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극회 100회 공연…빛나는 연극쟁이들
┗시리즈1. 땀과 열정으로 쓴 연극 역사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로 첫 공연
지역연극의 기틀 마련․대학생 의식 표출

100이라는 숫자

우리지역 연극이 인력난과 경제난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현재도 꿋꿋이 대학문화를 대변하고 있는 우리학교 극예술연구회 ‘기린극회’가  오는 21일 기념비적인 100회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오랜 시간 동안 청년 예술인들의 끼와 열정, 시대적인 저항과 예술혼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울리고 웃겨온 기린극회의 연극쟁이들. 두 번의 연재를 통해 지역 연극계의 기틀을 마련한 기린극회의 역사를 조명하고, 무대 연습이 한창인 100회 작품을 미리 들여다본다. 첫 회인 ‘땀과 열정으로 쓴 연극 역사’는 기린극회 3기 출신이자,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우석대 문예창작과 곽병창 교수를 만나 청년 연극쟁이들이 걸어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 봤다.<엮은이 밝힘>


100이라는 숫자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의미 있는 숫자다. 백일사진, 연인과의 백일, 100회, 100점 등등. 우리학교에서도 우리학교 연극동아리 기린극회가 ‘100회’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우리학교 학생이 직접 극본을 쓰고, 연기하고, 감독하는 연극단이 100회 째 작품을 선보이는 만큼 그 역사적 의미가 한층 깊어지는 순간이다.

기린극회는 지난 1961년 당시 유치진, 서항석, 김진섭 등과 함께 우리나라 연극계를 이끌던  박동화 교수가 극예술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당시 박 교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로서 기린극회의 첫 공연인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를 집필해 무대에 올렸다. 이 첫 공연은 우리학교 극예술연구회와 함께 설립된 민간극장인 창작극회에서 동시 공연됐다. 극예술연구회는 1976년 전까지 창작극회와 함께 동시공연을 했으나 1976년에 독립해 기린극회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곽병창 교수는 “초창기 기성연극은 대학연극에서 그 기반을 마련했다”며 “그 당시 문화예술의 중심은 대학가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화예술의 중심이자 엘리트층이 모여 있던 대학가는 사회의 모순을 끊임없이 드러내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이 때문에 기린극회 등 대학 극단의 작품 주제는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나타내며 주제의식이 선명한 작품이 주류를 이뤘다. 대학에서의 연극이 현실의 부조리를 꼬집어 낼 수 있는 요인은 연극 자체가 관객과 배우와의 소통으로 이뤄지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곽 교수는 “대학생 스스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 대학연극이었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며 “당시 대학가에서 기린극회의 연극 주인공은 대학 그룹사운드의 보컬과 함께 가장 큰 화제의 인물이었다”고 회상했다.

기린극회는 7080년대의 혼잡한 시대상황 속에서 대학생들의 내재 돼있던 저항의식을 표출시키는 역할을 했다. 문화적 성격이 강한 지금의 시위와는 달리 7080년대의 시위는 엄격하고 투쟁정신이 강했기 때문에 뜻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런 때에 연극과 같은 문화 공연은 매우 대중적인 저항운동으로 활용되고는 했다. 주로 소운동장이나 알림의 거리에서 공연을 했던 기린극회는 자연스럽게 학생들을 불러들였다. 좀 더 많은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정극보다는 풍물, 노래, 춤 등을 모두 갖추고 야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집체극이나 마당극을 위주로 공연했다. 야외에서 다수의 학생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마당극이나 집체극은 공연 도중 시위로도 이어져 학생들의 내재돼있던 민주화운동 의지를 표출시키는 장이 되었다.

기린극회를 비롯한 대학극단은 딱히 연극영화학과가 없는 지역에서 전문인력을 키워내는 유일한 곳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학교 기린극회는 민간 극단에 인력을 제공하는 주요 공급처이자 민간 극단의 일원으로 성장했다. 대학 극단에서 활동했던 학생들은 대부분 전공에 상관없이 우리지역 극단에 소속돼 젊은 연극인으로의 행보를 이어갔다. 곽 교수는 “우리지역 연극계의 50∼60%는 기린극회 단원이다”며 “지역연극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 기린극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밝혔다.

대학 극단은 기성 극단에서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소재와 신선한 도전의식을 표현함으로써 대학생들의 변덕스런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기린극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 극단은 기성 연극을 모방하는 측면이 많아 예술가적 치열함을 찾기 힘들다. 이에 대해 곽 교수는 “신선하고 도전적인 작품으로 인해 대학극은 역사적으로 연극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며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대학 극단이 기성 연극의 아류로 보이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고 전했다.

또한 곽 교수는 “앞으로 기린극단과 같은 대학 극단이 그들만의 문화를 더욱 발전시키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민간 극장에서 자주 공연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린극회가 전주에 위치한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면 일반인에게 현재의 대학생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문제는 무엇인지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곽 교수는 “이와 더불어 민간 극장이 활성화되고, 기린극회 역시 공연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린극회는 48년의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대학생들의 의식과 목소리를 대변하며 의식 있는 광대로 성장해 왔다. 이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에 대학극은 발전했고, 지역 연극의 역사를 견인할 수 있었다. 그런 역사를 이어온 만큼 오는 21일 열릴 그들의 100회 공연이 더욱 더 기다려진다.

◇지난 2007년 98회 정기공연 '행복한? 가족!' 연극 후 무대위에 모인 기린극회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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