대표적인 부류에 속한다. 하지만 낙서로 제목을 찾은 이후에는 꽤 깔끔한 종이 한 장을 가지고 다니며 틈나면 낙서를 하고 다닌다.
만약 기사 제목을 찾은 방법이 낙서가 아니라 메모였다면 나는 그것을 습관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메모는 딱딱하고, 재미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부류의 해야 할 것은 의무감, 해야한다는 강박증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그에 반해 낙서는 어떤가. 어떤 의무감도 없고 시간 죽이기에도, 재미도 쏠쏠하다.
좋은 습관을 갖게 되는 데는 계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절실한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이상 재미없으면 지속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달리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메모를 낙서로 바꿔 생각하게 된 나처럼 말이다.
문화부장 고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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