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두번째 이야기(작가-두동원)

일단은 반가웠다. 처음은 그랬다. 만나자마자 잘 지냈느냐, 여자친구는 있느냐 하는 질문들이 오갔다. 헌데 잠깐이었다. 고등학교 때 시험이 끝나면 늘 그랬듯, 우린 정해진 코스대로 PC방에 갔고, 노래방에 갔다. 그러다 지치면 식사하러 가는 식이었다. 컴퓨터와 마이크 앞에서는 얘기해야 한다는 부담이 덜했지만, 막상 식사하려고 친구와 마주 볼 즈음이 되자 둘 사이엔 공연히 심상한 바람만 부는 듯했다.

“요즘 날씨 참 덥지 않냐, 그래도 곧 가을인데.”

할 말 없으면 꼭 날씨 얘기다.

“아직 멀었어. 지구온난화라잖아. 봄이랑 가을은 이제 없어질지도 모른대.”

지난 겨울 더위라는 게 있기나 했는지 의심 갈 정도로 추웠지만 여름은 거짓말처럼 또 다시 와버렸다. 겨울에는 삼한사온이란 말처럼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나면 날이 풀리는 때가 오고, 여름철은 삼복더위라 해도 시원하다 못해 시큼한 소낙비 한 자락이 잊을 만하면 내리곤 한다. 전부 지구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까닭일 테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란다. 내가 살고 있는 별 지구에 점차로 방한벽 몇 겹이 덧씌워진다니.

어쩌면 지구뿐만 아니라 내 삶도 온난화되고 있는 건 아닐까. 수확의 계절 가을은 언제나 오려나. 퍽 무더운 열기만 계속되다보면 못 참고 말라비틀어질지도 모르는데.

“너 뭐 편입한다고 그랬잖아.”

친구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결국 궁금한 건 이거였다.

“난 잘 모르겠어. 생각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고? 벌써 잊었냐? 네가 그렇게 좋은 대학 가고 싶다고 했잖아. 꿈은 이뤄질 거라고 열심히 하자고 했잖아. 이제 다 까먹었냐? 그 마인드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면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는 말이 참 흔한 시기였다. 헌데 그리면 그릴수록 그 꿈에 닮아가기는커녕 닳아가는 연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 시절 나는 내가 닿고자 하는 것들에 꿈이란 말로 한껏 포장한 바 있었다. 그 꿈이 과자 부스러지듯 으깨지기 전에 말이다. 과만한 생각일지 모르나 나는 내가 한 만큼은 보상받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서운했다. 말하자면, 인생의 항상성이 일그러졌다 할까. 그 정도 꽃샘추위에 떨었으면 봄날도 오리라 믿었다. 허나 이건 자연법칙의 예외였다. 그래서 난 카오스 상태일 따름이다.

“너 많이 약해졌다.”

친구는 같이 고시원이나 도서관에 드나들며 수험 생활을 해주길 바랐는지 적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내게 그 꿈이란 건 더는 질량감 없는 소리였다. 아무런 보장 없이 그걸 짊어지고 가기엔 버겁기만 할 터였다.

“근데 그렇게 해서 뭐하려고?”

“몰라. 씨볼. 우선 달리고 봐야 할 거 아냐. 유대 경전에도 '승자는 먼저 달리기 시작하면서 계산을 하지만 패자는 달리기도 전에 계산부터 먼저 하느라 바쁘다'고 나와 있다더라. 난 당연히 승자니까 달리는 게 먼저지.”

우습게도 승자는 먼저 달리기 시작하면서 계산한다는 말은 꿈을 그리면 닮게 된다는 금언(金言)과 묘하게 충돌되었다. 나는 과연 꿈을 꾸었던가. 꿈 혹은 계산, 그 의미의 차이에 둔감하기엔 난 이미 너무 많은 길을 달려오고 말았다. 마치 사막 같기만 한.

<下편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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