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창업 붐으로 전국적 유통망 확보
판타지 최대 매력은 환상 아닌 진실성


환상, 허구의 세계, 흥미를 끌기 위한 ‘글 쪼가리’. 아마도 이것이 상당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판타지 소설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정말로 판타지는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글에 지나지 않을까? 답은 ‘No’이다. 최근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은 심심풀이용 텍스트를 넘어점차 그 문학성을 인정받아 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판타지 소설은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드래곤 라자』표지.
처음 판타지 소설이 각광받게 된 것은 인터넷이 점차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8년도이다. 당시 소수 소설 동호회에서 돌려쓰면서 시작됐었던 판타지는 인터넷을 통해 점차적으로 퍼져나갔다. 그 중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판타지라는 장르가 유명세를 타게 됐다. 이 때, 이영도 작가를 선두로 독창적인 세계관을 지닌 『세월의 돌』로 데뷔한 전민희 작가, 한국적인 판타지 소설 『퇴마록』의 이우혁 작가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한편 소자본 도서대여점 창업 붐이 일면서 판타지 소설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형성하게 된다. 또한 IMF라는 국가적 위기는 판타지 소설을 통한 현실도피의 욕구를 더욱 부채질 해 판타지 시장 규모를 키우는 발판이 됐다.

도서대여점의 출현과 함께 판타지 출판사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게 된다. 출판사의 수가 많아지자, 정식 판타지 작가의 확보가 어려워졌고, 결국 많은 출판사들이 독자들의 인터넷 자작 연재물 중 ‘조회수’가 많은 작품을 책으로 내놓게 된다. 제우미디어 출판기획 이상모 팀장은 “이렇게 우후죽순 양산되고 있는 판타지 소설은 결국 판타지 소설의 질적 저하를 불렀다”며 “최근에는 ‘해리포터’등 대박 작품이 나오면서 판타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좋아졌다”고 밝혔다. 또한 도서대여점의 수가 줄어들면서 양산형 판타지 소설도 많이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판타지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대서사적인 해외의 판타지 소설과 달리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팀장은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은 한 권의 서적이라기보다는 인터넷 연재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터넷 연재물의 특성상 소재가 매우 다양해 퓨전 판타지, 게임 판타지 등 장르의 파괴와 파생 또한 활발하다고 한다. 독자와 작가의 연령대도 주로 10대에서 20대에 집중됐었던 옛날과 달리 10대부터 중장년층의 다양한 작가층이 확보돼 독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줄 수 있게 됐다.

◇게임 상품화 한 『룬의 아이들』과 일러스트 상품화 된 『드래곤 라자』의 모습
판타지 소설의 영향은 단순히 소설에 그치지 않는다.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컨텐츠와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 해외에서는 이미 판타지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 산업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온라인 RPG 게임이 대량 생산되면서 주로 판타지와 게임의 컨텐츠 연계가 잦아졌다. 전민희 작가의 『룬의 아이들』 시리즈도 게임 ‘테일즈 위버’로 만들어져 소설과 게임 모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판타지가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판타지 속에 내재된 진실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판타지 소설을 환상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판타지는 환상을 소재로 이용할 뿐, 주제로 삼지 않는다. 환상 속에 내재돼있는 사람의 이야기야말로 판타지 소설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매력이다. 아직 판타지 소설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환상·허구라는 편견을 버리고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을 한번쯤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불가능이 없는 허구와 진실의 세계, 판타지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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