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궁리, 2001

우리는 죽음이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기껏해야 삶의 끄트머리에 따라다니는 종착역 정도로 인식한다. 죽음에 대해 저항하려는 무의식이 자연스레 발로시킨 본능적 사고일 게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에, 김열규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궁리, 2001)에서 죽음을 다시금 뒤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죽음은 삶과 언제나 같이 있으며, 죽음은 삶의 최종지가 아니라 언제든 삶 속에 끼여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죽음은 삶과 함께 살아간다. 죽음은 삶과 함께 비롯해서 삶 속에서 삶과 함께 자란다. 그런데도 죽음은 회피의 대상이며, 전통적으로 부정(不淨)과 원령(怨靈)으로 인식되면서 공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저자는 말한다. 이제 죽음을 멀리하지 말자. 사람도 자주 만나야 정이 들기 마련이다. 죽음과 친해지고 서로 정을 붙이고 자주자주 절실한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서 삶이 죽음과 정을 붙여야 한다. 방법은 바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일게다.

10여 년 전에 하나의 관심사는 “왜 한국은 서구와 달리 생명보험이 죽음을 상품화한다는 이유로 거부되었는가?”였다. 아마도 죽음의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는 착안 속에서 관련 문헌을 섭렵하다가 [메멘토 모리]를 잡게 된 것이다. 물론 당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죽음학을 최초로 선보인 베스트 셀러였다.

엊그제 우리는 베스트(?)의 죽음을 보았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善終)은 아름다운 죽음, 삶을 고맙게 여기고,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준 죽음은 우리들 삶을 성찰하고 감동까지 주었다. 오늘 이 책을 다시금 꺼내보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끔씩 동네 뒷동산에 오른다. 그 주변에는 공동묘지가 아스라하게 잠들고 있다. 죽음을 반추하게 된 뒤부터는 무덤이 공포보다는 평안함으로, 쓸쓸함보다는 안락함이 다가 온다. 그래도 죽음이 무서운 것은 예전과 다를 바는 없다.

새 봄에 죽음을 이야기하자니 좀 주눅 거린다. 그래도 가만히 볼라치면 봄도 죽음 같은 휴식과 추위를 인고의 시간으로 기억하고 견뎌온 탄생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겨울과 봄이 서로 하나이듯이 삶과 죽음도 함께이다. 밤과 아침이 하나의 원으로 돌고, 프로이드가 말하는 두 가지의 본능, 즉 에로스(생명 또는 생성)과 타나토스(죽음 또는 해체)도 언제나 우리 내부에 같이 자리 잡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삶은 소중하고 기쁘다. 언제나 하루 하루가 삶의 마지막이듯이 아름답다. 

생각나는 책의 구절 하나, “거기가 아, 얼마나 좋으면 글쎄, 하고많은 사람 다들 가서는 안 돌아오느냐 그 말일세. 자네 거기서 돌아온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단 소리 듣기나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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