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금남로 등…격렬한 시위 현장
최후 항쟁지 전남도청별관 철거 논란
열사들 넋·고귀한 정신 잊지 말아야

오늘(18일)은 민주주의를 위해 국민들이 군부 독재에 항거하며 몸 바쳐 싸웠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29주년을 맞는 날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짧지만 치열했던 민주화운동에서 시민들은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폭력진압에도 무릎 꿇지 않았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밑거름이 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찾아간 광주는 여전히 29년 전 정신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약 11개월 동안 계속돼 온 구 전남도청 별관 철거논란으로 인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유가족들은 또 다시 상처를 안으며 어수선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국무회의를 통해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전국 대학에 휴교조치가 내려졌다. 다음날인 18일, 전남대에서는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이를 진압하려는 계엄군이 학교 정문에서 충돌하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 현재 전남대의 모습은 단과대학의 체육대회와 맞물려 한창 축제 분위기지만, 29년 전 5월은 약 200여 명의 학생들이 진압봉과 대검으로 구타당하고 군홧발로 걷어차이며 연행됐던 장소이다. 정진향(전남대·정외09) 씨는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님들 덕분에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었다”며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가 잊혀져 가는 것 같다”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29년 전 오늘날 광주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거리가 된 금남로에서는 분수대를 연단으로 해 광주시민들이 민주화 투쟁 결의를 다지고 각종 궐기대회를 열었다. 또 이곳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계엄군에 맞서 광주시민들이 연일 격렬하게 시위했던 곳이다. 지난 1980년 5월 21일 오전 10시, 도청 스피커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광주 시민들이 숙연해지던 그 때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인해 최소한 54명이 숨지고 500여명 이상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던 가슴 아픈 곳이기도 하다. 금남로에서 30년 넘게 복사집을 운영하고 있는 기방서(60·광주시 산월동) 씨는 “골목마다 경찰과 공수부대로 가득했고 마치 전쟁 상황 같았다”며 “야산과 강변에는 아직도 당시의 교련복을 입은 학생 시신들이 발굴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남로 옆에 위치한 당시 군인들의 체육관이었던 상무관은 29년 전에는 임시로 희생자들의 주검을 안치하고 분향했던 장소이다. 당시 넘쳐나는 시신들로 인해 상무관에 더 이상 자녀의 시신을 안치할 수 없었던 부모들은 도청 앞 광장에 죽은 자식의 시신을 누이고 계엄군의 무자비한 행위에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이곳은 현재 5.18광주민주화 광장으로 변해있었다.


이렇게 열흘 동안 계속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최후의 항쟁지인 구 전남도청 별관은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소탕작전으로 인해 14명이 숨지고 160여명이 체포되며 공수부대는 광주에서 철수한다. 마지막까지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자리에 끝까지 남아 항거한 사람들의 정신이 오롯이 남아있는 구 전남도청 별관에 이르자, 수많은 시위천막들이 세워져 있고 도청 별관에는 검은색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유는 문화관광부가 구 전남도청 별관을 철거하고 아시아 문화전당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는 지난 2008년 기공식을 갖고 민주주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옛 전남도청 별관을 철거하려 하고 있다. 이에 별관건물 철거계획에 반대하는 5월 단체와 유가족들은 지난해 6월 24일부터 지금까지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또한 지난 8일 도청별관 철거에 반대하는 5월 단체와 유가족, 개혁진보단체들이 모여 ‘5·18사적지 구도청 원형보존을 위한 광주전남 시도민대책위원회(이하 구도청보존위원회)'를 결성해 조직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구도청보존위원회 안병현 상황실장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경우에도 당시 현장을 최대한 보존하고 재현해 보여주고 있다”며 “옛 전남도청 별관은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진실과 정신을 보존하는 성지로 보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도청보존위원회는 지난달 9일과 1차 시민결의대회를 갖고 도청별관 철거 문제에 대해 결사 반대 의지를 다지며 현재 도청별관 안에 머물며 갑작스러운 철거에 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 1980년 5월 27일 도청에서 항거하며 목숨을 바친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70·광주시 중흥동) 씨를 만났다. 김 씨는 “도청을 아들 보는 것처럼 해왔는데 별관 철거는 얼토당토않다”며 “아시아 문화전당 추진단이 끝까지 도청을 철거하려 한다면 자식이 죽은 곳에서 다 같이 죽겠다”고 굳은 의지를 밝혔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되새기고자 찾은 광주는 여전히 29년 전 민주화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 전남도청 별관 철거 논란으로 유가족들은 또 다른 상처를 안고 분루를 삼키고 있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열사들이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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