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긴 줄’을 무척 좋아한다. 줄이 길면 어쩐지 좋아 보인다. 그래서 너도나도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대기업을 기웃거리고, 일류학교에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긴 줄은 어렵다. 긴 줄을 쫒아 다니다 보면 낙오하기 십상이다. 남학생이 ‘효리’의 줄에 서 보라. 총각귀신 딱이다.
긴 줄이 왜 좋은가? 답은 간단하다. ‘남들’이 좋다 해서 좋다. 나에게 어울리고 나의 적성에 맞는 것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긴 줄에 서는 것은 나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남들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긴 줄의 기준은 별 이유 없이 시대에 따라 바뀐다. 공무원 시험을 보자. 30여 년 전에 공무원은 ‘짧은 줄’이었다. 대졸 출신은 “만년 말단”이라 해서 외면하고 고졸 출신이 많이 들어갔다. 그때로부터 바뀐 것은 별로 없는데 공무원이 긴 줄이 되었다. 이유는 아마 “살아보니 역시 ‘철밥통’이 최고더라”라는 ‘그들’의 경험론 때문이리라. 그러나 오늘날 철밥통은 흔들리고 있다. 철밥통이 나무밥통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이런 시기에 철밥통 때문에 공무원을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다.
대기업은 초봉도 많고 좋아 보인다. 그러나 대기업 입사는 ‘고생 시작’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것은 몸으로 때우면 된다 치자. 정작 어려운 것은 경쟁의 압박이다. ‘용꼬리’ 노릇 하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아는가? 그러다가 명퇴 후보자 1순위에 오르면 어떡하나? 자기 역량의 8할만 발휘해도 되는 직장에 가라. 그러다가 가끔 10할을 발휘하면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직장에 가라. 뱀의 머리가 용꼬리보다 훨씬 행복한 법이다. 일류학교도 허상이다. 교수의 질이 나은가? 장학금도 안 주면서 돈은 엄청 들지 않는가?
필자의 대학시절에는 전형적인 긴 줄이 ‘유럽에 가서 박사학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 중에 교수하는 사람 많지 않다. 줄이 길기 때문이다. 대신 파리의 한국 식당 주인들에게 물어보라. 절반은 박사일 것이다. 필자의 친구들 중에 동창회에 오면 비실비실하던 친구들이 있다. 박물관, 도서관 등 짧은 줄에 취직해서 기죽은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모두 사계의 권위자들이다.
필자는 학생들이 중소기업을 외면하는 풍조를 개탄한다. 역사는 중소기업이 개척한 것이다. 빌 게이트나 김우중은 중소기업에서 출발했다. 콜럼버스도 사실 중소기업이었다. 바이킹은 2-30명이 타는 배(중소기업)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북미대륙을 발견했다. 스페인의 피사로는 180명의 군인(중소기업)을 가지고 잉카제국을 정복했다. 긴 줄은 결국 ‘리스크가 적은 줄’이다. 그런 줄은 희망도 쫀쫀하다. 역사를 보라. ‘리스크를 회피하는 자(risk avoiders)’는 도태되었다. 반면에 역사를 바꾼 자들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자(risk taker)’들이었다. 야망을 가져라. 부디 ‘남들’이 말하는 허상을 쫒지 말라.

서용현┃법대·법학


*위에 말한 것은 이른바 “red ocean vs. blue ocean”의 은유와 축을 같이 한다. 

저작권자 © 전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