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이라는 말은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야간자율학습, 학교자율화 등 교육 부문에 쓰이는 수식어로서의 자율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할 때 동원되는 낱말로 변하고 말았다. 국민이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게 이름 붙여진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는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 중의 하나다.

현 정부가 전국적으로 무려 100개나 만들겠다는 자사고는 입시위주의 교육과정운영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대신 학교운영재정을 자체적으로 충당해야 한다. 여기에는 사학재단이 학생 수업료 총액의 3% 이상을 수익용 재산으로 확보해 학교에 내놓아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학은 학교운영에 필요한 재정 대부분을 국가로부터 지원 받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함량 미달의 사학까지 받아들여 무리하게 자사고를 강행하고 있다.

결국 자사고는 일반학교의 3배까지 받을 수 있는 학생수업료에 의존하는 재정구조를 가지게 되고 기숙사비, 특별보충학습비 등 기타 비용까지 산정하면 수 천 만원이 들어가는 귀족학교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특수목적고, 자율형공립고 정책까지 더하면 고교평준화가 사실상 해체되고 고교등급제를 부채질하는 차별교육이 실시되는 것이다. 또한 상위권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도록 만든 자사고이기 때문에 무한경쟁을 부채질하고 입시천국으로 교육을 변질케 만드는 것이다.

이번에 자사고 지정이 취소된 익산 남성고와 군산 중앙고는 최근 학교에 내놓은 재단 전입금이 3%에 못 미치는 1%안팎이다. 재정 이행계획도 불확실하다. 전임 최규호 도교육감은 지난해 이들 두 학교에 대해 재정계획 미비, 익산·군산지역 평준화에 미치는 악영향, 두 지역 중학생들의 고교진학문제 등을 이유로 자사고 신청을 반려했지만 지난 6월 같은 조건의 자사고 지정을 강행했다. 여론 수렴의 창구가 한 번도 없을 만큼 내용적으로 부당한 자사고 지정에 대해 신임 김승환 교육감이 이를 취소한 것은 잘못을 바로잡은 결정이다. 따라서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자치를 훼손하며 교육감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부당 간섭을 중단해야 한다. 익산·군산의 두 사학재단도 학생까지 볼모로 삼는 비교육적인 처신에서 벗어나 공교육의 본령으로 돌아와야 한다.

특히 익산 남성고 재단은 총동창회까지 동원하며 시대를 역행하는 고교학벌체제를 구축하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남성고 총동창회장이라는 김제시장이 김제지역 고교에 심각한 타격을 줄 자사고 지정에 앞장서는 것 또한 동문학벌주의의 폐해를 드러낸 것이다. 더구나 수구냉전 사고에 빠져 빨간색 칠하기로 전교조 마녀사냥에 나선 것은 특권경쟁교육과 학벌연고주의가 얼마나 맹목적인가를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다.
이제 무한경쟁교육과 차별교육은 멈추고 나눔과 배려의 교육공동체로 학교를 가꿔야 한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고 항변하던 김예슬 씨의 선언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김정훈┃전교조 전북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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