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부담스러워한다. 가르치는 것에 욕심이 많다 보니, 나는 학생들에게 숙제를 많이 내주는 편이다. 그리고 강의도 100% 영어로 한다. 아예 교실과 내 연구실을 English Zone으로 정하고, 그 곳에서 학생들이 영어로 말하지 않으면 벌점을 준다. 그래서 학생들은 내 강좌를 피해가려고 요리조리 꼼수를 쓰기도 한다. 꼼수가 통하지 않는 전공 필수 강좌에 들어온 학생들은 도살장에 끌려온 송아지 마냥 비참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기도 한다. 심지어 첫 수업을 마친 어떤 학생은 답답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사실 내 강좌는 이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무시무시한 것은 아니다. 우리 학생들이 너무 순진하다 보니, 첫 수업에 들어와 영어 강의라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 영어로 쓰인 강의계획서가 생소하고 영어 환경에 익숙하지 않으니 가슴이 떨리기도 하고, 또 나의 달변(조금 과장되기는 했지만)에 조금 질리기도 한 것뿐이지, 결코 그리 겁낼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Don't worry about it. You will do fine. Believe me, you will be very proud of yourself at the end”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한다.

나에게 첫 강의는 매우 중요하다. 내 강좌를 수강하는 학생들을 처음 만나는 시간, 미팅을 하러 나가는 청년의 마음처럼, 파란 호수에 잔잔히 퍼지는 물결 같은 부끄러운 긴장감과 봄바람에 날리는 처녀의 치맛자락 같은 설렘이 있다. 첫 강의가 시작되기 전, 강의실에 가서 상태를 확인하고, 강의실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분필도 있고, 칠판도 깨끗하다. 바닥에 떨어진 종잇조각 몇 개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으니 나름 정리가 된다.

나는 첫 시간에 말을 제일 많이 한다. 과목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와 목표를 제시하고, 강의계획서를 함께 읽으며 조목조목 설명하고, 그리고 영어 울렁증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영어는 단지 국제화 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도구”일 뿐임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다 보면, 목에서 쉰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이 그리울 만큼 칼칼하다. 달나라 토끼 이야기를 듣는 것 마냥 눈만 껌뻑거리는 학생, 그래도 조금은 이해한다는 듯이 쑥스럽게 미소짓는 학생, ‘하- 이까짓 것 정도야.’하면서 ‘썩소’를 날리는 학생 등 학생들의 반응도 참 다양하다. 강의가 끝날 때 즈음이면 한 학기 열심히 해보자는 나의 말에 감동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학생 얼굴 하나하나에 공부에 대한 굳은 의지가 어린다.

내 강좌에 처음 들어오는 학생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한 학기동안 내 강좌를 받으며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은 학기말이 되어 종강하는 시간이 되면, 자신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내가 첫 시간에 주문처럼 말했던 대로, 학생들은 모두 스스로의 역량과 성취에 만족스러워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나는 다시 새 학기가 기다려지고, 또 새로운 학생들 생각에 가슴이 뛴다. 마치 선생이 천직이라도 되는 것처럼.

박재영(사범대ㆍ영어교육)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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