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 받아보던 갓 뽑아낸 잉크의 새까만 냄새는 사라지고 말았다. 자고 나면 매일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는 기분 같았던 두툼한 신문은 이제 만나볼 수가 없게 됐다. 나는 가끔 신문지의 한 면, 한 면에 스며있는 그 잉크 향이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심지어 끼워오던 현란한 광고전단지들, 월마다 오던 신문대금 청구서마저도 그리울 때가 생기곤 했다. 신문은 더 이상 펴는 게 아니다. 종이에 있지도 않다. 돈을 낼 필요도 없이, 인터넷에서 얼마간의 광고만 즐기면 종합정보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광고는 교묘한 방식으로 머릿속에 인식돼 내 소비생활을 횡행하게 했고,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빽빽이 글자가 박혀있는 옛 신문을 만지작거리며 넘기고 싶었다. 그게 더 사람 사는 얘기가 잘 전달되는 느낌이다. 이러니까 정말 옛날 사람 같다.


나는 지금 그 신문 같은 신세이다. 신문기자로 온갖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던 시절은 지나가고, 편하게 의자에 앉아 들어오는 정보들을 받고 그걸 편집해서 올리기만 하면 된다. 가끔 기사 내용이 부적합하면 기사를 발로 썼느냐고 비난받기도 하는데, 난 정말 발로 쓰고 싶다. 세상이 변한 만큼 편리해졌지만 나에겐 녹록하지 않다.


오늘 회의 중이었다. 정부여당에 대해 비판하는 논조를 싣자는 내 의견은 역시나 철저히 무시되고 말았다. 그 사안은 이런 것이다. 정부가 우주정거장을 만드는 데 일부 기업에만 우대해주는 차별 정책을 쓰는 것에 대해 난 의혹을 제기했다. 왜 그 기업들에만 수혜를 주느냐, 기업들과 정부가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건 아니냐는 의문이 생기는 건 나로선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후배는 이런 내 생각을 정면으로 받아치더라.


 "제가 볼 땐, 조금 더 뉴미디어 수요에 부응해주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우주정거장을 만들었으니 그게 앞으로 어떤 사회적 효과를 거둘 수 있겠고, 거기에 어떤 시설이 들어설 것이며, 이런 걸 톱으로 빼야죠. 오히려 '새 우주시대에 무엇을 할까' 같은 걸 그 기업들과 협조해서 UCC 공모를 내고, 수용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렇게 하죠."


동료 기자들 대부분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런 소리가 나오자 급속도로 합의는 이루어졌다. 요즘 밑에서 추격해오는 놈들이 무섭다. 뉴미디어, 뉴미디어, 이거 내가 대학 다닐 때도 배운 개념이었다. 시간은 무색하게 흘러갔고, 미디어는 비판의 기능보다 창의성 없는 창의성을 표현하는 기능이 확대되고 있었다. 나 같은 구닥다리 기자가 설 곳은 더 이상 없었다. 기사는 네티즌들이 쓰고, 기자는 그저 그 내용을 편집할 뿐이었다. 해서 하나의 완성된 신문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생각들이 얽혀 어릴 적 교과서에서 배웠던 '다원성'의 가치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 각각의 다원성이 혼합된 전체의 모습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회의를 마치고, 후배는 잠깐 커피 한 잔을 마시자고 했다. 도시의 풍경이 내다보이는 사옥의 휴게실은 세련됐지만 또 이질적이었다. 후배는 자판기 커피를 내밀며 세상 다 살아보았노라 하는 말투로 말했다.
"참, 많이 변했죠?"


세상은 어느덧 하나의 신문이나 뉴스 형태로 만들어 대량으로 공급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수용자 개개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관심사항에 체크한 항목들에 해당하는 광고만을 보여주고 바로 그 광고된 물품을 파는 쇼핑몰로 클릭 한 번이면 이동이 가능하기도 했다. 그래, 이 바닥만 봐도 참 많이 변했다.
"편해졌잖아요, 좀 쉽게 생각해요. 선밴 그게 문제예요. 예전엔 전주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대전, 천안, 수원 다 거쳐서 가야 했다면 지금은 그냥 그렇잖아요. 전주, 그리고 바로 서울."


많이들 쉬워지고 편해졌다. 문제는 라이프 스타일이나 교통만 쉬워진 게 아니라 생각도 쉬워졌다는 게 아닐까. 날카롭게 세워야 할 것들이 무뎌진다. 자신의 기호만 남아있을 뿐, 자신의 온전한 생각은 남아있지 않다. 이런 게 아쉬울 따름이다. 후배에게 씁쓸한 눈빛을 연신 내비치자 후배는 더는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그런 그에게 난 어떠한 말도 해줄 수 없었다.


하루에 혼자 서른 개가 넘는 기사를 1년 간 '생산'해내면 그 기자에겐 우리 회사에선 '정보왕' 내지는 '올해의 기자상'을 수여한다. 이번에 후배는 그 상을 거머쥐게 됐다. 난 그 모습을 마땅찮게 바라보았다. 중요한 건 정신의 부재(不在)다. 새로운 발상의 나열들에는 하나 같이 깊이가 없었다. 후배는 수상소감에서 자꾸만 '고객'들의 만족과 스피드에만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언뜻 어린 시절 보았던 무수히 많은 광고전단지들의 달콤한 말들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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