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누비며 여행 칼럼을 쓰는 나는 방금 한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오는 고국이지만 향수를 만끽할 여유도 없이 여행 중간 중간에 썼던 원고를 집에 와서 정리해야 했다.


“이런….” 아침 9시까지 출판사 관계자들과 미팅이 있는데 지금 시각은 8시 40분. 허겁지겁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급히 나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려던 차에 난 급히 시동을 껐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보다 훨씬 빠른 모노레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 급히 시동을 끄고 자동차에서 내려 모노레일을 타러 갔다.


과거에 놀이공원에서만 볼 수 있었던 모노레일은 초고속으로 달리는 모노레일이 개통되면 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교통 수단이다. 건물 5층 높이 정도에서 다니는 모노레일에 앉아 상큼한 공기와 풍경을 만끽하려던 순간, 나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다.


초고속 모노레일 덕분에 관계자들과 성공적으로 미팅을 끝마치고,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가려고 했지만,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표가 매진된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히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회사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나는 한국에 있는 시간도 적어 카 셰어링 서비스를 자주 이용한다. 카 셰어링 서비스는 자동차 한 대를 공유해 보험 및 주차 문제 등을 해결하여 자신이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여러 사람과 공유해서 쓰는 것을 일컫는다.


‘이 차는 오후 5시부터 사용이 가능합니다’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 자동차에 카 셰어링 전용 카드를 긁었다. 비록 주인 없는 차이지만 어디 긁히기라도 하면 벌금이 어마어마하니 안전 운전을 생각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지금이 퇴근 시간이다 보니, 도시는 꽉 막힌 러시아워를 이룬 상태이다. 내 머리 위에선 모노레일이 기분 좋게 달리고 있는데 자동차는 움직일 생각도 안 한다. 잠을 얼마 못 자서 피곤한데, 집에 늦게 도착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쉬운 길을 찾으려 열심히 네비게이터를 훑어보다 한국을 떠나기 전 신청한 전용도로로 이용하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왔다. “유후!” 환호를 지르며 얼른 공영도로를 벗어나 전용도로로 이동했다. 공영도로 중 일부를 전용차선으로 사용하는 이 제도는 돈을 낸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다. 꽉 막힌 공영도로를 지나 전용도로를 달리는 나는 옆에 꽉 막힌 도로를 보며 왠지 모를 쾌감에 빠져,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부르며 집으로 향했다.


꽉 막힌 러시아워를 피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소리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도로교통 관리부입니다. 권영은 씨 되십니까?”
"맞는데요. 어쩐 일이시죠.”
“권영은 씨 이름으로 전용도로를 동일한 시간에 두 사람이 사용한 기록이 발견돼 연락 드렸습니다. 도로 교통법 ‘전용 도로 2인 이상 사용 시 벌금 부과’ 조항에 따라 벌금 1천 만 원이 부과됩니다.”
"저는 누구에게 제 것을 빌려준 적이 없는데, 제 것이 도용되었나요? "


"정황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저희는 위반한 당신에게 벌금을 알려주기 위해 전화를 했고, 당신은 이번 달까지 벌금을 내지 않으면 1년 간 어떤 나라도 여행하실 수 없으며, 교도소에 수용될 것입니다. "
며칠 전 친구 녀석이 나에게 도용 당한 얘기를 했을 때,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웃어 넘겼는데, 아니,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다니…, 정말 황당할 따름이다.


연일 TV에서는 이름을 도용한 사람들이 붙잡혔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싼 돈을 주고 이용하는 전용도로를 신청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도 없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이름을 도용해서 몰래 도로를 이용하고 있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처음 이런 범죄 내용이 뉴스에 보도되었을 때는 한 두 번하다 말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짐에 따라 없는 사람들이 자꾸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구체적으로 누가 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 주변 사람들부터 하나씩 의심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내 것을 도용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분이 풀리지 않는다.


기술이 발달했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에게는 지금의 세상이 살기 좋지만, 없는 자에게는 더욱 살기 힘든 세상이 돼버렸다. 있는 자만이 더욱 살기 좋고 없는 자는 계속 해서 뒤쳐지고 있다.


계속해서 악순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돈이 없는 자는 최신 교통을 이용하지 못할 뿐더러, 시간적인 여유도 없기 때문에 자꾸만 이런 일을 행하고 있고, 있는 자는 피해를 입기 때문에 또 다른 금전적 문제와 상당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처음엔 최신 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서 마냥 좋았지만, 증가되는 범죄로 인해 또한 내 자신도 피해자가 되고 손실이 생기니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머리가 아파 온다. 일단 경찰에 신고는 해두었지만 과연 범인이 잡힐 지는 미지수다. TV에서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해야 된다, 말아야 된다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 없이 싸우고만 있는 모습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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