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선진국도 여론 독과점 규제 제도화
보수언론 자리잡은 우리나라 법안 재고해야

현재 쟁점법안인 '미디어 관련법' 상정 유무에 대해 첨예한 대립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신문과 방송의 겸영이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신·방 겸영이 세계적 추세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신·방 겸영은 허용하되, 여론 독과점에 대한 규제 및 매체 교차소유권 규정 등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미국의 미디어 소유규제 정책은 지난 1996년 이후로 지속적인 완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동일 지역 내에서는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소유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지가 갖고 있는 6개 지상파 방송은 모두 마이애미, 올랜도 등의 다른 지역 방송이다. 이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0년 뒤인 2006년 6월부터 신·방송의 겸영 허용 문제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논의 과정에서 FCC는 관련된 모든 정보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여러 차례의 순회 공청회, 광범위한 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밟았다. 그 결과 미 상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여론 독과점 문제 등의 이유로 지난해 5월 이 법안을 승인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사르코지 대통령이 미디어 소유 제한법 개정을 위해 지난해 10월 2일 신문사 경영자, 기자, 노조 대표, 언론 전문가들을 초청했다. 이들과 함께 신문의 위기를 다룬 '국민대표자회의' 개막을 선포한 후 2개월 이상 진행된 토론은 TV와 인터넷으로 중계했다. 그러나 여론의 거센 반발로 인해 법 개정에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밖에도 영국은 신문의 전국 시장 점유율이 20%이상일 경우 지방 및 전국 지상파 방송의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김환표 사무국장은 "여론 독과점에 대한 별다른 규제가 없는 우리나라에 신문과 방송의 겸영은 위험하다"며 "미디어 관련법 개정은 이탈리아와 같이 장기 집권을 하기 위해 개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의 말처럼 이탈리아는 현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1994년 총리가 돼 지난해 3선까지 당선되며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총리는 집권 후 방송과 출판, 광고, 영화사 등의 이탈리아 언론의 90%에 이르는 거대 미디어 그룹을 형성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총리는 탈세, 비리 등에 연루돼 고소에 휘말리고 징역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이를 방관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는 현재 국가경쟁력이 사상 최하를 기록하고, 국내총생산(GDP)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지만, 언론은 현 총리를 CEO 출신, 경제 살리는 총리라고 보도할 뿐이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선진국의 경우 보수와 진보 세력이 균형 있게 발전해 온 나라에서도  신·방 겸영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달리 조·중·동 등의 보수 세력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단 시간 안에 미디어 관련법이 상정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할 것이다.
박승훈 기자
psh0504@chonbuk.ac.kr

저작권자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