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런 소리에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배트벨트를 찬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처음에 배트벨트는 휴대전화 케이스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 유명 디자이너가 배트맨의 벨트에서 모티프를 얻어 다양한 종류의 배트벨트를 디자인 한 이후로, 지금의 그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무리 중 대다수는 허리 부분을 강조하거나 화려하게 치장했다. 그나마 소박한 몇은 겨드랑이 장식 예술을 하고 있었다. 와키(Waki)라고 알려진 그것은 색색의 물감과 반짝이는 물질로 겨드랑이 아래를 장식하는,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다. 그들은 신체의 어떤 부위도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자리 잡고 있는 이곳에서는 새롭고 진기한 풍경들이 끊이질 않는다. 원래는 디자이너들의 부티크가 있던 곳이 패션 산업이 발전하면서 타운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거리에서는 다채로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꼭 화려한 모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날이 발전해 가는 패션 산업으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혹은 재발견된 소재나 섬유를 사용한 의류들이 많이 선보이게 됐다.


특히 바나나 섬유(Banana fiber)는 저렴하면서도 아름다운 직물 중에 하나다. 나는 재활용이 가능함과 동시에 멋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바나나 섬유가 맘에 들었다. 그에 비하면 배트벨트라든가 와키라는 것은 모두 한 때에만 빛을 발하는 소모품과도 같다. 내게는 이 모든 것들이 젊었을 때의 치기라고 생각될 뿐이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혐오하다시피 하는 것은 멘디(Mehndi)다. 멘디는 헤나 잎에서 추출한 물감으로 정교한 문양을 몸에 그려 넣는 작업이다. 멘디가 문신의 영역을 넘어서 하나의 패션 예술로 승화됐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좀처럼 동의할 수가 없다. 멘디 시술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유행 따라, 겉 멋 따라 사시사철 문양을 바꿀 뿐이다. 게다가 그림을 패션이랍시고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는 모습이란 천박하기 그지없다.


패션은 찰나적인 것이 아니다. 패션은 오히려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를 온전히 지니고 있는, 그럼으로써 한 사람의 존재와 개성을 완성시켜주는 매개체다. 그것은 비단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길 원한다. 그래서 몸이 불편하거나 도움이 필요하지만 진정한 멋을 아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온다. 나는 장애인 패션 디자이너다. 그러나 이것은 타인들이 내게 붙인 이름일 뿐, 나는 그다지 이 수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디자이너일 뿐이다.


이제 사람들은 지팡이나 보청기 같은 보조제품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패션으로 발돋움하면서 미흡한 부분이 아닌 완성작으로 그들을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나는 그들을 위해 100% 수작업을 한다. 볼품 없고 획일화된 목발이나 지팡이는 보기 힘들어졌다. 팔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들도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 된 개성이라 여기게 됐다. 나는 이것이 아주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내 작품을 받아든 고객들에게서는 처음 올 때보다 훨씬 더 당당해진 표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장애인 패션물을 구입할 수 있는 건 내 가게뿐이다. 대중적인 물결을 타고 정상적인 사람들도 찾아오긴 하지만 그들의 부탁은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나의 신조다. 가끔 막무가내로 생떼를 쓰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곤란하기도 하지만, 내 작품을 착용하기 위해 일부러 몸을 다치거나 하는 덜떨어진 인간들이 아직 없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할 듯싶다.


창 밖으로 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지나간다. 일에 집중하려는 찰나 문이 열렸다. 예정에 없던 손님은 분명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 중 한 명일 것이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문 쪽을 바라다보았다. 아무런 철학 없이 화려하게 꾸몄거나, 패션을 그저 한 때의 유행이라고 여기는 몰염치한 부류의 사람일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앞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나는 혹시나 그녀가 불편한 곳이 있는지 찬찬히 뜯어보았지만 겉모습은 일반 사람들과 다름없어 보였다.


“심장……. 심장을 진짜처럼 꾸며주세요.”


소녀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시든 꽃처럼 축 처진, 창백한 모습에서 나는 그녀가 인공 심장을 가진 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소녀에게 차라리 심장을 이식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가 보라 말했지만 그녀는 고집을 부리는 대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소녀에게서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기대감이라든가 자신의 불구(不具)를 은밀히 내세우는 듯한 오만함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자 하는 의지가 작은 몸에 서려 있었다. 소녀를 그대로 돌려보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의 인공 심장을 끄집어내 새 것으로 교체하거나 그럴싸하게 장신구를 달아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며 두리번거리던 중 염료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내게 멘디 시술을 하기 위한 것 보다 세밀한 작업을 할 때 작품에 쓰일 재료들이었다. 나는 소녀의 왼쪽 가슴에 어린 아이의 주먹 만 한 심장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하트 모양을 중심으로 작은 꽃봉오리들을 그렸다. 이제 소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김채람  국문·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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