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번째 유전자

22세기, 가정 로봇이 날 깨우고 하루의 스케줄과 스팸을 걸러낸 중요한 e-mail만 나에게 읊어준다. 업무 내용을 담은 메일, 가입한 동호회에서 온 메일 등 반절쯤 확인했을 때, '유전자감시센터'에서 보낸 메일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신영은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유전자감시센터입니다. 고객님의 유전자를 관리하던 중 제 24번째 유전자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으시면 고객센터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짧은 메일 내용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진다. 내 24번째 유전자가 이상하다고? 어제까지 건강 진단을 받을 때 몸이 이상하다거나, 변화가 생겼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큰 병이 아니어야 할텐데‥. 물론 웬만해선 인공장기 달고, 수술하고 약 먹으면 못 나을 병이 없지만 사이보그가 되는 건 좀 꺼려진다.


유전자감시센터 안은 병원 못지 않게 사람들과 사이보그, 로봇들로 복잡하다. 환자복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고 어쩌다 그런 건지 팔 한쪽 피부가 다 벗겨져 안의 인공근육이 드러난 사이보그도 보인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며 분주한 로봇까지. 그 중 눈에 띄는 로봇은 환자를 졸졸 따라다닌 애완동물 같이 생긴 로봇이다. 이 로봇은 환자의 혈압 관리, 당뇨관리, 컨디션 조절, 염증 치료 등 웬만한 치료 기능은 다 갖춰졌기 때문에 환자에게 없어서는 안될 친구이다.


난 안내모니터에 가서 나의 주민 번호를 쓰고 기다리니 모니터에 상담원 로봇이 생성된다.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검사를 받고 싶은데요.”


이내 로봇이 사라지고 모니터에 스캐닝 장비가 뜨더니 홍채를 스캔한다.


“신영은, 주민번호 오육공사공팔 다시 이사육오사이일, 맞으시면 1번을‥”

1번을 꾹 누른다. 다시 처음 로봇이 나온다.


“신영은 님의 유전자 24번에 이상이 발생하였습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1번을, 이전 단계‥”


다시 1번을 꾹 누르자 상담 가능 시간과 의사 명단이 나온다. 지금 당장 상담이 가능한 의사를 선택하자 대기표가 출력된다.


“대기표를 가지고 302호실로 가주십시오. 302호실에서 아래 명시 된 검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모니터에는 여러 가지 검사명이 써있는데 사실 무슨 검사인지 잘 모르겠다. 안내 모니터를 지나쳐 302호실로 올라간다. 조심스럽게 열어 본 302호실 안에는 네 명의 사람이 누워있다. 할머니 한 명과 남자 한 명, 젊은 여자 두 명. 모두들 흰 가운을 위에 입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이미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잠든 듯 하다. 병원이 아닌 센터에서도 많은 사람이 검사를 받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로봇이 손에 들고 있던 흰 가운을 내민다. 이마에 장착된 LCD에 "가운을 착용해 주십시오"라고 써있다.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로봇의 목소리.


“가운을 입어 주십시오. 약 10분 후에 검사가 시작 될 예정입니다.”

10분이라‥.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그 10분 동안 무슨 검사를 하는 걸까. 나는 잘 아파 본 적이 없어서 간단한 캡슐만 몇 번 먹어 봤지 병원에 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 걸까. 하지만 유전자감시보험은 항시 내 유전자를 감시한다고 했었다. 아마도 내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즉시 연락이 왔을 거다. 그리 큰 문제는 아니겠지. 그래도 장기 한 두 개쯤 고장났다고 해서 큰일나는 건 아니니깐.


요즘 사람들은 웬만한 장기는 인공적으로 만들어 쓰기 때문에 노인들은 한 두 가지쯤 인공장기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아파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어디가 아프세요, 할아버지?"하고 물어보면 할아버지는 "며칠 전에 바꿔 단 위가 더 쓰린 거 같아서, 다른 걸로 바꿔볼까 하고 있단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성형을 목적으로도 인공 장기를 쓰는데 좀 더 근육질의 몸매를 만들고 싶거나 높은 코를 가지고 싶을 때에도 인공 장기, 근육을 넣는다. 때문에 교통사고라도 나면 피가 나는 것이 아니라 인공 근육, 인공 장기가 드러난다.


침대에 앉자 다시 로봇이 다가와 물과 캡슐을 건넨다. LCD에는 "8분 뒤 검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수면 캡슐을 먹어주십시오"라고 써 있다.


로봇이 말하는 것을 듣고 수면 캡슐을 꿀꺽 삼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서 점점 힘이 풀린다. 각성상태가 점점 허물어지면서 가수면 상태에 빠져든다. 수면 캡슐이 점점 몸 속으로 퍼진다. 반사적으로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깜빡이는데 눈에 보이는 것도 흐려진다. 몸이 부드럽게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무거워진 몸을 침대에 누이는데 검사실에서 문이 열리고 검사실 안의 로봇이 벽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침대가 레일을 타고 검사실 밖으로 나온다. 점점 깊은 잠에 빠지는 것 같다. 잘못 되지는 않겠지‥ 걱정 속에서도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진다. 아무 이상 없어야 할 텐데‥. 내 24번째 유전자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별 일이 아니길‥.
김민영┃국문·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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