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첫번째 이야기(작가-김민영)

"우리 졸업하고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잘 지냈지? 그나저나 너 시간 있니? 여기 너무 덥지 않아? 어디 카페 같은 데라도 갈까?"

더운 여름 날, 뜬금 없이 나타난 동창의 손을 잡고 있자니 짜증을 넘어 어떤 우울함이 밀려온다. 내가 알던 누군가가 이렇게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설문조사'를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너 지금 무슨 일 하는 거야? 혹시 너도 도 같은 거 공부한다고 하면서 제사 드리고 돈 받는 거야?"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찰나이지만, 혹시나 오늘 나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녀가 예전의 그녀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단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다. 하지만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잡았던 손을 확 빼면서 표독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막연한 기대는 사라지고 당황스러워진다.

"너 편견이 많구나? 너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 말만 듣고 말하는 거지?"

"응? 아니, 나는 그런 게 아니라…"

"너 그런 사람들이랑 직접 말해 본 적 없지? 그냥 다른 사람 말만 듣고, 아 그런데구나, 절대 따라가면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너 같은 애들이 그렇지 뭐. 편견이 많은 애들 말야."

그녀가 비아냥거리면서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당황한 나의 반응에 오히려 힘을 얻는 듯 이내 다시 내 손을 잡고 회유조로 말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한테 들은 얘기말고는 네가 직접 겪은 일은 없잖아. 다른 사람 얘기에 미리 편견만 가지지 말고 내 얘기 좀 들어봐. 응?"

당황스러움에 그녀의 얼굴만 보는데, 군데군데 지워진 썬크림 자국이 부옇게 남아있다. 뙤약볕에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을 그녀를 생각하자 이상하게 당황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잠잠해진다. 그녀와 나 사이에 절대 깨지지 않을 두꺼운 유리막이 쳐져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

"미안한데, 너랑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을 것 같다. 바빠서 먼저 가볼게."

망설이지 않고 돌아선 뒤로 그녀가 억울한 건지,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편견이라는 말도 얼핏 들린다. 문득 친구들 사이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던 앳된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부채를 나누어주던 여자처럼 그녀 또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믿음으로 이 거리로 나섰을 것이다. 그녀에게 강요된 믿음이 무엇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믿는 사람들의 말을 모두 들어주기엔 지금 이 거리가 위험한 믿음으로 넘쳐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편견이라는 비아냥을 들을지라도 나도 결국 믿음에 대한 믿음엔 조소밖에 보낼 것이 없는 것이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는 동안, 내게 비아냥거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자신의 믿음을 깨고 싶지 않아하는 절박한 발악처럼 들려왔다.

 



                                           - 끝
                                   김민영┃국어국문·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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