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곳에 가고 싶다

밀림의 밤은 후텁지근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시작한 야영 준비가 간신히 끝났을 때 주위는 이미 어두웠다. 우리는 옹색하게 피워 놓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각자 이번에 지급 받은 배당을 뒤적거렸다. 배낭 안에는 칼과 밧줄, 삽과 같은 몇 개의 도구와 물. 그리고 몇 개의 주먹밥이 들어 있었다. 20세기 영화에나 나올 법한 도구와 수통. 그리고 주먹밥을 목격해서인지 우리는 다들 그것들을 사용하기보다 관람하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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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을 끝내고 대충 허기를 때웠을 무렵 조장은 배낭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꺼냈다. 그는 우리가 내일 지나야 할 체크포인트를 꼼꼼히 살핀 후에 갈림길에서의 의견을 구했다. 행로를 정하고 나서 그는 내가 서툴게 세운, 뒤쪽이 찌그러진 텐트를 손봤다. 세 시간이나 텐트를 붙잡고 씨름을 했지만 결국 기형적인 모양을 만들어 버린 터라, 나는 그의 능숙한 솜씨를 마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처음 그를 조장으로 뽑았던 것은 나침반을 볼 줄 안다는 이유뿐이었는데, 요 며칠 동안 그는 제법 조장의 구색을 갖춘 것 같았다.

"길어야 이틀, 짧으면 하루 남았네요."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집어넣던 남자가 말을 꺼냈다. 나뭇가지가 모닥불 안으로 떨어지자 자잘한 불꽃들이 튀어 올랐다가 사라졌다. 그의 등 뒤쪽으로 비치는 베이스캠프의 밝은 불빛들이 도심의 야경을 생각나게 했다. 그의 얼굴에는 아쉬운 빛이 가득했다. 출발했을 당시에는 서먹하기만 했던 서로였지만 이제 남은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고개를 한껏 젖히자 아련한 별들이 아릿하게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인간은 도시에서 끊임없이 자연을 만들지만, 결코 그것이 자연일 수는 없다고. 흙 한 톨 볼 수 없는 40층 빌딩 옥상에서 그것은 참으로 적절한 마케팅이었다. 마케팅 문구가 기구에 매달려 둥둥 떠다니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였지만.

남자는 다시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텐트에 반쯤 들어가 있던 여자. 옆 텐트에서 배낭을 다시 꾸리던 조장. 그리고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던 나. 우리는 모두 동작을 멈추고 튀어 오르는 불꽃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침묵했고, 공허했다. 얼마간 있다가 우리는 모두 텐트를 찾아 들어갔다. 원인 모를 횅함이 옆구리를 갉아대는 통에 쉽사리 잠이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차례 스콜이 지나갔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12시가 되어서야 텐트를 걷고 다시 걸을 채비를 했다. 남자는 휴가철이면 늘 바다에서 보내는 게 지겨웠기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했다. 조장은 우연히 당첨이 되었을 뿐이라고 했고, 여자는 밀림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순전히 마케팅 전략에 당했기 때문에 왔다고 말했지만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밀림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내내 들리던 작은 짐승들과 곤충들의 소리가 보다 또렷이 들려왔다. 바스락거리는 풀잎이 꿈틀거리고 나무에 매달려 있던 짐승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어슬렁거렸다. 우리는 웃었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생경한 밀림에서 유일하게 익숙한, 문명의 냄새가 밴 베이스캠프의 높은 망루가 보일 때면 우리는 불편해했고 간혹 말이 없었다. 베이스캠프는 휴가의 종착점이었다. 우리가 있던 세계로 보내줄 마법의 문이 있는 곳. 나는 잠시 그곳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누구도 나를 채근하지 않았다. 우리는 점점 말수가 줄었고 그러는 사이 체크포인트 한 곳을 더 지났다. 경사지도, 통나무 다리도 없이 평평하기만 한 지형이 계속 이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하루도 채 걸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저기, 잠깐만요󰡓"

여자가 손으로 목을 쓸면서 말을 꺼냈다. 그리고 배낭에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여자는 지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리가 어제 가지 않기로 했던 체크포인트였다.

"그러니까……. 그게, 이쪽에 꼭 봐야할 꽃이 있거든요."

여자는 말을 꺼내고서 다른 세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눈짓으로 조장과 남자의 의견을 구했다. 남자와 조장은 피식 웃고는 나를 바라 볼 뿐이었다. 게다가 여자의 시선까지 나에게 머물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조장이 급히 말을 꺼냈다.

"아아, 그 꽃 이름이 혹시 아타락시아였던가요?"

여자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타락시아라니. 아타락시아는 꽃 이름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분위기를 눈치 챈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나도 꽃을 찾으러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도를 펴고 우리에게 허락된 것보다 조금 더 긴 행로를 그렸다. 긴 행로의 어디에 꽃이 있는 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다만 우리는, 밀림이 머금은 안개와 그 속에서 부대끼는 게으른 나무들의 속삭임을 좇아 그들과 함께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2xxx. 4. 6.

돌아와 빌딩 옥상에서

P.S : 우리는 결국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 그래도 굳이 뭔가를 찾았냐고 물으면 밀림에 녹아 있는 우리들의 모습 정도는 찾았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돌아보면 나는 그 때, 자연과 그들 사이에서 어느 때보다도 더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돌아올 휴가를 기다리고 있다.

박후규│국문․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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